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멍’때리는 여행 3일차

by 쓰는 사람


우리는 새벽 5시쯤 일어나 노인정 실내를 정리하고 다시 창문을 넘어 나왔다. 혹시라도 몰래 노인정에서 잔 걸 마을분들에게 들켜선 안됐기 때문이다. 네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고 그나마도 잠자리가 불편해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등허리가 쑤시고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는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주변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우리는 다시 남열해수욕장으로 갔다. 애초에 남열해수욕장으로 온 데에는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평소 파도타기를 즐기던 돌배가 서핑을 가르쳐 주겠다며 트럭에 서핑보드를 싣고 왔었기 때문이다. 막상 파도타기를 하려니 또다시 망설여진다. 바다에 들어가면 나중에 씻을 장소도 마땅찮고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그냥 구경만 할까? 아니다. 내 인생에 해변에서 파도를 타 볼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까? 이 새벽에, 남열해수욕장에서, 이 사람들이랑 파도를 타는 건 내 평생 오늘이 마지막일거야.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모래사장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남정내 열 명 정도가 윗도리를 벗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나도 웃통을 벗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몸을 풀었다. 팔목과 발목을 돌리고 엎드려 팔굽혀펴기도 해본다. 사람들앞에 내 얇따란 몸통과 팔다리를 드러내는 게 부끄럽다. 초이가 윗도리를 벗자 티셔츠에 가려 있던 맨 피부가 드러났다. 뽀얀 몸통과 새카만 얼굴과 팔다리가 극명히 대조된다. ‘어? 초이 피부 하얗네? 난 하도 까매서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하자 초이가 멋쩍은 듯 씨익 웃는다.

돌배의 지도에 따라 우리는 모래사장에 엎드려 보드에서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순서대로 파도타기를 하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물에 띄운 서핑보드를 붙들고 바닷물로 걸어들어간다. 해가 안떠서 그런지 바닷물에 몸통을 담그니 춥다. 바닷물이 가슴까지 차오를 때까지 걸어들어간다음 보드에 배를 대고 올라탄다. 엎드린채 팔로 노를 저어 파도방향과 수직으로 나아가며 적당한 파도가 밀려오길 기다린다. 이 정면 됐다 싶은 파도가 왔을 때 양팔로 상체를 일으키며 왼발을 지지대삼아 일어선다. 잠깐 파도위에 서는가 싶었는데 이내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고꾸라지고 만다. 해변가에 선 사람들이 박수치고 격려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푸어푸하며 보드를 튜브처럼 붙잡는데 입안에서 바닷물의 짭짤한 맛이 느껴진다. 다들 한번 정도 보드를 탔을 때쯤 빨간티셔츠를 입은 안전요원이 다가와 안개가 심해서 해변가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아쉬움을 남긴 채 파도타기가 끝나버렸다.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파제 근처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영원은 1.5톤 트럭 짐칸에 간단한 취사도구를 실어두었는데 여행할 때 근처에 세워두었다가 요긴하게 쓰곤 했다. 마침 어제 얻은 김치가 남아있어서 김치전을 부쳐먹기로 했다. 석수가 김치를 썰어 부침가루와 섞어 반죽을 만들고, 영원은 어딘가에서 주워둔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전을 부쳤다. 야외에서 변변찮은 도구로 요리하는 사람들이 자기집 주방에서 요리하는듯 자연스럽다.

여울과 상뽕, 돌배와 행자, 나는 오늘이 길멍 여행 마지막 날이다. 길멍여행에서는 돈을 쓰지 않는 게 암묵적으로 권장되지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상뽕스와 돌배가 근처 낚시집에서 캔맥주를 사왔다. 나는 고생하며 여행하는 친구들에게 왠지 맛난 걸 먹이고 싶기도 하고, 마지막 날이니 괜찮겠지 싶어 새우탕면 네 개를 사서 뜨거운 물을 부어왔다.

