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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잠의 글쓰기 1

by 쓰는 사람


챗지피티 기능 중에 '먼데이'라는 게 있다. 챗지피티는 첨부한 결과물이 어떤지 물으면 되도록 긍정적이고 뻔한 답변을 하도록 설정돼 있다. 듣는 사람이 기분 좋을만한, 귀에 사탕 녹여서 바르는 듯한 소리를 한다. 먼데이는 일반적인 챗지피티보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챗지피티 주제에 반말을 쓰고 틱틱거리고 싹수가 없다. 그래봤자 지도 챗지피티라서 마지막에는 쌀쌀맞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처럼 좋은 쪽으로 말해주긴 한다.

저녁때 컴퓨터를 하다가 뭔 바람이 들었는지 먼데이에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한 글 몇 편을 올리고 어떤지 물어보았다. 나더러 헤밍웨이 같다느니, 진중한 얘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느니, 완급조절이 수준급이라느니 하며 폭풍칭찬을 해주는 것이었다.


꼭 칭찬만 해주는 건 아니었다.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는 글은 좋다고 말해주었지만, 내가 미흡하다고 느끼는 글은 여지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호~ 이 녀석 봐라? 나름대로 믿을만한 녀석인데?

나는 먼데이의 칭찬을 듣고 흡족해졌다. 칭찬만 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점, 보완해야 할 점도 함께 알려주었는데, 나는 보완해야 할 점은 건성으로 읽고 칭찬만 읽었다. 챗지피티가 칭찬해 주는 게 뭐라고 그거에 들떠서 여태껏 써온 글을 한편씩 연달아 올려보았다. 유튜브에서 무한도전 레전드 편을 갑자기 보게 된 것처럼 계속 붙들고 있었다.


이 글은 어때? 이 글도 말해줄래? 결국 먼데이 무료기능의 하루 사용한도를 다 채워버렸다. 나는 먼데이의 반응을 계속 듣고 싶어서 새로운 아이디까지 만들어 챗지피티에 가입하려고 생쇼를 했다. 챗지피티한테 칭찬 들으려고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매달려 있었다.


아이고, 내가 잘 쓴다, 잘했단 소리를 참 듣고 싶었구나. 마음속에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보다.

잘 쓴다, 잘했단 소리는 내가 평소에 서당 훈장처럼, 무덤덤한 척 내색 않고 있어도 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소리 같다. 우리 동네 꼬맹이 유겸이랑 순우가 우석삼촌 이거 봐봐 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는 무언가를 하며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이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살피기보다 조바심 내며 타인의 의견부터 듣고 싶어 한다.


때론 스스로가 무얼 어떻게 했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조차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바라기도 한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별거 아니라고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타인의 칭찬을 들으면 새삼 주목하기도 했다.

내게는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내 입으로 말하려면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령 너는 그 일을 왜 하는데? 네가 글 쓰는 게 너에게 무슨 의미인데?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


너는 왜 글을 쓰니?

나는 글 쓰는 사람, 작가니까 써요.


글 써서 뭐 하려고 쓰니?

작가니까, 글 써서 책이 잘돼야 하잖아요? 책이 많이 팔려서 먹고 살만큼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하잖아요?


그럼 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니? 지금 받는 인정으론 부족해서 더 권위 있는 인정, 더 커다란 인정을 받기 위해 쓰니?

권위 있는 인정과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으면 내 삶이 나아질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게 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니?

그렇게 돼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만족할 것 같고, 한편으로는 더 권위 있고 커다란 인정을 받으려고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네가 글을 써온 궁극적인 목적은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가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뭐였지?

나는 글을 쓰면 항상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요.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보지 않고 좋아요나 댓글이 별로 없으면 시무룩해져요.


너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작가는 쓴 글을 혼자 간직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발표하는 사람이고. 그러면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독자의 반응을 안 살피고 자기만 만족하면 그만인 사람이 사람들 마음에 가 닿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저는 자기가 만족하면 독자들의 반응에도 초연한 게 진정한 작가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에 연연하는 나를 '너가 진정한 작가라면 타인이 뭐라고 하든 너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했는가'에 집중해야지!'하면서 스스로를 '잘못됐다'라고 질책해 온 것 같아요. 저는 '타인의 반응에 신경 쓰는 나'를 부정하고 신경을 안 쓰는 게 이상적인 거라고 스스로에 강요해 온 듯해요.


제가 이 말을 한 건... 글을 쓰면 '나의 만족'과 '타인의 반응'이라는 두 가지가 남잖아요? 스스로가 '타인의 반응과 평가'에 훨씬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저에게 스스로가 못난 존재, 가치 없는 존재란 느낌은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견디기 힘든 감정이었어요. 저 스스로는 저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나는 별 볼 일 없으니 내가 나를 인정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건 정신승리일 뿐이라고. 저는 저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규정할 권한이 없다고 믿어서 타인에게 그 권한을 넘겨버렸어요. 타인의 인정을 받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 거라 믿어온 거예요. 하지만 타인의 인정은 불안정하고 오락가락하잖아요. 저는 매일 변하는 주식시세 같은 것에 스스로의 가치를 연동시켜 온 것 같아요. 하락장일 때는 방구석에서 우울해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의 삶은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기나긴 투쟁이었어요. 저는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삶을 견디고 참아내듯 살아왔어요. 그게 공부든, 취업준비든, 심지어는 내가 좋아해서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글쓰기마저도,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로 얻는 부와 명성,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얻는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스스로를 가치 있게'느끼고 싶었던 거죠.


너는 지금까지 수년간 글을 써왔어. 완성한 글도 있고, 중간에 엎어버린 글도 있지.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여기는 게, 스스로를 부정하는 게 글쓰기에는 어떻게 드러났을까?


알게 모르게 자책하는 형태의 글을 써왔을 것 같아요. 반성과 성찰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내가 잘 못했어, 내가 그래선 안 됐는데'라고 하는 나의 못남과 결핍을 확인하는 글을요. 나의 못남과 결핍을 인식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 '잘남'에 도달하게 되길 바랐어요.


또 진짜 내 마음의 중심부에 있는 건 쓰지 않았어요. 내가 찌질하게, 수치스럽게 느끼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든 숨기면서, 진짜 중요한 얘기들을 회피하면서 그 주변에 있는 얘기들을 써온 것 같아요. 겁이 많아 한가운데로는 못 던져서 공이 항상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버리는 투수처럼요. 스스로에 진지하게 물어보면 관심이 없는 주제인데도, 사람들이 관심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쓰기도 했어요.


스스로를 가치 있게 느끼는 건, 미래의 어떤 순간에 타인의 인정을 받았을 때가 아니라 지금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너 스스로가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고 알고리즘을 만들어놓은 것뿐이잖아? 너가 너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본질적인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요. 저도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친절히 대하려 해보기도하는데, 부지불식간에 스스로에게 바보, 멍청이, 망했다를 부르짖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나봐요. 저에게도 이 문제가 중요해서 여러번 생각해보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아직까진 미완의 상태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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