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란 무엇인가

by 쓰는 사람


발단은 마을밥상에서 밥먹다가 나온 말 한마디였다. 마을 절기행사인 '하지제'때 마을의 소모임인 두레별로 역할을 하나씩 맡기로 돼 있었다. 내가 속한 언니두레는 마을행사때마다 노래를 불러왔기에 나는 이번에도 으레 노래를 하려니 했다. 어떤 노래를 부를지 얘기를 나누다 잠깐 흥부전 얘기가 나왔는데 하지제 기획팀의 누군가가 그 얘기를 들었나보다. 며칠 뒤 언니두레로 하지제때 마당극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마을에는 두레모임이 몇 개 있고 한 주에 한 번씩 만나 어떻게 살았는지 삶 나눔을 한다. 내가 속한 언니두레에는 30대에서 50대까지의 마을 남성 9명이 있다.)




나는 마당극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퇴근후에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어 바빴다. 공연준비에 시간을 쓰는 만큼 기존에 해오던 일에 소홀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수십 명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게 부담이 됐다. 그렇지만 마음을 내서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하지 말자곤 할 순 없어서, '무리야, 안 되겠어'란 말이 나오길 바라며 말없이 방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M삼촌이 "이번 하지제의 핵심주제가 '순종'이라고 하니 기획팀의 의도대로 따라가보면 어떨까요?" 하니, 다른 두레원들이 덩달아 그러자는 것이다. 심지어 O동생은 본인이 마당극 대본까지 써보겠다고 나섰다. 나는 못하겠다는 말은 꺼낼 엄두도 못낸 채 흥부전 마당극에 휩쓸려 들어가게 됐다.




사흘후 두레원 단톡방에 O동생이 <흥부자 흥부가 마을에서 살게 된 까닭은>이란 제목의 마당극 대본을 올렸다. 읽다보니 점점 빠져들어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흥부전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우리 마을 사람들 모습, 같이 밥먹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향이 자연스레 반영돼 있었다. 애초에 배역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 정해두고 대사를 써서 인물과 대사도 잘 어울렸다. 대사 옆에 동작설명까지 돼 있어 대본대로만 해도 꽤 괜찮은 공연이 될 것 같았다.




어떻게 전문 극작가도 아닌 사람이 단 삼일만에 이 정도 수준의 대본을 뚝딱 완성할 수 있는 거지? 더구나 O동생은 아이들 가르치고 여섯살 난 유겸이를 돌본다고 시간도 별로 없을텐데? 이런 사람을 천재라고 하는 건가? 글쓰기가 직업으로 삼고있는 스스로가 초라하구나! 모짜르트를 지켜보는 살리에르는 이런 심정이었을까? O동생은 십대때부터 삼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동서양의 철학, 역사책을 꾸준히 읽고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수십 년째 꾸준히 쌓아온 내공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건가?




우리는 틈틈이 만나서 공연연습을 했다. 교실 중앙에 어정쩡하게 서서 대본을 소리내 읽어본다. 생전 연기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보니 어색해서 헛웃음이 난다. 다른 사람이 연기를 보니 왠지 그럴듯해 감탄하기도 한다. 실제 연습을 해보니 각자의 연기뿐 아니라 전체공연의 진행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대사는 무대의 어느 위치에서 하고, 배경음악은 어느 시점에 틀고, 퇴장은 언제 하고 , 소품은 어느 시점에 누가 가져올지 등을 꼼꼼하게 계획해두지 않으면 실제 공연할 때 실수가 나올 것 같았다.




두레원들은 대사를 그대로 말하는 대신 나름의 생각을 덧붙여 배역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갔다. 여성 배역을 맡은 분들은 분장에 공을 들였다. 마을에서 책방을 하는 L님은 흥부 아내 역을 맡았는데 아주머니들이 텃밭농사할 때 쓰는 청록색 차양모자와 몸빼바지를 챙겨왔다. 원래는 치마까지 입으려했는데 부인께서 만류했다고 했다. 놀부아내역을 맡은 M님은 어떤 가발을 쓸지를 두고 고심했다. 처음에 긴머리 부분가발을 들고왔다가 만족이 안됐던지, 다음 연습때는 뽀글파마 가발을 들고 왔다.




