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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Feb 12. 2019

엉뚱한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구나

착한일 생색내기

양산으로 가기 위해 노포 지하철역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정류장 근처엔 할머니 두 분이 좌판을 펼쳐놓고 고구마와 당근과 고구마순을 팔고 있었다. 햇볕에 얼굴을 찡그리며 스마트폰으로 타야 할 버스를 검색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옅은 갈색 피부의 동남아 사내였다. 160 후반, 다소 외소한 체격의 삼십대 남자는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의 스마트폰 구글맵에서 특정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떻게 가야할지를 더듬더듬 물었다. 


‘나도 이곳 지리는 까막눈인데...’


사내의 스마트폰에 있는 주소를 네이버 지도에 입력해보니 울산 울주가 나왔다. 도시 외곽의 공업단지에 있는 공장을 찾아가려는 모양이었다.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야 했으며 이곳에서 두시간 가까운 거리였고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환승한 곳에서 한참 걸어가 다른 버스를 타야하는 복잡한 여정이었다. 내가 찾아간다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한국말이 서툰 이 사내가 제대로 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여기서.... 택시타면... 요금 너무 많이요...”

“근처에... 가면... 택시타도 돼요...”


나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한 장을 찢었다. 종이에 타야할 버스번호와 환승해야 할 정류장을 적으며 가는 길을 차근차근 알려주려 애썼다. 남자에게 설명하는 동안 내가 타야할 버스 두 대가 지나갔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었지만 사내를 도와주는 게 더 중요한 일 같았다.


“1127번을 타야 해요. 이 정류장에 내려서 그대로 타면 안되고 위쪽으로 쭉 올라가서 우측으로 꺽은 곳에 있는 정류장에서 타야 해요.”


설명을 들은 사내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아는 사람들이 있고 말이 통하는 한국에서 나는 쩔쩔매며 살고 있는데 외국사람이 한국에서 참 용감하고 씩씩하게 산다.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야 할텐데...


잠시후 만원 버스에 올라탄 나는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인생에서 길을 잃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인데, 저 사내는 엉뚱한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구나. 나는 사내가 가야할 차편을 설명해줬지만 정작 내 자신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고 있구나. 사내는 길은 잘 몰랐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지금 이 시점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알고 있는게 아닐까. 길을 물은 건 사내였지만 사실 진짜 길을 물어야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운전을 가르쳐줄 때 아버지는 말했었다. 운전을 할때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게 중요하다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고 있으면 운전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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