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Apr 05. 2019

카파도키아, 놀랍다는 말 밖엔

데린쿠유와 젤베 여행기



어스름한 새벽, 동굴 호텔에서 자다
눈을 비비고 나와보니
 눈 앞에서 100개 벌룬이 떠오르고 있었다.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신기한 카파도키아,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이 땅!



카파도키아하면 물론 벌룬이지만 주말을 이용해서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우리는 벌룬이 뜨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대신 신비한 지하 도시 데린쿠유와 바위굴 거주지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젤베 야외 박물관을 가보기로 했다. 카파도키아는 엘지에스 화산과 하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형성된 수백 킬로미터의 화산 지형이다. 용암지대는 수백만 년 동안 물과 바람에 의한 침식과 풍화 작용을 겪으며 형성되었다. 깍기기 쉬운 화산 지형의 바위들은 도토리, 버섯, 동물 같은 모양으로 쉽게 변모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카파도키아만의 독특하고도 거대한 지형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빗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 준 이 땅의 지형을 이용해서 수 천년을 살아왔다. 최초의 철기 문명을 가졌던 히타이트인이 살기 시작했고 4세기 후반에는 로마인의 박해를 피해서 숨어든 기독교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로마 군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암굴 속에 자신의 은신처를 마련했다. 어떤 이들은 땅 아래를 뚫고 들어갔고 어떤 이들은 상황에 맞게 땅 위에 솟은 바위틈을 파고들었다. 데린쿠유와 젤베 야외 박물관에 가 보면 그 옛날  카파도키아에 살던 사람들의 거주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데린쿠유, 기적 같은 지하 도시

데린쿠유. 그 지하 세계로 들어 가보기 전까지는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날은 하늘이 정말 푸르고 청명해서 직접  땅 아래 세상으로 내려 가보기 전까지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 세상은 전혀 피부에 와 닫지 않았다. 가파르고 비좁은 데린쿠유로 향하는 계단을 만나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온 몸을 웅크리고 비좁은 통로에 몸을 들여놓고 나서야 비로소 땅 아래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어렴풋이 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무역이 성했고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다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도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였다. 이런 생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고대부터 거대한 지하 도시를 만들어 사용했다. '깊은 웅덩이'라는 뜻의 데린쿠유는 목동이 닭을 웅덩이에 빠트리는 바람에 잃어버린 가축을 찾다 발견한 곳이다.  단순한 웅덩이인 줄 알고 발을 들였던 이곳이 지하 18층에 2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 도시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 곳에 내려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 통로들을 걷다 보면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가이드 없이 우리 가족만 다니는 여행에 익숙하지만 사람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만한 좁은 길을 겨우 지나 컴컴하고 복잡한 지하도시 아래에 몸을 들여놓자, 안내자 없이 덩그러니 우리 셋만 있는 상황이 살짝 불안하던 찰나였다.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터키인 한 사람이 다가왔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데린쿠유 규벤닉(경비) 같았다. 우리가 패키지 관광객이 아닌 것 같아 보였는지 함께 다니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이곳을 다 보려면 40분 정도 걸리고 비용은 80리라라고 했다. 영어로 설명을 해줄 수 있다고 해서 나도 좋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하칸.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그는 데린쿠유 경비원 월급보다 이런 식으로 관광객과 네고를 해서 받는 가이드 수수료로 더 많은 수입을 올릴 것 같았다. 어쨌든 하칸은 지하 세계에서 불안에 떨던 우리에게 다가와 한 층씩 속속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가이드를 해주었고 데린쿠유에 대해 설명도 소상히 해 주었다.  


