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배경여행
사쿠타로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리츠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우연히 뉴스 화면 속에서 리츠코를 발견한 사쿠타로는 그녀의 행선지가 시코쿠임을 알고 뒤쫓기 시작한다. 리츠코가 시코쿠까지 가야 했던 이유는 이삿짐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때문이었다.
우린 쇼도지마에서 배를 타고 나와 시코쿠 다카마쓰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작은 어촌마을로 향한다.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에 있는 아지초(庵治町).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먼저 두 주인공의 모습을 사진에 남겨준 시게 아저씨의 사진관에 들어갔다. 사진관은 이제 카페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먹으며 숨을 돌리기로 했다. 나는 명란젓이 발라 있는 토스트를 남편은 감자가 올라간 토스트를 주문. 바삭한 빵에 적절한 소금기. 건강한 기분이 들게 하는 수제 요구르트. 평범하고 담백해서 메인 요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양배추 샐러드까지. 거기에 곁들인 맛도 향도 매우 진한 커피. 테이블 곁에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듬뿍 쏟아지는 햇살이 빵과 커피를 오래도록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시간. 봄빛까지 머금은 이 작지만 완벽한 식사는 온몸에 따뜻한 기운을 돌게 했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곁에 있는 건물에서는 개의 해를 맞이해 강아지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슬쩍 들어가 보았다. 키우는 강아지를 사진으로 찍어 걸어둔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전시.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작품전보다 따뜻하다.
가타야마 교이치가 쓴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일본에서 영화, 드라마로, 한국에서도 <파랑주의보>란 이름의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1986년 여름을 배경으로 흐르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여주인공 아키는 얼굴도 예쁘고 우등생에 운동까지 잘한다. 그런 아키가 평범한 남학생 사쿠타로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쿠에게 라디오 심야방송에 응모엽서를 보내 사은품인 워크맨을 타자고 제안하며 둘은 가까워진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견딜 수 없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다가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세상이 넘칠 정도로 사랑하다 아키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더 이상 아키가 없는 세상에서 남학생 사쿠타로는 어른이 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때 결혼을 약속한 리츠코 손에 들려 사쿠타로에게 전달된 카세트테이프에서 아키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는다. 우리가 도착한 마을 아지초에서.
작품전을 보고 나와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어느 신사. 항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사실 목적지는 신사가 아니라 신사 바로 앞에 놓인 그네다. 아키와 사쿠타로는 이곳에서 그네를 타며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축제에서 줄리엣 역할을 맡게 된 아키는 자살시도를 실패하고 눈을 떴을 때 로미오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사쿠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된 사쿠타로는 잠에서 깨어나며 처음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녹아 있었구나.
근사한 위치에 걸린 그네였다. 마침 날이 좋아 하늘과 바다가 굉장히 깨끗했고 그네를 타고 높이 올라 더 먼 곳까지 굽어보았다. 힘껏 뛰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인과 벤치에 앉아 있던 비숑프리제가 쪼르르 다가왔다.
복슬복슬한 친구와 헤어지고 내려와 잠시 멈춘 항구엔 늠름한 (아마도) 아키타견이 바다를 보고 앉아 있었다. 아지어항은 부모님 몰래 간 여행에서 쓰러져 돌아온 아키를 아키의 아버지가 마중 나온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아키를 태운 차가 급히 병원으로 향하고, 그 차를 맨발로 뒤쫓으며 뛰어가던 사쿠. 그 길을 따라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 길에서 나는 아키와 사쿠타로의 애틋한 사랑보다 남은 사람, 남은 삶을 생각했다. 사쿠타로와 결혼을 앞둔 리츠코가 이곳에서 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둘의 사랑의 깊이를 모두 듣고 느낀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