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생활을 마치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회복되고부터는 어떻게 먹고 살지를 생각해야 했다. 막상 직업을 구하려니 취업준비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경력이라곤 마트 정육코너에서 알바 몇 개월 해본 게 전부였다. 학점은 3점을 턱걸이로 넘겼고 토익 최고 점수는 550점이었다. 이 나이에 이 스펙으로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혼자서 돈을 벌 수 있는 남다른 능력도 없었다. 읽고 쓰는 데 관심이 있으니 글쓰기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볼까 생각도 했지만 막연하고 가능성도 희박한 일처럼 여겨졌다. 내 생각은 공무원 시험쪽으로 기울었다. 백에 아흔일곱이 떨어지는 시험이지만 죽어라 공부하면 나는 세 명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합격만 하면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버는 무난한 삶이 보장되리라 생각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만큼 절박했다. 적막한 집에서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은 수험서를 보는 데 썼다. 공부하고 밥먹고 공부하고 밥먹는 도돌이표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공부할 분량이 방대했다. 기본서와 기출문제집만 해도 과목당 2000페이지는 됐다. 이 두꺼운 책들을 시험 전까지 최소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 합격자들 중에는 10 회독, 20 회독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읽는 속도가 더뎠다. 끙끙대며 수험서를 붙잡고 있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기를 쓰고 달려도 자꾸만 후미로 뒤쳐지는 마라토너 같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수험기간 내내 시간에 쫓겼다. 더 이상 독서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일주일에 60시간 가까이 수험서만 읽다보니 그 이상의 책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내 방 벽에 국어 맞춤법 암기사항을 붙여두고 수시로 들여다봤다. 화장실 벽에는 사자성어와 한문을 붙여놓고 양치할때마다 들여다보았다. 씻는 시간조차 아껴보려고 샤워하면서 행정법 조문 녹음파일을 들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었는데 그마저도 몽땅 쉬려니 불안해서 점심 무렵까지는 책을 붙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서 조용히 보냈지만 늘 누군가에 쫓기듯 불안했다. 밤이면 오랫동안 기다린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놓치거나, 불한당에게 시달리며 도망다니는 꿈을 꿨다.
나는 수험공부가 싫었다. 수험서에는 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내용이 방대하게 나열돼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책들은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어왔는데, 수험서는 10개월이 넘는 동안 단 한번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수험서를 읽을 때면 억지로 참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교의 지시에 따라 연병장에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을 때와 비슷했다. 어쩌면 수험서가 재미없는 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일지도 몰랐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내용을 억지로 외우며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며 살아가는 사회생활을 예행연습하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보상을 바라보며 하기싫은 공부를 참아내는 자체가 체제순응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수험서를 책을 쓴 사람도,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것이 별 쓸모없는 내용이란 걸 안다. 의미없는 내용이 담긴 두꺼운 책을 수십만의 수험생들이 죽어라 외우는 현실이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극 같다. 이 암기목록을 꾸역꾸역 외우는 건 오직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이고, 다시는 이 재미없는 책을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왜 수험공부를 혐오하면서도 여기에 이렇게 목을 매는 것일까? 부조리하다고 느끼면서 왜 이 공부를 계속하는거야? 하지만 이런 생각에 깊게 빠져들면 안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선 안된다. 일단 붙고나서 생각하자.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는 지식이라고, 나름 재미도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따금 거울을 보면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있었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직업도 없이 집에서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스스로가 비참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내 처지가 한없이 초라했고, 남들앞에 나를 내보이기가 부끄러웠다. 난 수험기간동안의 자신이 투병생활할 때의 자신보다 더 싫었다.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죽고싶다는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안그래도 약했던 몸이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삐걱거렸다. 몇시간씩 앉아있다보면 등허리와 목근육이 나무도마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지압원에서 지압을 받으며 근근히 공부를 이어나갔다. 소화도 예전보다 안됐다. 속이 자주 더부룩했고 먹는 양이 줄었다. 볼은 홀쭉해지고 안그래도 여윈 몸은 겨울날 나뭇가지처럼 메말라갔다. 깊게 잠들지 못해 새벽마다 몇 차례씩 깼다. 시험을 2개월 앞두고는 가슴, 배, 등, 허벅지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고단한 수험생활, 시험결과에 대한 중압감이 건강문제로 나타난 듯 했다.
