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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언제라도 들어준다

by 쓰는 사람

첫 모임 때는 스무 명 정도가 모였다. 글쓰기 강사인 나는 내가 어떤 계기로 글을 쓰게 됐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수강생들에게 전했다. "특출난 글재주나 대단한 경험이 없어도 된다. 나라는 사람과 내가 살아온 삶이 가장 좋은 소재다. 나보다 내 삶을 잘 아는 사람은 없으므로 나에 대한 글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의 힘이 조금씩 자란다."


두 번째 모임 때는 몇 명이 결석했다. 첫 모임 때 눈을 반짝이며 가장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던 이들이 안 나왔다. 세 번째 모임 때는 인원이 더 적어졌다. 공립도서관의 글쓰기 모임은 참가비가 없다 보니 별 관심도 없으면서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모임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성실하게 참여하는 사람은 열 명 정도로 좁혀졌다.


모임은 미리 써온 글을 발표하고 합평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30대 후반의 여성 H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봄소풍 다녀온 얘기를 썼다. 그들과의 동행이 따뜻하고 충만했다는 내용이었는데 느낌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 느낌의 뿌리인 구체적인 현실의 묘사가 부족해 글이 뜬구름처럼 느껴졌다.


이번 모임을 시작하면서 마음먹은 것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하다고 믿는 것,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걸 글로 쓴다. 정성 들여 썼는데 쓴소리를 들으면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글쓰기모임에 나오는 건 울림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가 아닌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넘어가면 이 분에게도,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안 된다. 마음을 다잡고 솔직하게 평을 하는데 목소리가 떨려 나오고 가슴이 콩콩 뛰었다. 기분 상한 게 아닐까 걱정도 됐다. '흥, 사실 내가 마음먹고 쓰면 이것보다 훨씬 잘쓴다구!'하고 마음을 다잡은 걸까? 이 분은 다음 모임 때 적절한 비유와 구체적인 서술로 이루어진, 손에 잡힐듯한 글을 써오셨다. 십수 년 전부터 매일같이 책과 글을 가까이해 온 분이라 말해드린 걸 이미 알고 계셨을 텐데 잠깐 놓친 게 아닌 가 싶다.

어느 날은 모임을 마치고 강의실 밖으로 나왔는데 복도에서 40대 초반의 여성 수강생 B가 질문을 해왔다.

"오늘 제 글은 어땠나요? 제 글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해 주셔서요."


나는 대답을 회피하고 싶었다. 이 분은 글은 논리 정연했지만 정형화된 틀 안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모임은 자신에 대해 쓰는 곳인데 이 분의 글에는 한 사람의 분위기나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 내부에 경계를 긋고 경계바깥의 것들만 쓰고 있는 걸까? 내가 느낀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내밀한 이야기 같아서 말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글 자체에 흠이라 할 만한 것이 없어 딱히 드릴 말이 없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B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K씨도 P씨도 글이 생생하고 재밌는데 제 글은 안 그런 것 같아요."

(아이고, 나도 잘 모르겠네요. 내가 그걸 알면 벌써 베스트셀러 몇 권은 썼게요?)


"글을 잘 쓰고 싶으세요?"


"네."


"B님한테 잘 쓴 글은 어떤 글인가요?"


