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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an 10. 2019

누구나 내부에는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이 있다

<김씨표류기>를 보고


김씨표류기는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처지를 잘 담아낸 영화입니다. 동시에 무기력과 자기비하에 빠진,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회복되는지도 보여줍니다.




김씨표류기의 남자김씨는 2억 넘는 빚을 진 후 처지를 비관해 한강 대교에서 뛰어내리지만 한강 뚝섬으로 떠내려갑니다. 죽으려고 했던 그는 뚝섬에 고립된 후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시도합니다. 독버섯을 뜯어먹고 사루비아 꽃을 빨아먹고 세제를 뿌려 물고기를 잡습니다. 무기력과 자기비하에 빠져있던 그였지만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고 나무를 타고 쓰레기를 모아 직접 보금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차츰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회복해갑니다. 짜파게티 봉지의 '희망소매가격'에서 소매가격을 손가락으로 가리면 '희망'이 됩니다. 그는 짜장면이라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 비둘기똥을 긁어모아 옥수수 종자를 찾아내고 황무지를 경작해 농사를 짓습니다. 무작정 무언갈 하는게 아니라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심심함을 마음껏 누리며 내부에 잠재돼 있던 건강한 생명력을 깨우기도 합니다. 




히키코모리 생활을 합리화하며 사는 여자김씨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와도 문자로 꼭 필요한 용건만을 주고받을 뿐이죠. 그녀가 매일밤 달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인과 소통하지 않는 그녀는 싸이월드에 명품으로 치장한 가상의 미인을 만들어 타인의 선망을 얻으려 합니. 한강뚝섬에서 우왕좌왕하는 김씨를 발견하면서 그녀의 견고한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와 소통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몇 년만에 외출을 시도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타인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남자 김씨가 끈질기게 자신의 '희망'을 키워내려는 모습을 보며 그녀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몇년만에 방문을 열고 나가 엄마에게 '옥수수 모종과 화분과 이것저것을 사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영화 초반부에 김씨는 뚝섬을 탈출하기 위해 한강에 뛰어듭니다. 수영을 못하는 그가 한강물을 들이켜며 허우적댈때 장면은 수영장으로 바뀝니다. 어린 김씨가 수영장에서 허우적대는 곤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수영장 위쪽에 서서 아들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팔다리를 저어보라는 지적을 합니다. 이어서 세명의 면접관이 나타납니다. 여전히 떠있기도 버거운 그에게 면접관들은 토익점수와 나이와 경력을 문제삼습니다. 연거푸 물을 마시며 헉헉대면서도 그는 면접관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다. 김씨는 평생을 허우적대며 살아왔던겁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부끄러워 하면서요.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시스템에서 '무능력'이란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조금은 코믹스러운 이 장면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이 아프다면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허우적대는 일의 서러움을 겪어봤기 때문이겠죠.




우리시대에는 죽도록 노력해 경쟁에서 이기려고 발버둥치지만 실패하고 패배감과 좌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1명이 경쟁에서 이기면 나머지 99명은 자신을 비난하며 실의에 빠지게 돼죠.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아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내부에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내부의 생명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건강성을 회복하고 꽃피는지 이 영화는 유쾌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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