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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25. 2019

탁심, 여행과 일상 사이

터키의 명동거리와 사람들

 이스탄불 탁심 이스티랄 거리.
동양인부터, 아랍인, 유럽인, 이 사이 중간쯤인 터키인까지
온갖 인종이 뒤섞인, 여기는 동양, 서양, 그 중앙의 멜팅팟!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언제나 번잡한 곳이다. 어찌 보면 모던한 분위기가 유럽 같기도 한데 한편에 모스크의 돔 지붕과 미나레트가 터키에만 존재하는 이슬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클래식한 석조 건물들 사이로 장난감 같은 빨간색 트램이 가로지르고, 메인 로드의 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카페와 펍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쿰피르, 피데, 케밥부터 말린 과일과 디저트까지 맛있는 거 투성이고, 돈두르마 아저씨가 능청스럽게   “쫀득쫀득한 아이스크림 먹고 가”라며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곳.     

탁심광장에서 쉬쉬하네 방향으로  이스티랄 거리를 가로지르는 트램

탁심광장에서 시작해서 쉬쉬하네 역 쪽으로 이스티랄 거리를 누비다 보면 산타클로스의 원형인 성 니콜라우스를 기리는 성당을 만나게 된다. 터키 안탈리아에 가면 그가 실제로 봉직했던 성당과 무덤이 따로 있다.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 많아 부자였던 그는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의 재산을 모두 썼다고 한다. 내 것을 타인에게 내어 주는 인간성이 바로 신성이라는 듯,  마을 사람들은 그를 기리며 성 니콜라우스가 죽은 12월 6일 전날 밤에 몰래 선물을 주는 풍습을 만들었다. 1600년 전에 그의 쌓은 선행이 지금까지 전해져 산타 클로스라고 불리며 아직도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규모가 아담한 이 성당은 유럽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비슷한 느낌의 고딕 성당이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경건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머랄까? 나를 잠시 내려놓고 손 모아 기도해도 될 거 같은 안도감을 전해준다.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제단

트램이 가는 길을 따라 쉬쉬하네 역까지 걸어 내려왔으면 이번에는 트램을 타고 이스티랄 거리를 가로질러 볼까? 지하철 쉬쉬하네 역 앞에 트램 정류장이 있다. 시간표를 보니 15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막간을 이용해서 이스탄불 카르트 충전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내 주변에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할까 염려한 것일까? 거리의 악사가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그의 음악에 맞추어 지나가던 여행자가 발길을 멈추고 낯선 리듬에 몸을 싣고 춤을 췄다. 한편으로는 터키 현지인들이 지하철과 튜넬에 몸을 구겨 넣어 보겠다고 바쁘게 움직였다.

여행자들만 타는 트램을 타보겠다고 기다리던 나는. 내가 여행자인지 이스탄불 현지 생활인인지 구분이 모호한 상태로 이 둘 사이 어디쯤을 왔다 갔다 한다. 사실 매일매일 헛갈리는 거 같기도 하다. 평상시엔 살던 대로 살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이스탄불인지 신경도 못 쓴다. 그러다 어떤 때는 여기, '한국 아니고 이스탄불이지'하며 순간적으로 확 깨닫기도 한다. 관광객 넘치는 탁심 한복판에 있는 지금은 왜 인지 내가 여행자처럼 느껴진다. 아니 여행자이고 싶다. 이스탄불에서 먹고사는 일상에 얽혀 있는 자잘한 걱정 뭉치들을 훌훌 풀어내고 여행하듯이 이곳을 설레며 누벼보고 싶어 진다.

탁심 광장 파자르에 실크 스카프 가게

그렇게 낯설게 두리번거리다가 만난 것이 탁심광장 바자르에 양잠 가게였다. 여행자의 발걸음은 '신기한 무엇'을 만났을 때 멈춘다. 아마 그 '신기한 무엇'을 만나기 위해,  여행자는 끊임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아닐까. 의도와는 다르게 그 기회는 뜻하지 않는 우연이 선사하지만 말이다. 전에 여러 번 들렀던 탁심광장 파자르에서 한 번도 발견한 적 없었는 던 터키식 양잠을 내가 오늘에서야 보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학교 다닐 적에 교과서에서 배운 양잠이라는 단어. 말로만 배운 그 양잠이었다. 어떻게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을까 어린 시절에는 상상만 했었는데, 터키 이스탄불에서 내 아이와 같이 실제로 보게 되다니! 난생처음으로 누에고치가 실이 되는 장면을 보고 신기해서 아들이랑 한참 동안을 서서 지켜봤다. 누에고치가 물에 불어 풀리면서 한 올 한 올 실이 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의 얽힌 자잘한 생활의 걱정거리도 술술 풀리는 것만 같았다.

터키는 섬유기술이 뛰어나서 실크의 품질이 아주 좋다. 시장에만 가도 아라베스크 무늬부터 크림트나 고흐의 그림까지 다양한 프린트의 스카프가 널려있다. 관광지답게 누에고치에서 실을 짜내는 퍼포먼스를 더해 스카프 장사를 하는 가게 주인의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가게를 지키는 저 뒤에 알바 언니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통 복장까지 곱게 차려입고 SNS 삼매경에 빠져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은 아얘 신경도 안 썼다. 덕분에 나랑 후는 실타래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실컷 보고 스카프 한 장 사볼까 하는 고민도 필요 없이 가게를 나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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