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은 내성적이고 예민한 편이다. 에너지와 관심이 내부로 쏠려 있다. 이십대 중반까지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기보다, 내 내향적인 성격이 문제라고 여기고 그것에 신경쓰고 고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취미도 없어서 티브이나 웹툰을 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지는 서른 초반부터 생각을 시작했는데 요즘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아 마음속에 밀린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늘 이 숙제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정체성과 의미는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인데 이게 명확하지 않으니 목적지 없이 그저 떠도는 것 같다. 이것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이런저런 결론을 내려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만든 의미가 먼지붙은 포스트잇처럼 자꾸 떨어져나가고 희미해지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잊는다.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낯선 사람들과 있으면 어색하고 긴장하고 말수가 적다. 나의 내성적인 성격, 어색하고 긴장하는 것을 자책하고, 비관하고, 성격을 바꾸려 무진 애를 쓰던 때가 있다. 요즘은 예전처럼 자책을 심하게 하진 않지만 이따금 사람들 앞에서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느낄 땐 자책을 한다. 어떤 경우에도 내 모습은 괜찮다고 인정하고싶은데 이런 내모습이 못났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며칠 연속으로 모임에 참여하다보면 지치고 진이 빠진다. 사람을 너무 자주 만나면 더이상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모되는 사람 같다. 혼자서 가만히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나는 일상의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일하는 방식, 인간관계까지 예민하고 섬세한 면이 있다. 글을 쓸 때 주변에 보이는 것, 소리에 민감하다. 도서관에서는 옆에서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만 나도, 블라인더가 에어컨바람에 벽에 툭툭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도 신경쓰여 글을 못 쓴다. 남에게 피해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어 내가 키보드 소리를 내면 남에게 피해를 줄까 신경쓰인다. 마음에 드는 영화나 책을 되풀이해 보곤 하는데 장면 하나하나, 인물의 대사까지 고스란히 기억하곤 한다.
살아오면서 나는 남들과 어딘지 다르다고 느끼곤했고, 스스로 남들과 다르단 걸 부각시키려 하기도 했다. 남다르고 특출난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그렇게 보이기라도 하고 싶었다. 어릴 때는 평소의 나와 다른 모습을 연기했다. 어른들 앞에서 엄청 똑똑한 척하며 말한다거나, 백일장에서 엄청 논리적인척 글을 전개하거나, 여성스러운 사람인 척 연기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사람인 척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싶었다.
재미나게 말을 잘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외향적인 척, 쾌활한 사람인척 연기를 해서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 했다. 이것이 본래의 나를 부정하고, 피를 말리는 일이란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난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광대처럼 행동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날 탐탁치 않게 여겼다. 난 내가 감히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여겨서,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할줄 몰라서 특별해질 순 없으니 특이해지기라도 하려 한 게 아닐까.
내향적이고 혼자있는 시간이 많고, 예민하고, 섬세하고, 상상력이 있고 뭐든 한번 하면 꾸준히 한다. 글쓰기에, 작가가 되기에 필요한 조건이다. 나의 내향성과 섬세함은 인간관계에서나 글쓰는데나 발휘될 수 있는 특성이다. 나는 역량있는 작가가 됨으로써 특별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