M님은 출연분량은 얼마 안 됐지만 티 안나고 수고로운 일을 묵묵히 했다. 장면장면의 동선을 점검하며 극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도왔고 연습때마다 일찍 와서 극에 필요한 소품들을 준비해두었다. 본인의 배역을 수행하는 것 만큼이나 전체 공연이 제대로 진행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놀부역을 맡은 C님은 무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곤약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반에반 박자 늦는 그의 몸동작을 보며 우리는 연습때부터 많이 웃었다. C님의 놀부연기는 하면 할수록 능청스러워졌다. 행사와 공연진행 경험이 많은 그는 대사나 몸동작, 배우의 감정상태가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를 감각적으로 알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사람의 연기를 지도해주기도 했다.




한번은 H님이 흥부역에 몰입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간 일이 있었는데, C님이 '거기서 본인이 흥분하면 안된다,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부분에서도 본인은 침착해야한다‘고 조언했다.(우리 마당극의 연기수준은 이정도였다!) 흥부역은 대사가 많고, 독창 부분도 있어서 대사와 노래를 외우는 것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후에 H님의 10살 아들 동휘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집에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로 노래연습을 했다고 한다.




두레원들은 다들 바쁜 사람들인데도 마당극 연습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분명 나의 미적지근한 태도와는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마을 일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는걸까? 나는 뭐든 열심히는 하지만 왜 열심히 하는지에 대한 나만의 이유는 뚜렷치 않다. 나는 주어진 현실에 몰입해서 살아가는 게 잘 안된다. 언제나 내 삶과 몇 발자국 떨어져 구경하는듯한, 주인공이 아닌 관객의 태도로 살아간다. 마치 내 삶이 여기아닌 다른 곳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왜 마당극 연습에 시간을 쓰는 게 마음이 불편했을까? 나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글도 쓴다. 월급이 적은 시민단체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 안정되려면 어떻게든 글쓰기로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회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분야가 글쓰기라고 못박으면 글쓰기가 가장 중요하게 되고 다른 일(직장생활, 마을살이)은 덜 중요하게 돼 버린다. 나는 되도록이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만 시간을 쓰려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이 과연 내게 이로울까?




나는 글쓰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론 노동상담소에서 일하고, 마을에서 살기도 한다. 글쓰기 이외의 것들도 분명히 나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내 생활을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눠 차등을 둬버리면 나는 중요한 것 이외의 영역에 있을 때 충실하게 생활하기가 어려워진다. 대충 살게될 가능성도 크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을 담아서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글쓰기를 할때 '무엇을 쓸 것인가'의 문제로 드러난다. 글쓰기는 삶과 이어져 있고 삶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삶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써야한다. 나는 내 삶에서 '글쓰기'만이 유일하게 집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믿지만 내가 쓰게 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닌 '삶'이다.




하지만 나는 '삶'을 '글쓰기'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왔다. 나는 결국 글쓰기로 진짜 중요한 삶이 아닌 '글쓰기보다 덜 중요한 삶'을 써야하는 문제에 맞딱드린다. 나는 덜 중요한 것을 쓰려고 작가가 되었나? 덜 중요한 것을 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을 독자가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나는 그 글을 쓰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시간이 내게 충만함과 기쁨을 줄까? 결국 나는 글을 쓰겠다면서도 정작 글의 원천인 삶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온 게 아닌가?




글과 삶의 관계는 오묘하다. 좋은 글을 쓰려면 분명 책상앞에 몇 시간씩 앉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삶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 진실한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무작정 열심히 산다고 좋은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동안 몇 번 넘어지며 배운 교훈은 좋은 글의 소재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화려하고 붐비는 곳이 아니라 매일같이 이어지는 평범한 내 삶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대하고 있는지, 만들어가고픈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나와 맞닿아 있는 일상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꾸만 물어야 한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생활을 내 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지 않고 삶으로 풍덩 뛰어들 때, 나는 살아서 펄떡이는, 생생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왕 하는 거 마음을 더 내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빠질 수 없어서' 참여하는 건 내게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마당극을 하는 나만의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일반인이 무대에 설 '기회'를 가지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내가 마당극의 특정한 역할을 맡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과연?)일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경험을 할 계기이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부끄러움이 많지만 한편으론 관심받기를 즐기는 '관심종자'이기도 하다.




