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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잠의 글쓰기2

by 쓰는 사람

저는 제 지지부진한 상태가 '스스로를 가치없게 여긴다'는걸 진정으로 못 깨달아서라고 생각하고, 이걸 진정으로 깨달으면 제가 앞으로 나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삶의 이러저러한 국면에서 스스로를 가치없게 여긴다는 걸 여러번 확인했는데도 제 삶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죠. 그러면 나는 '진정으로' 못 깨달아서 그렇다며 다시 '나를 가치없게 여기는 내 모습'을 인식하려고 하죠.


마치 자기 꼬리를 붙잡으려는 강아지처럼 빙빙 도는 것 같아. '나를 가치없게 여기기 때문에 성과를 못내는 거야!' 너는 스스로 미리 정답처럼 사고의 틀을 만들어두고 그곳만 빙빙 돌고 있어. 또 너는 두 가지 문제가 섞어서 생각하고 있어.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스스로를 가치없게 여기는 나'를 인식한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을 것 같아. 너는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싶다면서 '스스로를 가치없게 여기는 모습'만 계속해서 확인해온 게 아닐까? 너의 여러 모습 중 그 모습에만 주목하니까 '가치없다'는 자기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또 '스스로를 가치없게 여기는 것'과 '현실에서 성과를 못내고 지지부진 한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어. 너가 현실에서 성과를 못 내는 건 '성과를 내기위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는데, 너는 현실이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가치없게 여겨서 그렇다'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한다며 니 안으로 숨어버려. 그렇기에 너의 현실은 변하지 않지. 너는 며칠동안 밥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픈 사람인데, 배고픈 게 내면의 문제라면서 명상만 하는 사람 같아. 어쩌면 너는 내면을 파악한다고 하면서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행동하고 수고를 감내하고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회피해왔는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변화가 일어날까?


끝없이 맴맴 돌것 같은데요?(웃음)


너에게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마음, 가치없게 여기는 마음, 나는 못났어, 나는 못해' 라는 마음과 '내가 열심히 해서 뭔가를 이뤄야만 해, 성과를 내야만 해'라는 마음이 있다. 너는 '너를 가치없게 여기는 마음'을 나쁜 생각으로 여기고 없애려고 한 게 아닐까?


맞아요! '난 못해, 난 못났어'라는 마음이 뭔가를 하려는데 자꾸 걸리적거리고 방해가 되니까 '나쁜 마음'으로 규정하고 없애려고 한 것 같아요. 그러면 '하려는 마음'만 남으니까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아서요. 마음을 재활용품 분리수거하듯 처리하려고 한 것 같아요. 그런다고 그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어요.


너에게 글쓰기는 타인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기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너가 유능하고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증명. 너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증명. 아니, 글쓰기뿐 아니라 너가 일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심리의 저변에는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있진 않니? 이건 그냥 한번 물어보는 거야. 너는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내가 이 세상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요?'라고 물어온 게 아닐까? 너는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는 존재란 얘기를 사람들에게 듣고싶었던 게 아닐까?


.....


그리고 니가 그 질문의 대답을 타인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건, 스스로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믿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타인에게 '너는 충분히 좋은 글을 썼다, 너는 괜찮은 사람이다'는 답변을 듣더라도 잠깐 솔깃하긴 하지만 네 마음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지.


그런 심리가 깔려있는 듯 해요. 그런데 커다란 인정을 받아도 스스로를 가치있게 여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면 어떤 목적을 위해 써야 할까요? 어떤 글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까요?


너가 글쓰면서 좋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어? 몇 가지를 말해볼 수 있어?


글쓰면서... 살만하다고 느낀 순간은 내 마음을 알게 됐을 때였어요. 아주 오랫동안 내 속에 있었지만 모르던 마음이 있었어요. 인식하지 못했지만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던 그 마음이 내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규정했어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세상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를요. 그 마음을 뒤늦게 발견하게 됐을 때 충격적이면서도 이제라도 알게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속이 후련했어요. 사람이 자기마음을 아는 게 살아가는데 본질적인 요소란 걸 알게 됐어요.