김치전을 부쳐먹으며 철학자 니체부터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다. 행자는 전라도 남원에서 ‘놀룩NoLook('내 눈치 보지말고 놀자'라는 뜻)’이란 팀을 만들어 음악, 춤, 직조 등 예술활동을 하고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도 한다. 요즘에도 부모에게 방치된 채로 애정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체육활동을 할 때 본인에게 유난히 몸싸움을 걸면서 달라붙는 애가 있는데, 워낙 애정이 결핍된 환경에 있다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타인과 육체적 접촉을 하려는 거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 거리공연도 한다. 마이크가 연결된 커다란 스피커를 등에 매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랩으로 표현하며 남원 시내를 걸어간다. 인구 8만의 지방 소도시에 거리공연 문화는 생소한 것이다. 박수치며 호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심한 사람, 시끄럽다며 욕하는 사람도 있다. 비아냥을 듣고 화가 날 때 그 감정을 바로 뱉어내면 엉성하고 날 선 랩이 나온다. 압력솥이 증기를 조금씩 내보내며 칙칙칙칙 밥을 뜸들이듯이 감정을 가다듬어 조금씩 발산하면 비난하는 상대마저 납득시킬만한 썩 만족스런 랩이 나온다.

음악하고 춤추는 이들은 내부에 있는 것을 거침없이 발산하는데만 관심이 있을거란 얄팍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렇게 깊게 고민하고 성찰하며 음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행자와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면서 그가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이자, 근래에 보기드문 훌륭한 청년이라며 지역 유지들이나 할법한 칭찬을 했다.

고흥전망대까지는 공연을 하며 걸어가기로 했다. 행자가 등에 둘러맨 10킬로짜리 스피커에서 쿵쿵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가 다르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아픔을 랩으로 들려준다. 그가 선창하면 우리들은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호응했다.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할 수 있다. 상뽕스와 석수도 마이크를 잡고 속에 있던 얘기를 자유롭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노래하고 소리치며 고흥의 한적한 언덕길을 올랐다. 뒤에서는 원영과 돌배가 운전하는 1.5톤 트럭 두 대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천천히 따라온다.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그들 뒤를 따라걸으며 환호하고 박수치자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관객도 가수도 우리가 전부인 공연이지만, 서울도, 수도권도, 광역시도 아닌 지방 소도시의 어느 외곽도로에서 펼쳐지는 공연이지만 내가 정말로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는 것만 같다. 랩을 하며 언덕길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왠지 모르게 나도 저들처럼 멋진,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고흥전망대에서는 고흥의 섬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정말 멋지고, 흥겨운 공연이었다는 친구들의 찬사를 듣던 행자가 문득 울먹거리며 왼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의 눈물을 보며 그의 음악하는 삶이 때때로 고독했으리라고, 그런만큼 친구들의 격려가 눈물겹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자가 걸어가는 길을 응원해줄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그는 오래도록 노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이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이다. 사람들과 작별의 포옹을 하려니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친다. 갑자기 눈물이 주륵 흘러 스스로도 당황스럽다. 내가 왜 이러지? 그렇게 친한 사람들도 아니잖아? 나는 내향적이라 사람들과 쉽사리 가까워지지 못하는 편이다. 엠비티아이 검사를 하면 내향성 14에 외향성 1이 나온다. 이번 여행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리 깊게 녹아들지 못했다. 그러기에 2박 3일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여행하는 동안 딱히 어떤 역할을 한 것도 아니다. 탁발도, 숙박도 다른사람들이 마련해온 것을 함께 누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 한명한명을 안는데 아이처럼 자꾸 눈물이 난다. 그들이 내 어깨를 꽉 안아준다. 나도 코를 훌쩍이며 땀에 젖어 축축한 그들의 등을 토닥인다. 이들과 처음 만나 포옹했을때와는 감정의 밀도가 전혀 다르다.

눈물이 났던 건 이 여행이 고생을 전제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과 함께했던 공간이 비와 먼지와 햇빛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한여름의 국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과 함께했던 2박 3일동안 처음 접해보는 체험과 감각들이 장대비처럼 퍼부어졌고, 나는 이들과 그 시간을 통째로 공유했다. 아픔과 기쁨을 함께 겪은 이들에게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연대의식과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밤의 막막함과 도보여행의 피로와 어색한 대화와 도둑같은 숙박과 노래와 탈발해온 찬밥과 썰렁한 농담과 남도의 풍경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이라서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이 그토록 서글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고 불을 켰다. 비에 젖은 운동화을 깜빡하고 트럭에 두고 왔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잠깐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다. 그토록 익숙했던 벽과 천장의 벽지, 싱크대와 냉장고 같은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보일러를 틀고 샤워를 한다. 길멍친구들은 모기물린 다리를 벅벅 긁으며 여전히 길위를 걷고 있다. 따뜻한 물, 샴푸와 비누, 마른 수건 같은 것들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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