내가 맡은 놀부 마당쇠 역할에 나란 사람의 성향과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마당쇠가 원래 섬세하고 여린 성격이라는 설정을 부여했다. 또한 내가 직장인 노동상담소에서 자주 목격해온 비정규직,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머슴살이에 투영했다. 기본 대본을 밑바탕으로 대사를 추가하고 입말로 읽어보며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는 범죄조직에 위장잠입한 경찰의 이야기가 나온다. 닳고 닳은 악당들에게 자신이 범죄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이 경찰은 예전에 마리화나를 밀매하다 발각될 뻔 했던 이야기(물론 거짓말이다)를 들려주기로 마음먹는다. 중요한 건 자연스럽게 보이는 일이다. 그는 이야기의 대본을 '지껄이고 또 지껄여서' 스스로조차 실제로 경험했던 일처럼 느낄 정도에 이른다. 그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상황을 할 수 있는 한 구체적으로(배경장소인 화장실에서 세면대의 비누가 고체비누인지, 액체비누인지까지)설정해둔다. 경찰이 혼잡한 술집에서 악당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도중 영상은 마약범이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마약탐지견을 데리고 있는 경찰 네명과 맞딱드리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것은 그의 거짓말이 하도 생생해서 악당들이 거짓말을 완전한 현실로 받아들였단 것을 뜻한다. 연기의 세계는 이처럼 신비하고 깊다. 이것은 온전한 연기, 온전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단 걸 뜻한다.(경찰의 실감난 연기는 결국 엄청난 파국을 몰고오게 되고...)




사실 내 걱정은 '연기를 실감나게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무대위에서 대사를 까먹으면 어쩌나?' 하는 초심자의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놀부 밑에서 마음 부대끼며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비밀경찰처럼 틈 날 때마다 대사를 지껄여 보였다. 대사가 입에 붙을 때까지 반복해보는 게 중요하다. 발표든 공연이든 연습의 고됨보다 제대로 못했을 때의 자괴감이 훨씬 크다. 다른이유 때문이 아니라 연습이 부족해서 못하게 되면 두고두고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하지제 날에는 비가 내려서 마을배움터 앞마당에서 진행하려던 행사를 실내에서 하게 됐다. 아이, 청년, 어른 약 80여명이 모여앉으니 50평 남짓한 실내가 꽉 찼다. 마을책방지기인 L님과 G님이 행사 진행을 맡았다. 한데놀이,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준비한 풍물공연, 마을학교 학생들 공연, 각 두레들의 공연이 이어졌고 마당극을 할 차례가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는 공연 전에 중앙공간 왼편에 딸린 좁고 어두운 방에 미리 들어가 소품들 틈에 옹송그리고 있었다. 다들 긴장해서 별 말이 없었는데 M님이 잘 될 거라는 듯 지긋이 웃어보인다. 바깥에서 사회자가 마당극의 시작을 알렸다. 해설자인 동생 K가 부채를 들고 나가 흥부형제를 소개하고 뒤이어 놀부가 따라나갔다. 대학 때 응원동아리였던 K는 무대에 서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사람들을 보며 밝은 표정으로 외운 대사를 또박또박 말했다.




뒷짐지고 있던 놀부가 똥배로 사회자를 밀쳐내며 '똥 누는 놈 주저않히고', '변기에 다 튀어가며 오줌싸는' 자신의 취미를 소개할 때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특히 앞줄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우하하 웃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시작이 좋다. C님의 목소리와 몸동작에서 풍기는 독특한 웃음의 기운이 사람들에게 퍼져간다.




쫓겨난 흥부가 양식을 얻으러 놀부집을 다시 찾았을 때, 놀부가 똥물을 부어버리라며 마당쇠를 부른다. 드디어 내 차례다. 두근대는 가슴으로 '예이~'하며 무대로 나간다. 무대는 환하고 관객은 너무 많다. 침착하자. 평정심이 중요하다.




"휴... 괴롭네요. 저는 조용히 글 쓰면서 살고 싶은 사람인데, 어쩌다 이 집에 머슴살이를 하게 돼서 놀부 나쁜 짓 하는 거나 도와주고... 제가 마음이 좀 여리거든요. 누구 괴롭히고 이러면 밤에 잠을 잘 못자요. 이게 너무 괴롭고... 이 아픔을 글쓰기로 승화시켜야 겠어요."




