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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21. 2019

안탈리아, 모든 것이 여기에

자연과 신, 인간과 삶 그리고 쉼

터키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내는 여행지이다. 휴양과 자연, 유적에서 성지순례까지 여러 모로 다 갖춘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안탈리아도 '모든 것이 여기에'라는 터키의 매력을 두루 갖추었다. 안탈리아 공항을 빠져나오면 장엄한 자연의 위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눈 앞에 거대한 산맥과 맞닿은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뜨거운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지고 저 멀리 험준한 산맥의 스산한 구름 사이로 만년설이 눈에 들어온다. 뜨겁고도 차가운 이중적인 감각이 나에게 반기는 곳, 안탈리아다.

바다와 산맥 말고도 로마 시대의 유적부터 산타클로스의 원형인 성 니콜라우스가 봉직했던 성당, 사도 바울의 행적이 깃든 고대 도시까지. 공항에서 받아 든 관광지도를 펼쳐 들고 촘촘하게 표시된 추천 관광지를 보는 순간, 가 볼 곳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신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여기는 한 번 와서는 도저히 모두 둘러볼 수 없다. 안 보고 가기는 아까운 명소들의 집합장이다. 언젠가 네이버 뉴스에서 안탈리아에서 일 년 살기 중인 부부의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정말 이해가 갔다. 안탈이라를 두 번째로 찾은 나는, 이번에는 안탈리아 여행의 기억을 모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원형 그대로, 아스펜도스

안탈리아에는 지중해를 따라 고대에 해양무역이 발달했던 도시들이 즐비하다. 그 도시들은 대부분 원형극장을 갖추었다. 현재까지도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등 여러 지역에 고대 도시의 원형극장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아스펜도스 원형 극장은 세계에서 단연 최고로 손꼽힐 만큼 보존 상태가 좋다. 보통 원형극장은 좌석 부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분분인데 반해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은 극장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실제로 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시선은 무대로 모아지고 무대에서 나는 작은 소리라도 저 멀리 객석 너머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낯선 여행자 한 명이 극장 위에서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들어 보았다.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스타디움에 우퍼 스피커가 켜진 것처럼 노랫소리가 진동하며 울려 퍼졌다. 여름이면 이 곳에서 아직도 음악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여기서 듣는 음악회는 어떨까? 이천 년 전에 고대 로마인이 열었던 원형극장 음악회는 어떠했을지 궁금증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극장 부분이 그대로 보존된 원형극장
고대 해양도시, 시데 원형극장

보통의 원형극장은 극장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시데의 원형극장과 같은 모습이다. 아래층에서 소리를 내어 보아도 전혀 울림이 없고 소리가 분산된다.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을 가보고 작은 소리의 울림을 경험한다면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한 다른 원형극장은 좀 시시해진다.


살아 숨 쉬는 조각상,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

안탈리아에 고고학 박물관은 선사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40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페리게, 아스펜도스 등 안탈리아 내 굵직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한다. 조각상과 석관묘, 무덤의 부장품, 원형극장을 장식했던 조각들, 주화, 성화 등 많은 양의 유물을 볼 수 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조각상이 압권인데 크기나 작품성 면에서 매우 훌륭하다. 밀로의 비너스를 닮은 조각상부터 디오니소스,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아폴론 같은 신들과 로마 황제의 석상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거대하고 섬세한 조각상으로 가득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유물이나 박물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절로 감탄하게 될 것이다.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의 대표적인 조각상 춤추는 여인의 석상

 

춤추는 여인의 석상. 따아 올린 머리와 의상은 검은색 돌이다. 우윳빛에 매끄러워 보이는 그녀의 피부는 하얀색 대리석이다.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감아쥐고 살짝 고개를 돌린 여인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다시 짜 맞춰진 돌조각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봐 보지만, 조각상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율동감에는 부족함이 없다. 춤추는 여인의 석상을 보고 나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오마주 뻘인지 알 거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들은 아마도 그리스 로마시대 조각상을 바라보며 연구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조각상을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시킬 것이가?라고 생각의 생각을 거듭했을 것이다.   


옥빛 바다, 해변과 항구

안탈리아 마리나 항구

안탈리아의 마리나 항구에 서 있으면, 내가 마치 스페인의 해안 절벽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는 분명 터키 안탈리아인데 말이다. 항구에는 갓 잡은 생선을 요리해주는 식당부터 투명한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진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곳곳에 숨어있는 매력적인 장소들이 여행자가 들려주기를 기다린다. 넘실대는 바다에 유람선이 시간마다 오고 간다. 고기잡이 배와 요트가 친구처럼 나란히 정박해 있다. 겨울에도 영상 15도를 유지하는 안탈리아의 바다에 파도는 잠자는 듯 평온하다. 금방이라도 여름이 올 것처럼 따사로운 햇살은 지금이 과연 겨울이 맞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안탈리아는 여름에 와야 진짜라던데! 뜨거운 여름에 다시 여기에 와서,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옥빛 바다에 몸을 담가봐야겠다. 겨울에도 춥지 않은 안탈리아, 뜨거운 여름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해 본다. 아쉽게도 춥고 비만 오는 우중충한 이스탄불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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