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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an 24. 2019

아무리 작은 산이라 해도

겨울 오후 동네 뒷산

 겨울 오후의 동네 뒷산에 오른다. 산은 깊고 크다. 높이 이백미터 남짓 동네 뒷산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 해도 나같이 비뚤어지고 지친 인간 하나쯤은 가볍게 품어준다. 정상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면 1시간 남짓이면 금방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빠르게 정상에 도착한 사람에겐 꼭대기에 올랐단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수십 차례 올랐음에도 여전히 동네 뒷산을 잘 모르겠다. 다만 산이 나보다 훨씬 커다랗고 너르다는 사실만 조금 알 듯하다.          


 산의 품은 넉넉하다. 산은 나에게 무엇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나무를 나무인 채로 품듯 바위를 바위인 채로 안 듯 산은 내게 이러저러한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산은 내 자신보다 내게 훨씬 너그럽다. 산에 있을 때 난 불안에 떨 까닭이 없다. 굳이 먼 곳의 명산을 찾아가지 않아도 좋다. 산은 최고의 도서관이며 최후의 병원이다. 천천히 산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산은 온갖 참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마음속엔 수천개의 이야기가 피어난다. 수만개의 상상이 뿌리를 내린다. 마녀와 신선과 숲의 정령은 사실 산이 들려준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가치가 뒤죽박죽돼어 어떤 길이 옳은지 알 수 없게 돼버린 세상에서, 모두가 비뚤게 생각해 오히려 정상인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는 이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산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동네에 있는 뒷산이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리에 묵묵하게 듬직한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산에게 치료를 받는다. 산은 수백수천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도 우리처럼 뒷산을 좋아했다. 산은 가장 지혜롭고 유능한 정신과 의사다.          


바다보다는 산이 좋았다. 바닷가도 멋지잖아? 멀리 보이는 지평선, 넓은 모래사장에 끝없이 몰려오는 파도. 왜 바다보다 산인거야?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다는 나 혼자 누리기 힘든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아. 바닷가는 평지에 있잖아? 모래에선 나무가 자라질 못해. 모두가 모두를 볼 수 있는 공간이지. 바닷가엔 늘 다른 사람들이 있어. 백사장은 산보다 착취당하기 쉬운 공간이지. 좀 멋진 바닷가다 싶으면 금방 근처에 호텔이며 카페며 횟집이 들어서잖아. 땅값도 오르고 말야. 동네 뒷산? 누가 이런 곳에 카페를 짓겠어? 

산은 여러사람이 함께 올라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 많은 것 같아. 산등성이와 빽빽한 나무들이 시야를 한정시켜주니까. 그래서 평소에는 만나기 힘들었던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언제나 울리고 있었지만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만날 수 있어.          


인간은 수십수만년을 자연속에서 살아왔다. 인간의 뇌와 몸은 자연속에서 지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콘크리트벽과 엘리베이터에 적응해버렸지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자연에 훨씬 익숙하다. 사람은 자연을 가까이 두고 교감할 때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졌다. 모든 인간은 자연에의 친밀감을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다.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이 마음속에 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처럼.     


폭풍우 치는 날, 뒷산에 오른 적이 있다. 높다란 주차타워 벽면이 찢겨나갈 정도로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이런 날처럼 광기와 울분을 발산하기 좋은 날도 없다. 폭풍속에서 비바람에 떠밀리다 이따금 유후-! 환호성을 질러도 들을 사람 하나 없다. 따귀맞은 듯 널부러진 가지와 잎사귀들, 폭풍이 헝클어놓은 세상을 구경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신이 난다. 젖은 밴치를 신문지로 문지르고 앉는다. 태풍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강렬한 바람이 주변 수천그루 나무 사이를 질주한다. 쏴아- 쏴아- 수백만개의 잎사귀가 바람에 휘청인다. 쏴아 - 쏴아 - 돌림노래 같은, 들을 이 없어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같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한없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나뭇잎 소리를 듣는다.


이 작은 산에 도대체 몇그루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는걸까. 어느곳을 바라봐도 나무들이 빽빽하다. 나는 소나무밖에 모르지만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사방팔방으로 나뭇가지를 뻗고 있다. 눈앞의 수십그루의 나무에 수천개의 가지가 달려 있다. 가느다란 가지들이 허공에서 복잡하게 교차돼 빽빽하게 교차된 선을 그린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표현하기 어려울 기하학적 패턴이 허공에 펼쳐진다. 내딛는 걸음을 조금만 달리해도 전체 모습이 달리 보이는 3차원의 복잡한 구조물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얼굴을 지녔다. 더 놀라운 건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녔단 거다. 살아오면서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모두 저마다의 기운을 지녔고 분위기를 띠었다. 어느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말했던 것처럼 특정한 사람을 대체할 사람은 없다. ‘나 같은 사람은 없어. 오직 내가 있을 뿐이야.’ 산에 있는 나무와 풀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무도 다른 나무와 같지 않다. 작은 풀 한포기도 저마다의 얼굴을 갖고 있다. 생명을 지닌 수많은 생물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녔단 사실은 어쩐지 나를 안도하게 한다. 그건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니까. 다른 무엇이 되려고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니까.     


 한참을 술취한 사람마냥 산 여기 저기를 떠돌다가 지쳐서 일자형 벤치에 누웠다. 백년 전 사람들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땅에 벌렁 벌렁 잘 드러누웠을 것이다. 누워서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을 것이다. 가슴팍이 뻐근할정도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광활한 하늘을 한참동안 쳐다봤을 것이다. 새하얀 구름을 구경하고, 까만 하늘에 박힌 수천개의 별을 보았을 것이다. 이따금 지구에 도착한 별빛을 처음으로 목격하기도 했을 것이다.     


 옷을 아껴입는 나는 바닥에 벌렁벌렁 드러눕지 못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여 함부러 눕지 못한다. 누워서 잠시나마 가만히 있어본다. 마른 솔잎처럼,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편안히 있어본다. 죽으면 관에 넣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히고 싶다. 내가 죽은 땅 위에서 풀이며 나무며 자라났으면 좋겠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간다. 해가 사라져가는 곳에서 하늘색, 주황색, 흰색의 빛이 섞인다. 겨울 바람이 쌩쌩 얼굴을 스치는데 마음은 왜이리 아련하고 아늑한건지. 깜빡하면 잠들어버릴만큼 포근한 졸음이 눈두덩 위에 앉는다. 정신차려 임마! 잠들면 큰일 난다!          


 산은 시시각각 제 모습을 바꾼다. 해가 떨어지면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급격히 어두워진다. 더 이상 낮의 상냥한 산이 아니다. 어두워진 겨울산은 나처럼 약한 인간이 있을 곳이 못된다. 빨리 내려가야지. 어서 돌아가야지. 집에 돌아가야지. 다음에 밝을 때 다시 찾아와야지. 어둠에 쫒겨 다급하게 산을 내려온다. 내가 머무르는 작은 방으로 허겁지겁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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