나는 불현듯 이전에 출간했던<아플 때마다 글을 썼다> 을 꺼내들고 '글쓰기로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았다'며 홍보했다. 이곳저곳에서 푸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작가란 걸 아는 마을 사람들은 머슴 역할을 통해 책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게 우스웠던 모양이다. 마을 중학생 윤성이가 웃는 모습이 얼핏 보여 안심이 된다.




마을사람들은 엄숙한 평론가가 아닌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관객들이었다. 이후에는 긴장이 좀 풀어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말하는 속도를 조절하기도 했다. 뒤이어 사업주 놀부가 근로계약서를 안쓰고 4대보험도 안 들어줘서 괴롭다며 최근에 출간한 <일터의 얼굴들>을 홍보했고, 놀부에게 혼쭐이 난 뒤 퇴장했다. 대기실로 들어와 수그리고 앉았는데 가슴이 한참이나 콩닥콩닥 뛰었다. 내 부분이 끝나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밥주걱으로 뺨을 맞고 쫓겨난 흥부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개사한 노래를 부른다. 성량이 풍부하고 음색이 맑아서 모두 숨죽이고 노래를 들었다. 밥을 먹고 싶단 식으로 우습게 개사를 했는데도 노래를 워낙 잘 불러 묘하게 감동적이다. 뒤이어 검정색 정장차림의 흰 머리가 듬성듬성 난 제비가 박씨를 선물하고, 흥부 부부는 커다란 박 세 개(풍선 세 개를 소품으로 씀)를 선물로 받게 된다.




비실비실한 흥부가 박을 못 열고 쩔쩔매자 흥부 아내가 못마땅해하며 나선다. 이때 스피커에서 <황비홍>의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흥부 아내는 불현듯 주머니에서 흰 머리끈을 꺼내 이마에 동여매고 어잇!어잇! 구호를 외치며 박 하나하나를 차력으로 깨가기 시작한다. 흥부아내역의 L님이 이전부터 마을행사에서 차력을 선보여왔단 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첫째 박은 격파로! 둘째 박은 장풍으로! 셋째 박은 한참 고심하더니 무림의 비급인 공중부양으로 깨버린다. 풍선이 터질 때마다 마을밥상 초대권, 마을 옷 잔치 초대권, 아빠두부(H님이 마을에서 만드는 두부) 제조비법서가 나오고 흥부부부는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어졌다며 뛸 듯이 기뻐한다.




흥부와 놀부가 화해해 덕계마을에 살게 되고, 언니두레 모두가 나와 신명나게 꾕과리와 북, 장구를 치며 무대를 돈다. 관객 모두가 마당극이 이렇게 마무리되는구나 여길 때 갑자기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반주가 흘러나온다. 우리는 정색하듯 징과 장구를 내려놓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람의 노래'는 언니두레가 행사때마다 티백처럼 우려먹은 노래인데, 우리는 사물놀이를 하는 척 하다 또 이 노래를 불러버린 것이다.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어울려 지내다보면 당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의 농담들이 생긴다. 모인 마을사람들이 이 마당극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가깝게 지내고있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제의 마지막 순서때는 진의 기타반주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노래 몇 곡을 같이 불렀다. 솔가와 이란의 '같이 살자'라는 노래에서 '같이 살자, 같이 살자꾸나'라는 후렴 부분을 따라하는데 괜시리 눈이 시큰해지고 콧물도 났다. 준비된 공연이 모두 끝나고 준비팀이 미리 마련해 음식을 나눠먹었다. 매콤한 떡볶이와 포슬포슬한 하지감자가 잘 어울려 자꾸 먹게 된다. 함께 먹는 수박도 달고 시원하다. 다들 마당극이 재밌었다고 해주어 쑥스러우면서 뿌듯하다.




행사 뒷정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더니 밤 10시가 넘었다. 긴장이 풀려 졸음과 피로가 몰려오는 몸을 이끌고 온종일 미뤄둔 설거지를 한다. 몇 시간 전에 했던 공연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얼른 자야하는데 이부자리에서 앉은 채로 마당극 대본을 다시 읽어본다. 놀부의 연체동물 같은 몸짓, 내가 대사를 말할 때 파하하 웃던 사람들, 흥부 아내의 '아니~'하는 콧소리 섞인 타박도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마당극이었어. 나는 이날 밤 꿈에서 어느 극단의 배우가 되어 제목도, 내용도 모르는 작품의 이름모를 배역을 연기했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4화울어도 괜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