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뒤 상병, 여울님과 기사식당에서 허름한 점심을 먹었다. 여수 어딘가를 걷고 있는 길멍 일행과 합류해야 했다. 26-1번 버스를 타고 가다 벌구 정류장에 내렸다. 정류장에서 마을 쪽을 내려다보니 밭과 가옥, 포구에 떠 있는 소형 어선이 보인다. 상병씨가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어르신께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을 때 오른편의 내리막길 도로에서 한무리의 남녀가 나타났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양팔을 머리위로 휘젓고 큰소리로 우릴 부르며 다가온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고 옷은 먼지가 내려앉아 꽤째째하지만 다들 표정은 밝다. 대부분 작은 힙색을 찼거나 아예 짐이 없다. 맨발로 걷고 있는 한 사람은 발바닥이 새까맣다. 그들이 우리 일행 한명 한명을 번갈아 안아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껴안으려니 쑥스럽다.
상병님과 여울님이 길멍여행에 2박 3일간 합류한다고 했을 때 나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기보다 매일 비슷한 일과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평일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단체에 출근해 일한다. 주말이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보다 컴퓨터에 저장해둔 옛날 영화를 보며 집에서 쉬는 쪽을 택한다. 한 집단의 쥐는 단조롭고 반복되는 환경에, 다른 집단의 쥐는 변화무쌍하고 생기넘치는 환경에 살게했더니 후자쪽 쥐들의 대뇌피질 무게와 두께가 훨씬 크게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내 무미건조한 생활이 경험의 폭을 한정시키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알지만 익숙한 생활방식을 깨는 게 도무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누가 여행을 가면 꼽사리껴서라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걸 모르는, 내 작은 방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답답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길멍은 ‘길에서 멍때리기’의 줄임말이다. 이 여행의 취지는 숙소와 음식을 돈으로 사지 않고 사람들의 호의와 환대에 기대 전국을 떠도는 것이다. 이 여행을 기획한 원영과 초이는 이미 몇백일째 여행을 이어왔고 페이스북에 여행일지를 공유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을 눈여겨보았고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한 사람들은 자신의 여건에 따라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몇달까지 이들의 여행에 동참했다. 우리는 이들이 수백일째 이어온 여정에 잠시나마 함께하게 된 것이다.
젊은이들 몇몇이 땀에 절어 걸어가는 모습이 동네 어르신들 보기에 신기했던 모양이다. 집 앞에 서 계신던 할머니가 굵은 오이 몇 개를 가져다 주셔서 고맙게 받았다. 우리는 여수의 낭도를 목표지점으로 삼고 도로변을 따라 걸었다. 오전내내 흐렸던 하늘에서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줄기가 굵어진다.
초이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허리춤에서 우비를 꺼내 입는다. 초이는 얼굴이 조그마하고 몸이 마른편인데 키는 183센치 정도로 호리호리하게 크다. 몇백일째 길 위에서 햇볕을 맞으며 걸어온 탓에 얼굴부터 발가락까지 온통 새까맣게 그을렸다. 단발 머리를 뒤로 묶고 코와 턱밑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구한말의 보부상 같은 인상을 준다. 웃을 때 얇아지는 눈매가 순박해보인다. 허리에 찬 작은 보따리와 그 옆에 매달린 얇따란 슬리퍼가 그가 가진 짐의 전부다.
여행 초반에는 기운이 남아돌아 뭣도 모르고 신나는 법이다. 비를 맞으며 걸으니 괜시리 마음이 들뜬다. 내가 언제 비를 맞으며 여수의 국도를 걸어보겠는가. 구름이 껴서 뜨거운 태양볕을 가려주니 좋다. 목덜미와 팔등으로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원하다.
오후 네시쯤 포구를 끼고 있는 여산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바닷가 짠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이 짠내가 있으면 맨밥만 먹어도 간이 맞을 것 같다. 포구에는 통통배들이 굵다란 밧줄로 묶여있다. 비로 축축해진 길바닥에는 조그만 참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슬슬 눈치를 보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후다닥 옆걸음질쳐 달아난다. 비가 안그쳐서 오늘은 더 이상 무리해서 걷지 않기로 했다. 이제 일행이 머물곳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쓰지 않는 여행이므로 마을 어르신들과 어떻게든 사바사바(?)를 해야 한다.
