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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Jan 29. 2017

트리하우스 만나러 이시가키 섬으로

오가와 이토 소설  따라 오키나와 주변 섬 여행


나만의 공간.


나는 막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출퇴근을 했다. 갓 사업을 시작한 부모님을 따라나선 것이다. 그때 기억이 매우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사무실 한쪽 벽면 중간에 안으로 움푹 파인 곳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공간이 무슨 용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방으로 쓰게 되어 그 안에 상도 두고 이불도 두고 지냈다. 공간의 구성이나 모양, 규모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굉장히 따뜻하고 아늑했던 기억만이 뚜렷하다.


소설 ‘ 트리하우스’에서 커다란 나무 위에 오두막집을 올려 살고 있는 카메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나의 작은 공간이 떠올랐다.


'나무잖아요?’ 사미에게 눈으로 얘기하자, 사미는 무릎을 구부리고 몸을 낮추며 나무 위의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위쪽에 트리 하우스 있는 거 안 보여요?”
“정말이다! 나무 위에 오두막이 있어요!”
-p.53 ‘트리하우스’ (오가와 이토) 中


오키나와 나하에서 이시가키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작은 초록섬 주위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둘러있었다. 에메랄드빛의 끝은 짙은 카키색 마지막엔 흰 선에 둘러있고, 그 밖은 검은 바다다. 이시가키에 가까워질수록 그러한 색의 규칙에 의해 둘러진 섬들이 여럿 보였다. 나는 어린 시절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소설의 배경을 찾아, 이시가키 섬 石垣島으로 향하고 있었다.


‘트리하우스'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아가 주인공이다. 마리아는 결혼 전 남편과 함께 가본 적이 있는 하트 모양의 섬을 찾아가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트 모양의 섬에는 도쿄에서 조산사를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츠루카메 조산원을 열게 된 카메코 선생님과 선생님의 일을 돕는 사미, 에밀리, 파쿠치,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들 손에 들린 맛있는 요리가 있다. 2012년에는 NHK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기에 영상으로 먼저 이야기를 만났다. 사실 드라마로 보았을 땐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리곤 원작 소설을 읽어보니, 아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리아가 느끼는 심리 변화, 각각의 주인공들의 과거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드라마에서 느꼈던 어색한 장면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꽃이며 산록이며 푸른 하늘은 전부 오노데라의 배경이었다.

그래서 섬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고, 섬 이름조차 잊고 있었다. 다만 상공에서 보면 섬이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어서 그 정보를 단서로 섬 이름을 알아냈다.

한 달 전, 오노데라는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 p.8  ‘트리하우스’ (오가와 이토) 中


야후 재팬에서 검색해보니, 오키나와 주변 섬이란 언급만 있을 뿐 구체적인 지명을 밝히지 않은 이 섬을 구로 지마 黒島 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허나 드라마는 이시가키, 다케토미 등 오키나와  본 섬에서 멀리 떨어진 몇 개의 섬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드라마의 도입부, 마리아는 동생을 낳으러 츠루카메 조산원으로 향한 엄마를 뒤따라 가는 꼬마 아이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이 촬영된 이시가키의 우간자키 御神崎 등대를 찾아갔다. 이곳은 카메코와 마리아가 아침 산책을 하는 곳이기도 하며, 카메코와 마리아의 남편 오노데라가 절벽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마리아를 발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에서 이러한 인위적인 설정은 없다.)


파도와 바람이 시원하게 내리치던 이곳 등대는 1983년에 세워졌다. 절벽 밑에는 남색 물감이 흰 물감을 만나 잠깐 내는 비취색이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는 아니어서 시원한 풍경과 바람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등대 앞엔 조난자들을 기리는 비석이 있었는데, 1952년 나하에서 이시가키로 들어오던 배가 계절풍으로 인하여 조난되어 35명의 희생자를 낳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지금은 등대와 함께 바다의 안전을 기도하고 있다.


222.25 km² 정도 크기인 이시가키 섬은 즐길거리에 비하여 볼거리가 많은 섬은 아니다. 또 다른 등대 히라쿠보 平久保 를 찾아갔다.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하며 챙겨본 오키나와 타임스 沖縄タイムス 에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등대'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본 후라 내심 기대를 했다.



일본 로맨티시스트 협회(무엇을 하는, 무슨 목적의 협회인가 굉장히 궁금하다)가 전국 3천여 개 등대 중에서 21개 등대를 '사랑의 등대'로 선정했다고 하는데, 히라쿠보등대 平久保崎灯台도 그중 하나로 뽑인 것이다. 과연 급하게 마련한 듯한 하트 모양의 판자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이시가키 섬은 하트 모양이 아니지만 섬 안에서 하트를 두 개나 만난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몰려든 먹구름으로 인하여 과연 '이곳에서 사랑의 기운이 느껴지는가'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이곳엔 사랑의 자물쇠 같은 것이 주렁주렁 달리려나?


그리곤 이시가키를 떠나기 전, 트리하우스를 닮은 레스토랑 ‘green’에서 소설 속 맛있게 묘사된 음식들에 견줄만한 카레를 만났다.



INFORMATION

이시가키 섬 石垣島

- 가는 법 : 나하에서 국내선 비행기 JTA, ANA로 1시간 소요


우간자키등대 御神崎灯台

절벽 위에 위치하여 아찔한 풍광이 특징, 봄에 가면 백합이 예쁘게 피어 있다고 한다.

- 주소: 〒907-0452 沖縄県石垣市 石垣島埼枝


히라쿠보등대 平久保崎灯台

아름다운 바다색을 볼 수 있는 등대로 유명.

- 주소 : 〒907-0331 沖縄県石垣市 石垣島平久保


green

구운 카레(焼き カレー)가 유명한 레스토랑. 카레 피자도 맛볼 수 있다.

- 주소 : 〒907-0451 沖縄県石垣市桴海大田14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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