"저는 재밌게 쓰고 싶어요. 남들에게 재밌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재밌게 글을 쓰는 게 B님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다른 사람 말고 B님한테요. 제가 글을 쓰는 건 저는 글쓰기 말고는 할 게 없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됐으면 하거든요. 그래서 잘 살고 싶거든요. 글 쓰는 데는 자신만의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왜 글을 쓰나? 가끔씩 스스로에 묻지만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래도 책 두 권 낸 작가인데,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으니 쓰는가?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알게 되는 게 좋다. 미처 몰랐던 마음을 알게 되면 모호했던 부분이 명확해져 후련하고, 나에 대해 알게 되는 만큼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방식으로 살게 되는 것 같다.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눈다. 우스갯소리도 하고 진지한 질문도 던지고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한다. 내 마음에 공감하는 과정이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과정이다. 나를 비난하거나 질책하는 누군가가 아닌, 어떤 경우에도 날 응원하는 친구가 되려는 것이다. 나는 내 얘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길 바란다.(가능하다면 독자들의 지갑도 열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글쓰기에서 자꾸 걸려 넘어졌다.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어서 마을살이에 대한 글을 써보려 했는데, 한참을 쓰고서야 내가 겪은 마을살이가 아닌 누군가에게 들은 멋들어진 마을살이에 대해 써왔단 걸 알게 되었다. 내 경험과 느낌을 '이상적인 공동체'에 끼워 맞춰 쓰고 있었다. 내 글에는 '이상적인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마을살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진 못하고 있던 내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더 이상 글을 쓰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 일 년 넘게 써온 글을 엎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매달렸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니 상심이 컸는지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나는 이상적인 틀에 맞춰 글을 써왔단 걸 몰랐다.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진솔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왜 경험하고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쓰지 못했을까. 아마 내 경험이 남들에게 보일만한 게 아니라고 여겨서였을 것이다.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여러 즐거운 일이 있었지만 마을살이를 하는 나의 일상은 변변찮을 때가 많았다. 건강이 안 좋아서 쩔쩔매고, 무기력에 시달렸다.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뭔가 성과를 내보고 싶었지만 별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버리는 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사실 이 지지부진한 모습 또한 '마을에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이므로 이것에 대해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일상을 변변치 못한, 남보기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했고, 뭔가 그럴듯하고 멋진 걸 써야 한다고 생각해 어딘가에서 들은 이상적인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가져온 것 같다. 그렇게 쓴 글에는 번듯해 보이려는 나만 남고, 실제의 나는 없었던 것 같다. 독자들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한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남들에게 이러저러하게 보일 거야'를 걷어내고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지 않나? 내 생활을 초라하게 여긴다는 건 나란 사람을 초라하게 여긴다는 게 아닌가? 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못났다'는 틀에 넣어 보고 있지 않나? 내 상상 속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란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희미하니, 자꾸 외부의 기준을 가져와 스스로와 비교하는 게 아닌가?

나의 열등감과 자기부정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남들이 알 수 없다고 여겼지만, 그것은 은연중에 내가 글 쓰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글쓰기는 적나라한 것이라 숨기기 어렵다. 숨기려 하면 숨기려는 내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는 글 쓰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번 글쓰기모임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알게 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자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글쓰기주제를 선별하고, 합평 때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려 애썼다. 글을 쓰는 데는 글쓰기의 기본규칙을 익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을 잘 알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게 보다 본질적인 부분이라 생각했다.


초봄부터 초겨울까지 매달 한 번씩 모여 글을 쓰고 삶을 나누었다. 어떤 분은 유년시절 시골에서 엄마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웠던 경험을 썼는데 너무 생생해서 읽는 동안 글쓴이의 경험과 감정이 내게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 분은 글쓰기가 어렵다고 툴툴대면서도 매번 어떻게든 과제글을 써오곤 했는데 마칠 때쯤엔 처음보다 훨씬 경험과 감성이 선명하게 드러난 글을 써냈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통해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들여다보는 건 글쓰기모임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을 접하며 특정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배울 수 었었다. 내게 글쓰기모임은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장이자 사람의 마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학교였다.


사람에겐 자기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따금 메시지도 오지 않은 카톡창을 자꾸 들여다보고, 누군가가 내 맘을 몰라준다며 서운해하고, 옛 친구와 약속을 잡는 건 내 이야기를 허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맘 속에 품고 있을 때가 아니라, 입 밖으로 내어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글쓰기는 언제라도 내 말을 들어준다. 판단하지 않고 토 달지 않고 그저 가만히 들어준다. 글쓰기는 언제나 내가 이야기를 털어놓길 기다리고 있다. 일 년 동안 글을 써온 당신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가길 바란다. 담담히 글을 써가며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오래오래 듣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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