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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Jan 21. 2017

조선의 나폴리,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을 찾아 통영으로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시작



땀이 뻘뻘 나던 한여름에 다녀온 후 두 번째 통영행이었다. 그해 여름도 통영은 맑고 깨끗했다. 한겨울에 다시 찾아간 그곳은 더욱 투명하고 푸르렀다. 한여름과 한겨울 그 사이에 박경리 기념관도 개관해 있었다.



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 1960년대 통영항 풍경.
https://youtu.be/FLh9Lb3G8JU



내려가는 길엔 1963년도에 개봉한 흑백영화 ‘김약국의 딸들’을 보았다. 원작 소설이 1962년에 발표되었는데, 바로 다음 해에 영화로 제작된 것이다. 21살의 용빈 역할을 맡은 배우 엄앵란 씨가 여든을 넘기셨다. 프레임에 담긴 통영의 과거는 지금보다 아름답다. 나의 상상력만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는 과거의 이야기라, 글로 표현된 묘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반갑기도 하다. 


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
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


“가스등만 보면 정말 통영에 온 것 같아. 참 다정스럽고 슬프고…….”
그러나 용빈의 얼굴은 조금도 슬프게 보이지 않았다.
“생이는 가스등이 참 좋은가 배요. 전에도 그런 말을 하던데.”

-p.84  ‘김약국의 딸들’ 중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은 기구한 운명에 의해 몰락해 가는 가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김성수는 다섯 딸(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을 두었다. 약국을 접고 어장을 열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성수의 집을 ‘김약국네’라 부른다. 과부가 되어 간통을 저지르고 아이를 살해한 딸, 단정하지 못한 행실로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딸, 시아버지의 겁간을 피하다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딸… 누구 한 명 비극적이지 않은 삶이 없다. 


스토리는 가슴이 탁 막힐 듯 답답함의 연속이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와 공간의 묘사가 치밀하여 읽고 나니 한 편의 역사서를 읽은 것과 같았다. 




박경리 기념관은 자료가 아주 많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과 닮아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은행원을 하다가, 신문기자를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평소 궁금했던 꼼꼼한 취재력의 기원을 이력에서 발견했다.


‘김약국의 딸들’에서 페이지당 한 두 개씩은 등장하는, 나로서는 그 뜻을 바로 알지 못하는 우리말과 표현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기념관에 걸린 그의 일본어 원고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 작가는 1926년생. ‘당시 지식인들은 교육을 일본어로 받아 글을 일본어로 썼겠구나…’ 이유 모를 거리감이 들어섰다. 작가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어 기념관에서 만난 그의 다른 저작 ‘일본 산고’를 주문하였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며 소박한 묘지를 만들란 작가의 뜻이 투영된 듯한 공간을 뒤로하고 서문고개로 향했다. 서문고개가 있는 서피랑은 통영의 객사 건물인 세병관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벼랑이다. 통영성의 서포루가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군대 행렬 앞에 세우는 둑이 있던 곳이어서 '뚝지먼당'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눈물을 짜고 달래면 또 따라나서는 용란이다. 용란은 보따리를 끼고 집을 나섰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 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물 긷는 처녀, 각시들로 밤길은 어수선하였다. 보따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우죽우죽 따라가는 용란의 모습은 염소처럼 순하고 어질어 보인다. 용란이 친정으로 올 때마다 이 고개를 울먹울먹 넘어가는 한실댁은 양지기만 같았다. 

-p.84  ‘김약국의 딸들’ 중


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 서문고개를 넘어 용란을 집에 데려다 주는 한실댁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동피랑과 달리 서피랑은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이 와도 피하지 않고 되레 먹을 것을 달라는 듯 노려보는 고양이들이 있는 동네가 있는 반면, 서문고개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와 큰 고양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두려운 눈빛을 하더니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가파른 고개를 걸어 올라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내부를 볼 순 없는 박경리 작가의 생가에 닿았다. 1926년 출생인 작가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니 건물도 전혀 달랐을 것이라 내부는 굳이 들어가 볼 필요가 없다. 생가터를 지나 서포루를 향해 걸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관통했다. 벽에는 작가가 세상에 남기고 떠난 문장이 새겨있었다. 지는 해를 담기 시작한 서피랑에 제 때  찾아온 듯하다. 




그래. 이곳은 조선의 나폴리, 

바다 빛은 여전히 맑고 푸르다. 





INFORMATION

박경리 기념관

주소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개관시간 : 09:00 ~ 18:00


박경리 생가터

생가터에서 3,4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서포루에 올라갈 수 있다.

주소 : 경상남도 통영시 충렬1길 7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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