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같이 달리기나 근력운동을 하고 바쁜 일이 있어도 운동을 안 빼먹으려고 한다. 건강을 유지하고, 더 건강해져서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몸이 다시 예전처럼 나빠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난 몸이 안 좋아졌던 근본적인 원인이 마음의 아픔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마음과 몸의 아픔에 대해 파악해서 그것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한편으론 20대 중반부터 10년 이상 아픈 몸으로 연명하듯 살아왔으므로 몸이 다시 나빠질까 두려워한다. 이전에 운동을 통해 몸이 좋아졌다고 믿으므로 운동을 해서 몸이 나빠지는 걸 막으려 한다. 심리적인 방법으로 마음과 몸의 상태가 나아지길 기대하며 물리적인 방법으로 몸상태를 개선하려 한다. 몸토끼와 마음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으려 하고 있다.
나에게 신체증상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건 무엇인가? 통증은 내 삶이 어딘가 어긋나거나 잘못 돌아가고 있단 걸 알려주는 신호이다. 나는 몸이 아픈 걸 단지 특정 신체부위의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여 인식하는 부분을 파악하려 한다. 신체증상의 의미를 파악하면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성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내게 마음 읽기는 무엇인가? 이것은 신체증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을 포함해 내 생각과 생활을 살피며 스스로와 삶에 대한 믿음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는 신체증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을 스스로와 삶에 대한 믿음을 파악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
마음 읽기를 하려는 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나는 현재 직업적인 성취나 수입에 있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의 원인이 마음 읽기가 제대로 안 되어서라고 보고 있다.
이제까지는 내 마음을 잘 모르는 채로 막연하게 남보기에 번듯한 목표를 좇아왔다. 내 마음과 살아온 삶을 이해하지 못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 막연하게 번듯한 걸 좇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까 봐 겁난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뭔가를 이루지 못하고 시간만 날려버리는 건 허망하다. 스스로의 무력한 모습을 재확인하고 싶지 않다.
마음 읽기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뭔가를 해봤자 이전처럼 잘 안되고, 변변찮은 결과를 낼 것만 같다.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면 애초에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를 세우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마음 읽기를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해내려고 하며, 마음 읽기가 충분히 됐다 싶을 때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가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을 안 하려고 한다.
어쩌면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만족할만한 직업적 성취를 못 이룬 것을 '마음 읽기를 못해서'라고 퉁쳐버리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전에 한 상담에서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내 경험을 진솔하게 쓴 글이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기를, 그래서 많이 팔리는 책이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즉 수입을 얻는 일은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하거나, 편집작업을 외주로 받아서 하는 등 구체적인 일을 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글 쓰는 삶에 대해 가진 현실과 동떨어진 믿음은 '진솔하게, 꾸준히 쓰면 잘 되겠지?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막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성과가 없었냐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나는 내 투병경험을 담은 책,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을 냈다. 나름대로 뿌듯하게 여기는 면도 있고, 사람들의 반응도 괜찮았지만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실패라고 규정해 버렸을 뿐이다.
나는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스스로의 마음 읽기도 항상 부족하게 느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심리상담을 받고, 상담공부도 1년 넘게 해 오면서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해 왔다. 내 마음을 조금씩 파악해 왔고 파악해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시점에서 정체성이나 의미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마음 읽기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으며, 마음 읽기가 온전히 될 때까지 더 해야 하는 상태라고 본다.
나는 마음 읽기가 충분히 되지 않고서는 현실에서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믿는다. 나는 아직 마음 읽기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없다. 마음 읽기가 충분히 될 때까지 구체적 성과를 내는 걸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진 마음을 읽는데 집중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건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한 믿음'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언제쯤이면 마음 읽기가 '충분'하다고 느끼게 될까?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는 미국의 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맥은 폭력행동으로 감옥에 수감됐다가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맥은 술과 여자와 카드게임을 좋아하고 환자복에 본인의 셔츠를 겹쳐 입는, 자기만의 욕망과 색깔이 분명한 사람이다.
병동에서 지내는 환자들 중에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미쳐버려 그곳에서 지내야 되는 사람도 있지만 비교적 멀쩡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맥이 경악했던 것은 환자들 중 상당수가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왔으며 병원에서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병동에서 온갖 소란을 일으키며 몇 개월을 보낸 맥머피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하려 한다. 그간 정이 들어버린 말더듬이 청년이 작별인사를 한다.
네... 네가 그리울 거야, 맥!
그럼 같이 가!
가... 가기.. 시... 싫은 게 아냐.
그럼 가면 되잖아?
쉬... 쉬운 일이 아냐. 주... 준비가 안 됐거든.
