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는 내 옆자리에서 잠을 잤다. 그는 남들보다 삼십분 쯤 먼저 일어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뒤이어 일어난 다른 사람들은 체조나 마사지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긴 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라 저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나랑 여울님이 라면에 넣어먹으려고 용궁요정님이 주시고 간 문어를 다듬고 있을 때 초이가 우쿠렐레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불렀다.
나는 꽃이 좋아요. 민들레도 좋아요.
산들도 좋아요. 시냇물도 나는 좋아.
어둠이 내리면 모닥불가에서
붐디야다 붐디야다 붐디야다 붐디야다
그날 아침 초이의 노랫소리를 들었다면 누구라도 그가 진정으로 행복해하고 있단 걸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한 음색에 내 마음까지 환하게 밝아졌다. 내가 알기로 그는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돈 한푼 없이 몇 달째 여행중이었지만 늘 즐겁고 평온해보였다. 그는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는 살아가는 일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 했고, 노래는 그에게 삶의 기쁨을 표현하는 수단인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보며 다소 의아했다. 가진거라곤 하모니카와 비닐우비가 전부인 사람이(우쿠렐레마저 원영의 것이었다.) 어쩜 저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여산노인정 앞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섰다. 비에 젖은 운동화가 아직 덜 말라서 여울님이 샌들을 빌려주셨다. 여수에서 고흥으로 가려면 적금대교와 팔영대교를 건너야 한다. 외따로 떨어진 섬과 섬을 거대한 철제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까마득히 솟은 다리 아래로 남도의 청색 바다가 펼쳐져있다. 바다위로 듬성듬성 솟아있는 바위섬, 둥둥 떠 있는 컨테이너 선박이 보인다. 바닷바람이 휙쉭쉭쉭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늘과 드넓은 바다가 시야를 꽉 채운다. 바다위를 날아서 건너는 듯하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남도의 풍경은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꾼다. 수십킬로미터 크기의 거대하고 정교한 예술작품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사진이나 글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직접 걸어봐야만 알 수 있는 웅장한 풍경이다. 이 풍경을 감동적으로 느낀 건 내 발로 이 다리 위를 두시간 넘게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로 오분만에 휙 지나갔다면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간천마을 어귀에서 새로운 이들이 길멍 여행에 합류했다. 하얀색 포터 트럭에서 내린 세 사내는 길멍친구들과 잘 알던 사이인 듯 반갑게 포옹한다. 석수와 행자는 길게 기른 머리를 이마뒤로 넘겨 묶었고, 돌배는 핑크색 나시티를 입었다. 다들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고 여유가 넘쳐서 자유로운 영혼들 같다. 남들에게 번듯해 보이는 삶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나와는 달리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아온 이들 같다. 나는 이렇게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만날때면 욕망을 억누르고 남 눈치도 많이 보는 스스로를 자각하게 된다.
점심때가 되어 탁발을 해야 했다. 우리는 빈 반찬통을 들고 세넷씩 흩어져서 밥을 얻으러 갔다. 탁발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나는 지산과 초이 뒤를 따라다녔다. 우리는 먼저 마을큰길 근방에 있는 주택으로 갔다. 담장이 없어 마당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묶여있다. 문을 두드리자 7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셨다. 초이는 우리가 누구인지 소개하고 이 마을과 아주머니의 일상에 대해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다 밥과 반찬을 얻을 수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나눠줄만한 반찬이 없다며 망설이던 아주머니는 어떤 음식이든 괜찮다고 하자 5키로그램짜리 순창고추장통에 묵은김치를 한가득 담아주셨다.
지산은 넉살이 좋았고 순발력이 뛰어났다. 탁발을 할 때 미리 준비해 둔 대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상대에 맞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두 번째 방문한 집의 아주머니는 수줍음이 많았는데 나눠주기엔 반찬이 너무 변변찮다며 몇 번이나 사양하셨다. 지산은 눈웃음과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면서 어떤 음식이든 고맙게 먹겠다며 끈기있게 설득했다. 10분간의 협상(?)끝에 부끄럼 많은 아주머니가 밥통가득 찬밥과 머위장아찌를 담아주시는 걸 보며 나는 지산에게 감탄했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것이다. 자동차 판매사원이 된다면 일년에 자동차 100대쯤은 가볍게 팔아버릴 것이다.
