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지 Mar 07. 2022

세상 모든 날라리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내 창작의 기쁨


세상 모든 날라리들에게 : 예술적 영감에 대해서


어릴 때 문제집에 빵꾸를 내며 좋아하는 문제부터 풀었던 나를 보며 엄마는 '얘는 FM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지금도 할 일 계획을 다 세워 놓고 그 중에 제일 하고 싶은 것 먼저 하는 걸 보면. 그렇다고 무언가를 설렁설렁하거나 대충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흥미와 자유를 중요시했지만 특유의 체계적인 사고가 있어서 의외로 효율과 원리에 대해 생각해 놓은 바와 알고 있는 바가 많았다.


후후,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 일탈은 아니지만 정석은 아닌 그런 것. 나는 어제 예술 관련 합평 모임에서 나의 시에 대한 감상을 받았다. 나는 복수전공, 부전공으로 예술 계열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풍부한 합평을 함께 나눌 친구들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다. 목말라했었는데 우연히 가입하게된 합평 모임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서로의 창작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조금 더 은밀해지고 솔직해지고 싶다. 나는 시를 쓴다. 손 끝의 감각을 따라서 자판을 누르다보면 시가 완성된다. 제목부터 첫 문장, 그리고 마무리까지 나라는 사람은 개입하지 않는다. 내가 시를 쓰는 방법은 조금 특이하다. 사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쓰는 지 잘 몰라서 내 방식이 특이하다고 단정짓긴 어렵지만 여튼 좀 특이하다. 음.. 시를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공부를 한다거나 산책을 한다거나 그러다가 동산에 나타난 흰 토끼처럼 미지의 깨달음이 보일 듯 말듯, 잡힐 듯 말듯 나를 종이 앞으로 초대할 때가 있다. 이게 일반적 언어로는 "영감"일 것이다. 나한테는 영감님이 이런식으로 찾아온다.


일단 영감이 찾아오면 난 좀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미세한 감각에 은근하게 집중하는 상태고, 그 집중은 죽은 관념들을 좆까게 만든다. 나는 그 순간을 누린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영감을 이제 손으로 풀어내면 되는데 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으면 된다. ㅋㅋ..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300개의 시 작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열심히" 쓰는 것과는 다른 시 작법을 연구해낸 것 같다. 문자로 영감을 풀어낼 때는 절대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열심히"나, "잘", "멋지게" 뭐 그런 것들이 밀고 들어오려고 하면 까버린다. '자, 지금은 그런 시간이 아니야.'하고 잠재운다.


시를 쓸 때 의식적 수준에서 하는 노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럼 이제 가슴에서 뭉글대는 에너지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손 끝으로 전이된다. 그래서 육감이 중요하다. 나는 진짜로, 글이나 시를 쓸 때 머리로 안 쓴다. 피아노 칠 때 처럼 손 끝으로 친다. 쓴다고 하지만 사실 연주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 지면은 엄청 은밀한 공간이다. 여튼 그래서 시를 쓸 때 뇌는 아는 게 없다. 그 쓰여질 시에 대해서. 언어적 뇌는 시의 제목을 생각해 내고 그걸 적으면 이제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창작자인 나도 쓰여지고 있는 시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첫 장면이나 시구가 어떻게 시작될지 모른다. 다만 이제 의미에 대해서는 구체화하는 시간이 잠깐 있다. 시적 장면을 써내려가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주 잠깐 생각해본다. 그러면 그때 너무 의미화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것의 10% 정도만 잡아본다. 그러면 시에 너무 무겁지 않게 의미가 첨가되는 것 같다.


음 이렇게 쓰다 보면 개인적으로 놀라운 순간이 있는데 바로 끝을 낼 때다. 시가 끝난지는 나도 한 5초 정도 있다가 안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5초 정도 있다가 그게 마지막 문장인 줄 안다. 그러면 이제 '아, 이게 끝이구나.' 아는 것이고 또 반박자 늦게 놀란다. 내가 쓴 것이지만 처음 부터 끝까지 의식적으로 전혀 예상을 못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왜 이런 작법이 가능한 것일까? 연구 대상이기는 하다. 근데 기계적으로 파헤칠 내용은 아니다. 신비이니까. 일단 이렇게 시를 쓰고 또 그 시를 나누고 감상을 받는 나는 행복하다. 미안하지만 어떤 기관도 얼마의 돈을 처발라도 이 행복은 만들 수가 없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건 제꺼거든요.


약간 좀 나댄것 같다. 근데 위 말의 요는 창조적 활동에서 나오는 기쁨은 흉내낼 수도, 누군가 뺏어갈 수도 없다는 말이다. 행운아인 것 같긴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