이런 경험은 수십 번은 해봤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몰랐던 내 마음을 알게되고, 그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안을 바라보게 해서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게 되고, 타인을 이전까지와는 달리 보게 되고요. 이건 제가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이따금씩 글을 쓰면서 스스로와 대화한다고 느낄때가 있어요. 혼자서 농담도 하고,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차곡차곡 정리해요. 살아오며 지나왔던 시공간이 내 안에서 다시 반짝반짝 살아나요. 글쓰기를 통해 무심히 지나칠수도 있었을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게, 그것에서 몰랐던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제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어준다고 느꼈어요.


숨을 쉰다... 글쓰기는 저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저한테는 주변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이 버겁고 못견디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나조차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아서 나만의 감방에서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어요. 이해되지 않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이 얽히고설켜 저를 쇳덩이처럼 짓눌러 올 때 글을 쓰면 조금 숨통이 틔였어요. 남이 알아줄 수 없는 내 마음에 내가 관심을 가져줄 수 있었어요.


글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악을 쓰고, 서러움을 토로하고 울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게되고 수용해가는 과정이 좋았어요. 나의 외부적인 조건은 그대로인데도 살아가는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어요. 글쓰기는 어렵고 버거운 일을 만나도 버티면서 생각하고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해 줘요.


그렇다면 네가 글쓰기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은 너 스스로에 대해 알게되는 것, 그것을 통해 살아갈 지혜와 힘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맞아요. 저는 스스로에 대해 알게되는 게 늘 좋았어요. 스스로에 대해 알게되고 내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다는 걸 알게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스스로에 대해 알게되는 것도, 더 나은 사람이 됨으로써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까?


그런 면도 있었어요. 지금은 사랑받기에 부족한 사람이니까, 더 성숙하고 지혜로워져서 사랑받고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알게되는, 어떻게 살아갈지가 조금은 명확해지는데서 오는 기쁨도 분명히 있었어요.


너는 최근 몇년간 어떤 글을 써왔지? 지금 그 글을 왜 쓰려는 거지?


제가 겪어왔던 심인성통증에 대해서 써왔어요. 살아오면서 몸이 아픈 적이 많았는데, 그건 제가 몸이 약해서라거나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모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외면하고 부정할 때 너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였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고요.


몸이 아픈 건 부차적인 문제같아요. 저는 살아가는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요. 열심히는 사는데 왜 살아가는지는 불분명해요. 목적지를 모르는 채 막연히 열심히 걷는 것 같아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지가 뚜렷해져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좀 사는 것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그럼 글쓰기의 목적이 '자기인식'인건가? '자기인식'을 글쓰기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목표로 삼으면 너는 '자기인식'이 안된 상태의 너를 또 부정하게 될 것 같아. 너를 부정한 상태에서 쓴 글에 대해서 너는 또 불만족스럽게 느낄 거고.


이제 조금 알겠어요. 제 글쓰기에는 항상 목적이 있었어요. 책이 잘되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돈을 많이 번다거나, 지금보다 더 지혜롭고 성숙해진다거나, 공모전에 당선돼서 사람들에게 작가로서 인정받는다거나. 그런 걸 걷어내더라도 '자기인식'이라는 목표를 세워서 흐릿하게, 물에 물탄듯 반복되는 무기력한 삶을 바꿔보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전제하고 글쓰기로 스스로를 충만한 쪽으로 이끌고싶었던 것 같아요.


전 항상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사람들이 휴가계획을 세운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어요. 쉰다고? 쉰다는 말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현재의 나는 모자라다고 느껴서 변화해야하는데!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해서 쉴 여유가 없는데! 저는 늘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라기보다 나는 부족하니까 변화해야한다는 강박.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변화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냥 나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써보고 싶어요. 어딘가로 헐레벌떡 달려가는 글이 아니라 동네 개천가를 산책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가만히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주절주절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주르륵 말해보고 싶어요. 친구에게 말도 안되는 썰렁한 개그를 하듯 글을 써보고 싶어요. 카톡방에 웃긴 짤방을 올리듯 글을 써보고 싶어요. 가만가만 노래를 읊조리듯 글을 써보고 싶어요. 컵라면에 물을 붓듯 글을 써보고 싶어요. 그게 저에게는 숨쉬는 글쓰기고 존재하는 글쓰기고 쪽잠의 글쓰기고 여름휴가의 글쓰기가 될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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