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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May 13. 2023

노화를 반겨주기

올해 들어 부쩍 나이 든다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다. 작은 글씨를 보려면 눈이 침침하다. 어깨와 손목도 약해져서 불편하다. 몸에 열감이 있으면 ‘갱년기’가 온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부터 든다. 점점 젊음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 부쩍 겁이 난다. 의욕도 열정도 찾아볼 수가 없다. 쉬 힘이 들고, 쉬 지친다. 코로나에 걸린 후 그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긴 했지만, 아마도 누구나 맞이한다는 ‘노화’가 시작된 모양이다.     


또래와의 만남은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예전 같지 않은 몸, 활기를 잃어버린 마음, 연로해진 부모님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연금보험, 노후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된다. 보톡스를 맞는다는 친구도 있고,  피부 관리기계를 샀다는 친구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괜히 불안하다. 집에 와서 잘 안 보던 거울을 들여다본다. 피부에 기미 잡티가 많다. 이제는 화장을 좀 두껍게 해야 하나 싶다.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사진에서 나이 든 내 모습이 너무 낯설다. 가끔 그 사진 속 모습에서 내 나이 때 엄마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나이 든다는 건 어떤 걸까. 몸이 노화되는 걸 지켜보는 것. 그걸 두려워하는 것 그게 전부일까. 이 시간을 잘 받아들일 방법은 없을까.      


어느 날인가 마트에 가서 야채코너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날은 특히 얼갈이배추가 신선하고 좋았다. ‘배추가 참 좋다’ 속으로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배추 앞으로 다가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이었는데, 직원과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이거 김치 담그면 맛있을까?” 

여성의 질문은 명랑하고 활기찼다. 직원과 친분이 있어 그런 질문을 했을까 싶은데 알 수가 없다.

직원은 금세 답을 준다. 

“그럼요 맛있을 거예요.”

배추 구매자는 “맛있겠지?”라는 질문을 거듭하다 배추 한 단을 카트에 담고 사라진다.      


배추는 무척 신선하고 좋았다. 배추를 보니 김치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내가 보기엔 정말로 신선한 것은 배추가 아니라, 그 여성의 명랑한 질문이었다. 나는 평소에 감정 표출에 서툴고, 어려워한다. 나에게 감정표현은 크게 마음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MBTI 슈퍼 I인 내게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일상에서 솔직하게 생각을 꺼낸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새로워 보였다.     


살다 보니 어렵지 않아야 할 일이, 어려워졌다. 순수한 표현력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가식은 늘었는데 마음이나 생각, 감정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잃어버렸다. 솔직함과는 멀어진 삶을 사는 내게 그런 모습은 신선해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참 독특한 분이다.’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달리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나이 든 여성들의 대부분이 자기표현을 잘한다. 표현력이 풍성하다.  나라면 하기 힘든 속 이야기도 거침없이 꺼내신다. 타인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표현을 왕성하게 해 나가는 분들을 본다. 물론 그런 왕성한 표현력에는 역기능도 있다. 본인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서 다른 이들을 당황시키거나 불편하게 하는 분들도 있다. 그 감정이 어떻든 내가 본 나이 든 여성들은 대부분 감정표현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칠십 대 어르신들을 만나면 나는 무척 어린 사람이 된다. 그분들에 비해 나는 아직 젊은 사람이고 그런 내가 ‘나이 듦’을 운운하는 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노화가 시작된 것은 내게 닥친 현실이다.     


나이 든다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다.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피하지 못한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노화를 받아들일 뿐이다. 사람마다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마음속 생각을 꺼내기도 한다. 감정을 꺼내는 데 타인의 눈치를 안 보게 된다. 전보다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그런 변화가 시작되기는 했다. 혼잣말이 늘었다. 


드라마를 보다가 뉴스를 보다가 혼자서 중얼거릴 때가 많다.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들이 입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온다. 나도 이러다가 속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때가 올까. 만약 내 감정에 몰두해 타인의 마음 헤아리는 것을 잊으면 어쩌나.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나이 들게 될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암튼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고 찾아간다는 뜻 같다. 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목소리를 드러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아가고 싶다. 기왕이면 타인도 배려하면서 내 목소리도 내고 싶다. 내 감정을 표현하며 살고 싶다. 나와 친해지고 싶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를 더 잘 알아가고 싶다. 이미 시작된 노화 배척만  말고, 조금은 반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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