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먹듯 밥먹기

by 쓰는 사람

자취를 해서 혼자 밥을 차려 먹는다. 올해 들어 끼니를 대충, 맛없게 때울 때가 많았다.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재료를 사오고, 요리하고, 인터넷 쇼핑도 하고, 반찬가게도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직장일에 공부에 쫓기다보니 요리할 마음의 여유가 안 났다. 휴일에는 밀린 숙제하듯 빨래와 청소를 하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며 쥐죽은 듯 쉬려고만 했다.

맛없게 먹는다지만 끼니를 건너뛰진 않는다. 다만 똑같은 음식을 매일같이 먹을 때가 많다. 반찬가게에서 김치찌개나 된장국을 사와서 계란말이를 해서 먹는다. 나는 마른 체질이라 식사를 소홀히 하면 금새 체중이 빠져버려서 끼니때마다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먹으려 한다.

처음 계란말이를 해 먹었을 땐 맛있었다. 하지만 먹고, 또 먹고 일이주 지나면 물려버린다. 결국에는 하도 물려버려서 계란말이를 먹으려니 긴장이 되는 지경에 이른다. 계란말이 먹는 게 하기 싫은 숙제처럼 느껴진다. 입안이 까끌해서 도무지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이 정도로 물리기 전에 조리법을 바꾸거나 요리를 바꿔야 할 텐데 등짐으로 보로꾸벽돌 나르듯 꾸역꾸역 계란말이를 먹는다. 나중에는 속에서 이런 말이 터져나온다.

“야 너 다음끼니때도 계란말이 먹으면 죽여버릴거다”

나는 매일 이렇게 똑같이 먹는 이유를 시간이 없어서, 짬이 없어서라고 한다. 계란을 그릇에 깨서 대파와 소금을 넣고 후라이팬에 부치는데도 시간이 드니까, 그 시간을 다른 요리하는데 쓰면 된다. 나는 그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폐가 안 좋아졌을 때 의사선생님께 매일매일 점검받으며 운동과 식이를 이어간 적이 있다. 그때 의사선생님은 정말 이해가 안 가고 답답하단 투로 내게 말했다. ‘아니 동물한테 사료주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먹어요? 본인은 입맛이 섬세해서 이렇게 먹으면 부대낄텐데. 우석씨가 우석씨를 이렇게 대하는 한 누군가가 우석씨를 좋아하는 일도 일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가요? 전 이렇게 해서라도 멋있어져서 누군가가 날 좋아해줬음 했는데...)

나는 삶은 달걀을 물릴 때까지 먹다가, 구운계란을 물릴 때까지 먹다가, 달걀 후라이를 물릴 때까지 먹다가, 계란말이를 물릴 때까지 먹는다. 나는 매일 똑같은 걸 계속 먹는 게 싫었고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 싫은 감정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시한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므로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며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짬을 내서 맛있는 요리를 마련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이 상황을 바꾸려 않는다. 이건 내가 어떤 사람이란 걸 말해주는가? 내 삶은 ’어쩔 수 없다‘, 내 삶의 작은 부분도 애써 바꾸려 않는다. 내 삶은 원래 이런 모습이니까. 하기 싫어도 꾸역꾸역 견디는 모습이었으니까. 이렇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서 자취의 달인을 보았다. 혼자 자취하는 사내가 생활을 재미있게 한다. 빨래건조대를 써서 누워서 노트북을 하고, 침대에 누운채로 잠자리채로 책상 위 리모콘을 가져오고, 두루마리 휴지를 던져 전등스위치를 끈다. 좁은 방 자취생활이지만 끊임없이 머리를 써서 생활을 안락하게 만든다. 뭣보다 음식을 맛있게 해먹는다. 인스턴트 비빔면 하나를 먹어도 골뱅이 통조림의 골뱅이를 넣어먹고, 남은 골뱅이국물을 찌개할 때 쓰려고 남겨둔다. 시간도 얼마 안 갈린다. 나도 관심을 기울이면 밥을 잘 챙겨먹고 살 수 있을텐데. 나는 그저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불만족스러우면서도 꾸역꾸역 살고있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이렇게 못 먹겠다고 내 입과 혀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데도.

늦은 저녁 직장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입맛이 없었다. 기름진 바깥음식은 생각만 해도 니글거려서 안 사먹고 그냥 집으로 왔다. 냉장고에 있는 며칠지난 된장국은 도저히 못 먹겠고 라면도 안 당겼다. 오랜만에 요리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냉동실 귀퉁이에서 국물멸치를 꺼내 끓이고 다른 냄비에는 소면을 삻았다. 김대석 셰프의 유튜브를 참고해 파, 마늘, 간장을 넣고 잔치국수 양념장을 만들었다. 맛없으면 어쩌지?

대접에 담은 소면에 멸치육수를 붓고 양념장을 끼얹었다. 그릇채로 뜨끈한 국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 뜨끈하고 간이 그럭저럭 맞았다. 소면과 국물을 먹으며 속이 따뜻해지고 등에 땀이 났다. 국수를 먹는데 긴장이 풀리고 마음도 편해졌다. 내가 이런 요리를 오랫동안 먹고싶어해왔구나. 나는 이렇게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싶어하는 사람인데 한동안 입에 안맞는 음식을 계속 의무감으로 먹으며 살아왔구나. 요리하는데 시간도 크게 안 들었다. 다시 음식을 맛있게 먹는데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게 뭘까. 나는 이 말이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느껴진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잘 대하는 걸까? 나도 이따금씩 의식적으로 내가 한 것을 인정하거나 칭찬하거나, 내가 해낸 일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그래도 잘 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려 한다. 그렇게 해도 이따금씩 몸이 확 아플 때 내 상황과 믿음을 헤아려보면 내가 살아온 삶을 외부의 잣대로 평가하고, 그것에 못 미친다며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걸 확인한다. 그러니까, 자책과 자학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데다 그 힘이 거대한 기계처럼 센데, 나를 챙기고 격려하는 건 다소 의식적이고, 약빨도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끼니는 신경써서 챙겨먹어보자. 요리 유튜브도 자주 찾아보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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