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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내기로 모여!

by 쓰는 사람

며칠전에 경남 함양 백전면으로 모내기를 다녀왔어요. 온배움터라는 단체에서 매년 '모모모(모두 모내기로 모여)'란 행사를 열고있는데요. 모내기 철이면 전국에서 아이, 엄마와 아빠, 청년부터 장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요. 함양 온배움터를 지키며 농사짓는 어른들이 늘 반갑게 맞아주셔요.



맨발로 논에 들어가서 모도 심고, 같이 새참 먹고, 저녁때는 막걸리 마시고 노래도 불러요. 이곳은 지리산 자락에 있고 논밭을 둘러싼 산봉우리도 이뻐서 주변을 가만가만 걸어다니기만 해도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마음이 고요해져요.



온배움터 실무진들은 매년 아이, 어른이 한데 어우러져 놀 수 있는 놀이를 궁리해요. 이번에는 '긴 줄 만들기'를 했는데요. 모인 사람이 서른 명 정도였는데 한 조에 대여섯명씩 되도록 조를 나눴어요. 3분이란 제한시간동안 조원들이 가진 물건을 모두 이어서 가장 긴 줄을 만드는 조가 이기는 놀이였어요. 잠바와 남방을 벗어 늘어놓고, 여자애들은 머리끈이며 팔찌를 늘어놓았어요. 저도 점점 놀이에 빠져들게 됐어요. 꼬질꼬질 손수건을 꺼내고, 주머니에 구겨넣은 두루마리 휴지 몇 장을 줄에 보태고, 휴대전화도 놓았어요. 아... 더는 가진 물건이 없는데... 그래! 휴대전화 케이스를 벗겨서 늘어놓으면 길이가 늘어날거야! 저는 다른 사람 휴대전화 케이스까지 벗기고, 누군가가 바닥에 놓은 폴더폰을 펼쳐서까지 길이를 늘렸어요. 저희 '풍선'조의 물건은 방 아래쪽에서 출발해 위쪽까지 갔다가 다시 아래쪽으로 한참이나 내려왔어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옆 조의 줄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어느 중년아저씨가 지갑에 있던 만원짜리 지폐를 한장씩 바닥에 깔며 돈으로 긴 줄을 만드는 거예요. '돈쭐낸다'가 이런 걸까요? 우리 '풍선'조도 나름대로 애썼지만 돈다발의 힘은 이길 수 없었어요. 마치 지폐로 공중에 다리를 만들어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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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한 놀이는 알까기였어요. 직사각형 모양의 긴 탁자 위에서 바둑알을 손끝으로 튕겨서 탁자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멀리 보내면 이기게 돼요. 온배움터 실무자 매실이 바둑알을 한 사람당 두 개씩 나눠 줬어요. 선수들이 경기 전에 서로 마주 서서 악수를 나누는데 긴장감이 맴돌았어요. 알까기가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 진지할까요?



조대표가 가위바위로로 선후를 정하고 알까기를 시작했어요. 바둑알은 조금만 세게 치면 탁자를 벗어나 날아가버렸고, 약하게 치면 삼센치 정도밖에 안 움직였어요. 저는 잘하고 싶어서 먼저 받은 바둑알을 방바닥에 놓고 연습삼아 쳐보기까지 했는데 막상 칠 때는 긴장했는지 조금밖에 안 나가서 주변 사람들이 하하하 웃었어요.



저희조가 탈락하고 나서는 다른 조 경기를 봤는데, '끄덕'이란 친구의 실력이 대단했어요. 손끝에서 출발한 바둑알이 일직선으로 쭈욱 나가서 테이블 끄트머리 직전에서 딱 멈추는 거예요.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매번 할때마다요. 지리산 깊은 곳에서 정기를 받으며 아침저녁으로 알까기 수련을 한 것만 같았어요. '끄덕'이 알을 칠 때마다 주변에선 엄청난 탄성이 터져나왔어요. 저도 흥분하며 박수치고 환호성을 질러서 나중에는 머리가 찌끈거렸고 손바닥이 시뻘개졌어요.



홍준이란 아이가 보낸 검은돌이 탁자 거의 끝에서 멈췄을 때 우리는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끄덕 손에서 튕겨나간 흰돌이 검은돌을 탁자바깥으로 튕겨내버리고 그자리에 딱 멈추는 거예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어요. 우리가 있던 방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어요. 끄덕의 저력은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다음번에도 끄덕이 보낸 돌이 끄트머리에 있던 돌을 탁자바깥으로 탁 쳐내고 그자리에 딱 멈추는 거예요. 저는 목이 다 쉬어버렸어요. 마치 손흥민이 혼자서 칠십미터 넘게 드리블하며 수비수 7명을 제치고 골 넣는 장면을 직접 본 것 같았어요. 2025년 들어서 이렇게 흥분한 건 처음이었어요.



매년 모내기 하러 올 때마다 별다른 거 없이도 아이, 어른 어울려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요. 어울려 놀면서 참 즐거웠는데 이 즐거움은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살 수 없는 순도높고 순수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즐거움에는 온배움터 실무자들이 세심하게 모임을 기획하고 이 자리의 한사람 한사람을 선의로 정답게 대한 것,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 온배움터 청년들이 서로를 위하며 굳은 일 안가리고 함께 하는 착한 심성을 가졌다는 것, 수년의 시간동안 서로 맺어온 관계와 그 관계에서 쌓인 애정과 스스로를 간추리려는 정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 밍기적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속에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어요. 저는 이런 경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맨발로 흙을 밟고 모를 물논에 꾹꾹 눌러 심는 것,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나누는 것, 말도 안돼는 농담을 던지고 파하하 웃는 것, 이런 것들을 제 삶에서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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