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말랑하고 따끈한 절편

by 쓰는 사람

지난 달부터 모모정원 식구들과 한 달에 한번씩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지난달은 S샘 집에 모여 먹었고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먹을 차례였다. 나는 집안일에 게으른 사람이다. 월요일 설거지가 목요일까지 남아있을 때도 있다. 청소할 때가 한참 지나서 변기가 누렇게 변하고 바닥에 먼지가 쌓여갔지만 사람들이 집에 오기 직전에 치우려고 자꾸 미뤘다.


사람들이 방문하기 세시간 전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재활용품을 버리고, 지저분한 물건을 숨겼다. 거울에 물을 뿌린 뒤 신문지로 문질렀다. 세면대와 변기를 락스물로 닦았다. 현대사회에서 마음에 드는 몇가지 중 하나는 깨끗하게 닦여진 좌변기다. 새하얗게 빛나는 변기를 보면 왠지 내 마음도 하얗게 밝아지는 것 같다. 너저분하게 어질러놓고 살다가 사람들 올때만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내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내겐 사람들에게 실제보다 깔끔하게 보이고픈 마음이 있다. 한편으론 어떻게 매일 청결하게 해놓고 사냐는 생각도 든다. 청소가 사람을 위해 있는거지, 사람이 청소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집안일을 한번에 하려다 보니 시간이 자꾸 뒤로 밀렸다. 청소후 샤워를 하고나니 한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초보 자취인인 나는 할 수 있는 요리가 몇 가지 없다. 야채를 썰어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카레가 만만해보였다. 원래 내겐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매콤한 카레에 어울리는 달콤한 사과-마카로니 사라다를 준비하고 당일날 떡집에서 주문한 하얀 절편을 함께 차려낼 생각이었다. 절편에 찍힌 복(福)자와 연꽃무늬를 보면 기분이 좋다. 하얗고 말랑하고 따끈한 절편은 누구라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9인분 요리를 준비하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큼직한 감자 여섯 개, 양파 다섯 개, 당근 한 개의 껍질을 벗기는 데만 20분이 걸렸고 야채를 알맞은 크기로 썰고 나니 저녁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방문시간에 맞춰 예약해놓은 전기밥솥이 쏴~하고 김을 토해냈다. 중형 냄비에 가득 찬 카레가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 사람들이 한명씩 벨을 눌렀다.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차리자니 정신이 없다. 사과 사라다는 커녕 카레냄비 휘젓기도 벅차다. 나는 격언과 생활수칙을 포스트잇으로 여기저기 붙여두는 습관이 있다. 그릇에 밥을 퍼담고 있을 때 O씨가 냉장고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라디오 시대극 연사처럼 감정을 넣어 읽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주걱을 쥔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하지마... 제발 그만해’ 애원해도 O씨는 끈질긴 집념으로 대사를 이어갔다. 만약 몰래 감춰둔 노트에 쓰인 글을 소리내 읽었다면 나는 쪽팔려서 집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다시 부산으로 이사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 세간살이와 포스트잇을 보는 게 쑥스럽다.


몇시간동안 바쁘게 청소하고 요리하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옆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동희와 담희가 아끼는 그림책의 양 귀퉁이를 잡고 잡아당길때는 찢어질까 불안했지만 관대한 삼촌인 양 허허 웃어보였다. 방 중앙의 길다란 탁자 중앙에 카레냄비를 놓았다. 일전에 누군가 깨끗한 탁자를 재활용품장에 놔뒀길래 주워온 것이다.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카레를 먹는다. 나는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카레밥 위에 턱턱 얹어주었다. 약간 싱거웠는데 사람들은 별다른 불평없이 맛나게 먹는다. 냄비 가득했던 요리가 빠르게 비워진다. 사람들이 카레밥을 후후 불어가며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 온기가 돈다. 이래서 엄마들이 자식에게 만난 걸 먹이려는 걸까? 두 살난 유겸이가 소보로빵가루를 온 방바닥에 흩뿌리고 다녀도 마음은 푸근하기만 하다.

일 년 전만 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자꾸 마주치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내 마음에서 조금씩 커져간다. 이 사람들이 슬퍼하면 내 마음도 아플 것 같다. 사람들과 떠들다보니 갖가지 야채가 들어간 카레처럼 여러 감정이 마음에 섞여 떠돈다. 바쁘면서 우습고, 부산하면서 아늑하고, 들뜨면서 조금은 서글프다. 이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 살면서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밝은 순간이다. 친근한 사람들과 어울릴때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서점 베스트셀러의 절반은 주식과 부동산 서적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옆테이블에서 부동산 투자 이야기가 들려온다. 포털 사이트도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돈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 한국사회는 항상 돈을 좇아왔지만 최근에는 그 풍토가 계층과 연령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당연해졌다. 초등학생에게 주식을 가르치려는 아버지를 본 적도 있다. 배금주의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흉악범처럼 당당하게 사회를 떠돈다. 돈만을 부르짗는 사회에 대해, 모여서 돈얘기만 나누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더 이상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돈 말고 다른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망상가이자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집값이 올라 앉은 자리에서 수억을 벌었다는 누구누구의 소문을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정체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식과 부동산과 명품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믿을 때, 그들을 보며 내 삶이 틀린 건 아닐지 불안해질때, 자신에 물어본다. 살아오면서 진정으로 기쁘다고 느꼈던 때는 언제지? 그럴때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한없이 편안하고 충만한 시간들. 그런 시간들은 돈과 별 연관이 없다. 역세권 아파트나 아우디 승용차와도 관계가 없다.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잊어선 안된다. 그 따뜻한 그림이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높게솟은 화려한 백화점 앞을 지날때면 중2병 소년처럼 치기를 부린다. 명품매장 대형 쇼윈도의 노란머리 서양모델사진에 말을 건낸다. 거짓말 하지 마, 속지 않아. 너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팔 뿐이야. 너희는 행복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될 뿐이야...

수연씨와 서영씨는 밥만 먹고 그냥 가는 게 미안했는지 아무리 만류해도 싱크대 앞에서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나는 그들 뒤에서 사장님처럼 뒷짐을 지고 서서 ‘어허허, 괜찮대도 그러네’를 연발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을 배웅한 뒤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위층에서 가로등 켜진 주차장을 내려다봤다. 사람들이 얘기나누고 손흔들고 깔깔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니 떠들썩했던 집이 불현듯 조용하다. 까르르 즐거웠던 시간의 여운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기운도 분명히 남아 있다. 물티슈로 바닥을 닦으니 평소 청소할 때 볼 수 없었던 잡티들이 보인다. 도깨비풀, 길이가 제각각인 머리카락, 귀리... 내게서는 나오지 않는 먼지들이다. 사람들은 남기는 흔적마저 저마다 다르구나...


아참, 사람들에게 절편 나눠주는 거 깜빡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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