양봉을 하는 마을이라 그런지 벌이 많았다. 나뭇가지를 꺾어 과도로 껍질을 벗겨 젓가락을 만들었다. 우리는 나무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서 웽웽대며 날아다니는 벌을 구경하며 얻어온 음식을 먹었다. 신김치, 머위장아찌, 마늘장아찌, 찬밥이 전부인 소박한 점심이지만 다들 밥알 한톨, 김치 한조각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는다. 마을분들이 나눠주신 마음을 허투루 생각해선 안된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탁발은 길멍여행의 핵심인 것 같았다. 탁발은 자칫 우리만의 여정이 될 수도 있는 길멍여행을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연결해주었다. 매끼니 밥을 먹으려면 탁발을 해야 한다. 생판처음보는 아주머니, 아저씨, 편의점 직원에게 말을 건내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돈과 교환하던 식사와 숙박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한다. 우리는 대가없이 주어지는 호의에 감동하고 그들 또한 돈 외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도우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탁발의 경험은 길멍친구들에게도 생소했지만 도움을 요청받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것이었다. 구걸과 스님들의 탁발이 금전을 요구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음식탁발의 전통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장하림은 ‘사람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살맛을 느낀다’고 말했다. 단절이 일상인 현대사회에서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도울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자선단체에 계좌이체로 돈을 송금할 때와 낯선 사람에게 자기 집에 있는 찬밥을 나눠줄 때의 뿌듯함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길멍여행의 탁발은 눈앞의 배고픈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기회를 마련해준다.
생각해보면 탁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음식을 나눠달라고 부탁하는 것 자체가 무능함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탁발하는 자신을 떳떳하게 여길 수 있고, 탁발거부를 담담히 받아들일만큼 마음이 유연한 사람만이 탁발을 하며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 매 탁발 자체가 자신을 낮추고 타인과 관계맺는 훈련이 된다. 길멍 친구들은 돈한푼 없이 사람들의 선의와 나눔만으로 수백일의 여정을 이어오면서 돈과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충만만 삶을 살 수 있다는 놀라우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뼛속깊이 체감했다고 했다.
수천수백년 전부터 길떠난 탁발승들은 이런식으로 여행해오지 않았을까. 부처와 제자들의 이야기는 읽는이에게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 온종일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음식을 얻어 먹는 사람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 숨쉬는 현실이 된다. 그들의 여행이 고되기만 했던건 아닐 거라고, 웃음과 노래와 우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걷다보면 행렬의 앞에 서기도 하고 꽁무니에서 따라가기도 하고 누군가와 나란히 걷기도 한다. 오르막길, 흙길, 바닷가 옆 자갈길을 걷고 숲 속에서 한참동안 헤매기도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 나절까지 내내 걸었다. 어제보다 두배는 넘는 거리를 걸은 듯 하다. 어제의 피로가 남아있는 다리에 새로운 피로가 누적된다. 목적지인 남열해돋이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저녁 7시쯤이었다. 몸이 허약한 편인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해가 지자 날이 금새 캄캄해졌다. 해수욕장 근처의 마을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이곳은 어제 묵었던 마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몇 집을 수소문한 끝에 이장님을 만났지만 마을회관에서 묵는 걸 허락해주시지 않았다. 음식을 나누어주는 집도 없었다. 우리는 이곳이 관광지라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했다. 식사와 숙박을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게 당연한 곳에서 그것을 거저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본값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특별하고 고마운 것이다.
밤은 깊어가는데 묵을 곳도 없이 마을 한켠에서 서성거리고 있자니 참 막막했다. 일과가 정해져 있는 일상과는 달리 이 여행에서는 당장 다음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지, 오늘 밤에 실내에서 묶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당장의 일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묘한 흥분을 줄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리는 나로서는 이점이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여행을 오래 이어온 사람들은 나와 좀 다른 듯 했다. 그들은 낯선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별 어려움없이 받아들였다. 불평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단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대안을 모색했다. 우리는 결국 마을 한구석의 허름한 폐교에 몰래 묶기로 했다.
목포에 사는 세영과 꿀벌이 응원차 길멍친구들을 찾아왔다. 우리는 밤시간을 보내려 바닷가로 갔다. 모래사장 주변으로 뿌옇게 안개가 끼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안개의 습도가 워낙 높아서 옷가지와 머리칼이 금새 눅눅해졌다. 불을 피우려 했지만 나뭇가지와 폐목재가 습기를 가득 머금어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영원이 트럭짐칸에서 등유를 가져와 붓고 땔감 옆으로 모래를 파서 숨구멍을 내자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울님이 점심때 얻은 묵은김치와 런천미트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솥단지에 쌀밥을 앉혀 우리들을 먹여살렸다.
