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불꼬불 골목길을 걸어 도착한 재은선생님 집은 마당에 보리수나무가 있는 2층 양옥이었다. 넓은 마당에는 야외에서 놀 수 있는 원두막이 설치돼 있었다. 1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온 친구들이 털복숭이 갈색 개 탱지, 새롬이랑 놀고 있었다. 개들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배를 드러내고 눕는 재롱을 부리거나 내 양반다리를 방석삼아 앉을 정도로 붙임성이 좋았다.
문을 열자마자 보였던 건 백개는 족히 넘는 유리병이었다. 바싹 말려 차로 만든 색색깔의 꽃과 산야초가 병에 담겨 진열장에 정돈돼 있었다. 책장에는 주로 사찰음식, 자연식, 베이킹, 의복제작에 관한 책이 꽂혀 있었고 비법과 정보가 가득적혀 있을듯한 낡은 기자수첩도 열권 남짓 꽂혀 있었다. 갖가지 식재료들이 진열장과 대형 냉장고마다 꽉꽉 채워져 있어서 전쟁이 터져도 1년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았다. 넓은 식탁과 조리대, 음식세팅 테이블과 재봉틀이 있는 1층 공간에는 재은샘의 수십년간 가꿔온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
재은샘은 우리를 먹이려고 준비한 요리를 소개해보겠다. (황교익씨가 도와준다면 좋으련만...) 토마토와 가지로 만든 라따뚜이, 나쵸칩과 그 위에 얹어먹는 새콤한 야채 소스, 시중에서 파는 유부에 재차 양념을 해서 만든 유부초밥, 찹쌀을 연잎으로 감싸 쪄낸 연잎밥, 안주용으로 썰어낸 오이, 당근과 브로컬리, 샛노란 병아리콩 소스, 상추전, 토마토와 양상추 토핑에 소스를 끼얹은 바게트빵, 얼음 띄운 연보라색 복분자 막걸리, 생강 향이 고급진 진저 에일, 멸치를 닮은 청어새끼 솔치 등이 뷔페식 탁자에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 외부 식당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요리는 간이 적당하면서도 신선했고 기름지지 않아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었다. 우리는 음식의 풍미에 감탄하며 금식기도원에서 금방 탈출한 신자들처럼 몇 접시씩 음식을 덜어다 먹었다.
S샘,J샘 내외와의 인연으로 재작년부터 한명한명 마을로 온 청년들이 이제는 일곱명이 되었다. 우리들은 함께 책을 읽고, 모내기를 하고 이따금씩 모여서 밥을 먹기도 한다. 정성껏 음식을 차리고, 누군가를 먹이는 게 기쁨인 재은샘에게 요리는 삶의 방편이며 소통의 수단인 것 같다. 재은샘은 마을에 들어와 어울려 살아가려는 청년들이 이뻐보였는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이따금씩 모일 때면 우리는 한명 한명 돌아가며 근황을 이야기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고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떻고, 인상적이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S샘은 행사 사회자처럼 진행을 할때가 많은데 그럴때면 O는 진행이 참 작위적이어서 좋다면서 놀린다. (한번은 S샘 없이 모인 적이 있었는데 유재석이 빠진 무한도전처럼 진행이 잘 안됐다.) 누군가 말하면 다들 열심히 듣는다. 음식을 더 가지러 가거나 두살배기 유겸이를 업고 얼를 때도 귀는 쫑긋 이야기를 좇아간다. 마을에 모여 살아도 평소때는 각자의 생활에 바쁘니까 이럴 때 한번씩 서로 얼굴을 보게 된다.
B가 이야기할 차례가 됐다. 마을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야기를 하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마을에 들어오기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혼자 있을때 자신을 잃고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아픈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꺼내놓았다. 말을 하던 B의 눈이 점점 빨개지더니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숨죽이며 B의 말을 들었고, 시선을 돌리지 않고 울고 있는 B의 눈을 마주보았다.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본인처럼 느낄 순 없었지만 그가 아파한다는 사실을 저마다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그 순간 그 공간의 감각이 평소와 달랐던 것 같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렀던 것 같기도 하고 공기의 밀도가 다소 높아진 것 같기도 했다. B가 꺼낸 이야기는 남들 앞에 꺼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용기있게 아픔을 드러내준 B가 고맙게 느껴졌다.
어른이 누군가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B는 우리들이 있는 이 공간을 안전하다고 느낀 것 같다. 마을에 살게된 후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 우는 사람을 종종 보았는데 그들 또한 그 공간에서 울어도 괜찮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해온 세상에서 눈물은 참거나 숨기거나 혼자 감당해야 할 자신만의 숙제같은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다른사람에게 보일 수 있다. 밝고 화려한것 뿐만 아니라 낡고 추레한 것들도 꺼내어 놓을 수 있다.
사실 B가 말할때 '나도 그래요, 사실 나도 그래요.' 라고 맞장구치고 싶었다. 나또한 마을에 들어오기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고, 마을에 들어온 후 사람들 앞에서 나다워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마을에 오지 않았다면 도시 외각의 어느 원룸에서 혼자 생활했을 거다. 직장을 다니고 이따금씩 친구들을 만나고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는 갔을 거다. 다만 지금보다 외롭고, 감정적으로 더 빈곤했을 것이다. 고립된 사람일수록 의외로 타인의 시선에 더 연연하게 된다. 내가 사회의 계급체계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는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패션이 촌스럽지 않은지에 연연한다. 스스로를 반영해줄 인간관계가 부족하기에 닳고 닳은 사회의 잣대로 스스로를 재단할수밖에 없다. 나도 마을에 오지 않았다면 연봉과 부동산으로 내 가치를 책정하지 않았을까. 열등감과 조급함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경쟁의 대열로 내몰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나날이 쌓여가면서 삶을 지켜주는 건 '철밥통' 이나 '변액연금보험'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선량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된다. 친근한 사람들과 나누는 속깊은 대화와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이 알게 모르게 삶의 동력으로 축적되고, 관계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게해준다.
오후 내내 가랑비가 내리고 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S샘은 내게 9살난 동희를 부탁하고 일을 보러 나갔다. 담장 아래 가축우리에서 산양 젖을 짜고 있을 때 하늘에서 번쩍 빛이 나더니 꽈광-하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새끼 산양들이 놀랐는지 이리 저리 뛰었다. 천둥 소리가 몇차례 반복되자 위쪽 집에서 동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삼촌~~ 번개치니까 무서워요. 올라와주세요.
삼촌~~ 무서워요, 올라와주세요, 귀신 나올 같아요.
나는 담 아래 우리에서 크게 외쳤다.
동희야~~ 괜찮아, 삼촌 여기 있어.
삼촌 여기 아래에 있으니까, 안무서워해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 동희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나서 왠지 울컥했던 건 사실 나도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따금 살아가는 게 막막하고, 혼자인 게 무서웠다. 삶이 지나치게 버겁다고 느낄 때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속내를 털어놓았다. 누군가가 나의 아픔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쓸쓸하지만 위로가 됐다. 어쩌면 그건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되돌아오는 목소리를 통해 나를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존재여서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