기독교인인 상병씨가 마을 한켠에 솟은 십자가를 보더니 교회오빠 찬스를 써보겠다 했다. 교회사람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본다고 했다. 나는 상병씨 뒤를 따라갔다. 상병씨가 교회 집사님께 길멍친구들의 예배당 숙박을 부탁하자 가능하긴 한데 화장실이 없어 불편할거라 하셨다. 상병씨는 승낙을 얻어낸 다음에야 본인이 교인이란 걸 밝혔다. 우리가 잠깐 예배당에 앉아있는 사이 집사님이 오시더니 여기보다 시설이 좋은 마을 노인정으로 가보라 하셨다. 이장님이 노인정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노인정은 지은 지 몇 년 안되어서 그런지 벽지와 장판이 깔끔했다. 개수대와 가스레인지가 있어 음식을 해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는 온수기도 갖춰져 있었다. 노숙을 밥먹듯이 해온 길멍친구들은 이 정도 시설이면 호텔과 다름없다고 했다. 다들 열심히 몸을 씻었다. 여행하다보면 제대로 된 시설에서 씻을 기회가 얼마 없으니 씻을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돈 없이 여행하는 청년들이 노인정에 묶는다는 소식이 퍼졌는지 근처 식당 사모님게서 두부김치, 막걸리, 매실음료를 가져다 주셨다. 어느 어머니께서는 이불과 수건을 챙겨 오셨다. 이 마을의 인심은 경쟁, 불신, 삭막, 몰인정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요즘의 세태와는 딴판이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낯선 사람들에게 선뜻 잠자리와 음식을 내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노인정 앞에는 십 미터는 족히 넘는 보호수가 있었다. 300년생의 느티나무다. 1700년대부터 이곳에 서서 바닷가 마을의 모든 것을 지켜봐온 나무다. 여덟명은 팔을 맞잡아야 간신히 에워쌀 수 있을만큼 우람한 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다. 중심부에서 뻗어나간 세 개의 가지중 우측 가지는 죽었다. 커다란 가지는 죽어서 회색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나무에 붙어서, 마비된 신체기관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에는 진녹색 이끼가 피었다가 허옇게 매말라가고, 땅에서 기어올라온 매미유충이 허물만 남기고 사라지고, 껍질없는 달팽이와 새빨간 진딧물과 꼬마지네가 기어다니고, 하얀 녹말을 입에 문 개미들이 바쁘게 오간다. 수백년 전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 나무 앞에서 빌어왔을 것이다.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나무의 영적인 힘은 차치하고라도 나무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에 든든한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길멍 사람들이 여산마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수에서 횟집을 하는 용궁요정님이 응원차 찾아오셨다. 용궁요정님은 등빨이 좋고, 팔뚝이 굵고, 굵은 수염이 나서 삼국시대의 장수같은 인상인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어딘지 섬세한 구석이 있었고, 사람들을 자상하게 챙겨주었다. 우리에게 맛있는 걸 먹여주겠다며 1.5톤 트럭에 삼겹살과 곰장어, 숯과 바비큐장비를 실어왔다. 우리는 용궁요정님의 트럭 뒤에 올라타고 마을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있는 바닷가의 정자로 갔다. 채식을 하는 초이는 근처 수풀에서 반찬으로 먹을 산야초를 채집해왔다. 요정님은 손질한 곰장어와 칼집을 낸 삼겹살을 숯불위에 올리고 굵은 소금을 뿌렸다. 가스버너에는 냄비밥을 앉히고 넓적한 돌로 뚜껑을 눌러두었다. 우리는 정자에 둘러앉아 용궁요정님이 마련해 준 뜨거운 밥과 고기를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주변이 점점 어둑해졌다. 밥을 다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에게 모기들이 축제라도 하듯 달려들었다. 다들 손을 휘둘러 모기를 쫓느라 바쁘다.
“모기 물린데는 바닷물로 소독해야 되는데”
용궁요정님이 한마디 하자 지산이 바다에 들어가자고 했다. 너나 할거없이 우르르 일어나 바닷가로 간다. 사람들은 깜깜한 밤바다로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노는데 나는 모래사장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난 안들어갈거야, 아까 샤워하고 양말까지 새 걸로 갈아신었어. 이 밤에 바다에 들어갔다가 소금물과 모래로 또 엉망이 되면... 언제 다시 씻고, 옷은 또 언제 말리고... 아 귀찮아.’
그들이 소리지르며 물장구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순간적으로 ‘에라, 모르겠다’며 바지를 걷어올리고 바다로 들어갔다. 발가락 사이로 축축한 모래가 들어찬다. 정강이를 적시는 바닷물의 감촉이 선득하다. 파도가 밀려와서 물이 허벅지께까지 찰랑거린다. 여름바다는 나도 모르게 씨익 웃게 될만큼 시원했다. 순간 스스로에 대한 서늘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난 옷 젖는게 싫어서 물에 들어가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양말이 젖을까봐, 다시 씻는게 귀찮아서 우두커니 해변에 서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단지 이 바닷가에서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를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난 뭐든 아끼는 경향이 있었다. 티셔츠를 한번 사면 목부분이 후줄근하게 늘어질 때까지 입는다. 납작해진 치약튜브를 기를 쓰고 짜내고 양말에 구멍이 나도 버리지 않는다. 아끼는 성향은 삶의 태도로까지 이어져 나는 인생마저 아껴온 것 같다. 나는 인생의 선택 앞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누릴지보다 그 선택으로 인해 지게 될 위험부담만 따졌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될까 두려워서 아무것도 택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냈다. 나는 그렇게 뭐든 아끼기만 하면서, 본전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하면서 정작 그때그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놓치고 있었다. 인생의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망설이기만 하면서 인생 그 자체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바닷물의 서늘함과 갑작스런 깨달음이 뒤섞여 왠지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길멍 사람들은 나랑은 달랐다. 옷이 젖든 말든 상관않고 깔깔대며 물장구를 쳤다. 초이가 여름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들 부끄러운 기색 하나없이 큰 소리로 따라불렀다. 지산이 오징어가 나타났다며 휴대폰 불빛을 비추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두운 바다에서 오징어를 찾아다녔다. 이 사람들은 인생을 아끼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산다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인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