야식을 먹고 꿀벌과 세영이 5리듬 댄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변화하는 리듬에 따라 마음가는대로 춤을 추면 된다고 했다. 춤 추기 전에 각자의 간격을 쟀다. 한 사람이 중간에 서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한명을 감싸는 원을 만든다. 사람들이 중간으로 다가가며 원을 점점 좁혀가고 가운데 사람은 거리가 부담된다고 느낄 때 ‘그만!’을 외치면 된다. 그 거리만큼이 그 사람의 영역이 되고 춤을 출때는 각자의 영역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가까이 가도 편안해해서 사람들이 그를 와락 안아버린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사람들이 별로 가까이 오지도 않았는데 다급히 ‘그만! 그만!’을 외쳤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졌다. 해변 한켠에는 빈약한 땔감 위에서 모닥불이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행자가 가져온 스피커를 휴대폰과 연결하자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춤을 춘다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나는 평소에 춤을 추지 않고, 춤을 배운 적도 없다. 춤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가수나 댄서들이 보여주는 화려하고 절도있는 안무동작이 떠올랐다. 춤은 그것을 업이나 취미로 삼는 사람들의 영역이며 내가 춤 출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엉성하게 춤춰서 비웃음을 살 바에야 체면이나 차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느린 박자로 시작됐던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빨라진다. 나는 점차 부끄러운 마음을 잊고,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고, 움직이고 싶은데로 몸을 움직인다. 몸을 흐느적거리고, 팔을 머리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기도 한다. 음악을 따라가며 몸을 움직이는 감각이 낯설면서도 웃음이 난다. 잘 추려고 하지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체면도 열등감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가슴을 둥둥 울리는 리듬에 맞춰서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몸으로 표현하려 할 뿐이다. 숨이 폐속 깊숙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나는 그저 몸이 움직이는대로 따라갈 뿐이다. 춤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인가? 내 안에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싶어했던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리라. 안개가 잔뜩 끼어서 30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바닷가에서 열 명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움직이고 싶은대로 몸을 움직인다. 마음속의 감정과 생각이 저마다의 몸동작으로 표현된다. 똑같은 춤을 추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저마다가 다른 사람인 것 만큼이나 그들의 춤도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모래 사장을 앞구르기로 구르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몸을 흔든다. 누군가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환호성을 지른다. 억눌린 것과 아쉬움과 답답함과 광기와 즐거움과 회한과 절망과 기대를 저마다의 춤으로 발산한다. 왠지 함께 굿판을 벌이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어느 문화권에나 불을 피워놓고 함께 춤을 추는 문화가 있었다. 불을 크게 피우고 제멋대로 몸을 움직이고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를 때 기뻐하는 누군가가 내 안에도 있다. 절정에 가까워가는 영화처럼 점점 고조되던 음악은 막판에 이르러 느리고 완만해진다. 사람들은 움직이던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르며 분출했던 것들을 차분하게 갈무리한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세영과 꿀벌은 희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길멍친구들이 떠나가는 그들을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힘껏 안아준다.
잘 곳을 구하지 못해 오늘밤은 먼지가 풀썩이는 폐교의 교실에서 자나 했는데 지산이 더 나은 곳을 찾아냈다. 해변가 근처에 팔각정 형태로 지어진 노인정이 있었는데 지산이 동전과 돌을 이용해 안쪽에서 잠겨진 창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신발을 벗어두고 창문으로 넘어들어갔다. 전등을 켜지 않았다. 몰래 들어온 것이라 마을사람들에게 들키면 안되기 때문이다.
날이 습한데다 샷시마저 신통치 않아서인지 실내가 눅눅하다. 장판바닥이 미끌거릴 정도로 물기가 맺혀 있어서 걸래를 가져다 장판을 대충 훔쳐냈다. 이불이 없어서 어제 비를 맞아 퀘퀘한 냄새가 나는 나일론 잠바를 입는다. 살이 끈적해서 팔이 잠바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땀이 흘러 꿉꿉해진 몸을 바닥에 누인다. 등과 엉덩이로 느껴지는 바닥이 딱딱하고 차다. 다들 그렇게 잔다. 지붕과 벽이 있는 실내에서 잘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나도 눈을 감았다. 불편한 잠자리와 실내의 어둠으로 스며드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과 주변 사람들이 쌕쌕대는 숨소리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