현재 관광객들은 8층까지만 관람할 수 있는데, 크기가 너무 방대해서 전체적인 규모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하칸이 우물로 쓰였던 곳에 작은 조약돌 같은 것을 떨어뜨려 보았는데 한 참이 지나고 나서야 '퐁당' 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엄청난 지하 도시는 층층이 나뉘어 있었고 한 층에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층 별로 용도가 달랐는데 침실층, 거실층, 교회층, 학교층, 외양간층, 저장소층 등으로 구분해 놓았다. 침실층은 가족단위로 방을 차지하고 여러 가족이 공동 거주를 했다. 공간은 모두 미로처럼 연결되어 수많은 연결 통로가 있고 다른 지하도시끼리도 연결되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들어서면 빠져나오지도 못할 만큼 규모가 방대했다.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다른 통로들은 봉쇄해 놓은 상태였다. 이곳은 석질이 응회암으로 이루어져서 무르고 쉽게 깍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필요한 용도에 맞추어 벽을 깎고 다듬어 방, 저장고, 외양간, 학교, 와이너리, 교회까지 각각 공간의 형태를 구성했다. 일단 방을 파서 공간을 만들고 그다음에 방 안에서 저장 공간을 더 파거나 만들어진 방의 주변 돌을 다듬어 가구로 사용했다. 공간에 필요한 물건을 들여놓는 지상의 삶의 방식과는 반대로 용도에 맞게 벽을 뚫어 파내고 바위를 다듬어 공간을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은신처로 사용된 곳이라 예배를 볼 수 있는 교회가 있었고 벽에는 십자가 드문 드문 새겨져 있었다. 깊고 선명하게 패인 십자가 표식을 보니 먼가 마음이 뭉클했다. 로마군을 피해 지하 도시에 숨어 살았을 그리스도교도들은 벽에 십자가를 세기며 기도했겠지? 수천 년 전에 그들이 감당해야 했을 불안한 마음과 신에 대한 절대적 신봉이 느껴졌다.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세상 속에서 내가 얼마나 미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매일 적과 대치하는 긴박한 일상 속에서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고 생활을 건사해야 했기에 지하 세계에 몸을 숨기고 사는 박해받는 자들은 서로를 도우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가꾸어 나갔겠지! 낮에는 뜨거운 햇볕과 적군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어둠을 벗 삼아 농사를 짓고 먹을 것을 구했을 것이다. 조금 더 쾌적하게 살아갈 공간을 꾸미고, 향이 좋은 포도를 재배해 와인도 빗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로마군 같은 천적이 하나쯤은  다 있지 않은가? 쫓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며 막판엔 대판 싸우기도 한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도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나고 내 집으로 숨어들어 피곤한 몸을 누이면 다음날  또 다시 세상의 적과 한 판 붇어 볼 만한 기운을 얻곤 한다. 수 천년 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계속 살아왔구나!  지금도 그렇듯이.




젤베, 천연 아파트 마을


이번에는 땅 위로 올라가 볼까? 젤베를 지금 한국식 주거 형태로 보자면 신도시에 아파트 단지쯤 되겠다. 사진 속 바위에 보이는 작은 구멍이 아파트 한 채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잘 파지는 바위의 성질 덕분에 이 곳 사람들은 지하에 뿐만 아니라 지상에도 바위에 구멍을 내서 집을 만들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평화의 시기가 찾아오자 사람들은 땅 위로 올라와 거대한 천연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보다 쾌적하게 살 수 있었다. 가정집에서부터 교회와 학교, 식당까지 갖추고 있다. 옥외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이 자체로 기가 막힌 공원이다. 어떤 트레킹 코스보다 훌륭한 자연과 사람이 깎은 조각 작품이 즐비한 천연의 산책로다. 초봄의 차가운 아침 공기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기분 좋게 쨍한 터키 햇볕을 온몸에 받으며 이 길을 걸으니, 마치 여기가 알프스의 트레킹 코스 같다는 착각까지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절벽과 골짜기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인간의 놀라운 상상력과 생활력이 카파도키아 젤베를 낳았다. 자연 안에서 인간의 삶을 의탁했던 카파도키아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여기에 남아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탁심, 여행과 일상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