열 달간 준비한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합격선과 20점 이상 차이가 나서 공부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이 주 정도 쉬었다가 내년 시험에 도전해볼 계획이었다. 다시 수험서를 펴고 공부를 하려는데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보려하면 속에 천불이 일었고 명치가 죄어왔다. 온 몸의 세포가 온 힘으로 수험서 보는 걸 거부했다. 다음날도, 일주일 후에도 똑같은 증상 때문에 책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시험 준비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시험에 떨어진 후 몸과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무기력과 우울이 나를 덮쳤다. 몸에 힘이 없는 건 아닌데 내부에 기력이 고갈된 듯 무언가를 하기가 힘이 들었다. 어떤 것에도 집중이 안돼서 소설책조차 읽을 수 없었다. 스스로가 잔뜩 녹슨 채로 황무지에 방치된 기계처럼 느껴졌다. 이따금씩 까닭없이 심장이 벌러벌렁 뛰었다. 가슴이 갑갑해 크게 심호흡하듯 숨을 쉬었다. 온종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예전부터 감정적으로 괴롭고 혼란스러울 때는 많았지만 스스로가 통제가능한 수준이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정돈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스스로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안에서 요동치는 화인지 좌절인지 혼란인지 자기혐오인지 모를 것들이 주체가 안됐다. 검고 끈적이는 감정이 눈으로 코로 귀로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상태가 안좋다는 걸 밝히고 믿을만한 상담사가 있는지 물어보는데 주룩 눈물이 났다. 누군가에게 상태를 말하고 나니 내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내가 아프단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시험에 떨어진 충격이 예상보다 컸던 것이다. 나는 도박에서 졌고 안정된 삶과 맞바꾸려했던 생의 1년을 잃었다. 나는 사막의 끝이라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펼쳐진 광대한 사막에 질려버렸고 기를 쓰고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것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막연히 괴롭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괴로움은 잘 몰랐다. 짧게나마 겪고보니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아득한 무력감이 어렴풋이 짐작이 됐다. 사람은 자신을 어찌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양치하고 발 씻는 사소한 일조차 물처럼 움켜잡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본인에게 가장 절망스럽다. 그들에게 나약하니, 의지가 부족하니 같은 말을 함부로 해선 안되는 것이다. 오직 겪음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의 아픔이 있었다.
지역의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그간의 내 사정을 들은 젊은 임상심리사는 내게 별다른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 "그동안 충분히 열심히 해오셨고 잘 해 오셨어요. 누구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상황인데 정말 잘 해 오셨어요." 라고 말해주었을 뿐이다. 그와 상담을 한 뒤 부글부글 끓던 마음의 혼란이 어느정도 잦아든 건 그가 해준 말이 내게 꼭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을법한 그 간단하고 뻔한 말을 혼자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나를 더욱 안심시켜 준 건 정혜신씨의 책에서 만난 ‘우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란 구절이었다. 나는 갑자기 밀려드는 무기력과 울화가 고통스럽고 불편해 얼른 이것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던 이전의 생활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무기력과 우울을 비정상이고 극복해야할 상태로 여겨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면서도 한편으론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스스로를 타박했다. 정혜신씨는 우울과 무기력이 병적인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어떤지 알려주는 지표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7년간 질병에 시달리다 1년간 준비한 공무원시험에서 떨어진 사람이 밝고 씩씩하고 생에대한 낙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했다. 감정은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휘청이고 불에 덴듯 쓰라리고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내 마음도 옳다, 굳이 애써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우울하고 무기력해도 된다는 말이 나를 결정적으로 안심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