이 말 더듬는 청년의 대답이 항상 마음에 남아있었다. 아마도 그의 대답이 내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외부세계에서 한계를 만나거나 벽에 부딪칠 때마다 내 안으로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번듯한 성과를 못 낼 때마다 스스로에 체념하며 나만의 좁은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이건 나의 오래된 습성이고 행동방식이다. '내가 부족하거나, 꼬이거나, 결핍된 부분이 있어서 외부세계에서 성과를 내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온 삶을 샅샅이 파악하고 마음을 낱낱이 밝혀서 부족과 결핍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고 난 이후에야 나는 다시 외부세계로 나가볼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어려움과 마주하고 노력해도 그것을 넘을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내가 보였던 태도는 체념과 도피였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 7년의 투병생활은 7년의 도피생활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외면하고 숨으려는 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신체증상으로 나타났다. 신체증상은 내가 피하고 싶었던 그것을 딱 할 수 없는 종류의 통증과 강도로 나타나 외면하고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그때 몸이 아파서 무언가를 못 한다고만 생각했다.
몸이 아파서 집에만 있든, 마음 읽기가 덜 됐으니 뭔가를 하지 않겠다고 하든 스스로가 뭔가를 해나가기에 부족하고 결핍되고 모자란 존재라고 전제하는 점에서는 같다.
현재의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난 존재라는 자기규정은 실제로 그러하다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정상, 잘못'으로 규정하기에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에 가깝다. 부족하고 못났다는 시선도 스스로의 것이라기보단,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외부의 통념적인 시선을 가져와 스스로에게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에 가깝다. 나는 스스로 유죄판결을 내려놓고, 판결의 결과에 머리를 싸매고 좌절하고 죄수와 같다.
내가 현실에서 벽을 느낄 때마다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오는 것은 마음을 읽는 것이 현실에서 뭔가를 해가는 데 본질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마음만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읽어내면 구체적인 일은 비교적 술술 풀려가리라 생각한다.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마음 읽기'와 '현실적 실천'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 읽기이고 구체적 실천은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 마음 읽기가 되면 저절로 딸려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난 신체증상의 의미를 이해하면 현실에서 구체적 성과를 낼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다. 나는 나름대로 신체증상의 의미를 파악한 부분도 있는데 왜 삶은 지지부진한 지 의문이며, 그 이유가 의미를 '제대로'파악하지 못해서라 믿고 다시 신체증상의 의미를 읽으려 한다.
이 지점에서 내가 미로의 같은 구간을 뱅뱅 도는듯한 혼란을 겪는 건 신체증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현실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는 것이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체증상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해서 어떻게 살아갈지가 뿅 하고 튀어나오진 않는다. 그것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신체증상의 의미를 파악하면 구체적 삶의 방식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로, 현실이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때마다 마음 읽기가 안 돼서라고 믿고 도돌이표처럼 마음 읽기로 돌아간다.
마음 읽기에만 매달리며 구체적 실천의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실패할까 봐, 잘 안될까 봐, 무력하고 못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확인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과 부합하는 생각일까? 결국 내가 마음 읽기를 하려는 건 현실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이다. 내가 마음 읽기라고 하는 건 현실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었나?
나는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을 따로따로 분리하여 인식하는 사고의 습관이 있었다.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 글쓰기와 삶, 직업과 글쓰기, 남에게 보이는 글과 마음을 탐구하는 글을 분리하여 인식했고 이러한 인식은 내 삶에 혼란을 초래해 왔다.
살아가는 데는 생각과 행동이 모두 필요하다. 삶은 인식과 실천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된다. 나는 '마음 읽기(자기 인식)'와 '현실적 실천'이라는 결합되어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을 따로따로 분리하여 인식했다. '마음 읽기'가 '현실적 실천'보다 중요하다고 차등을 두었고, 마음 읽기가 되면 현실적 실천은 저절로 이루어질 거라고 여겼다. 내가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러한 믿음에서 발생한다.
마음 읽기가 온전히 되면 현실의 구체적 일이 술술 풀려나가리란 기대는 이뤄지기 어렵다. 성취는 마음 읽기와 현실적 실천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다. 나의 기대는 골방에서 10년 동안 책만 읽던 허생이 문밖을 나서자마자 한양 시내의 장사판을 쥐락펴락하는 이야기처럼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허구에 가깝다.
내가 '온전한 마음 읽기'라고 믿는 상태는 현실과 만나자마자 곧바로 삐걱댈 것이고, 나는 '마음 읽기'를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러냐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또다시 '온전한 마음 읽기'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믿음은 스스로를 골방철학자로, 현실의 구체적 성과가 없는 채로 머물게 할 위험이 있다.
나는 스스로가 '뭐든 못한다, 못났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단 걸 매번 확인하면서도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해 갑갑해했다. '온전한 마음 읽기'에 매달리는 이상 현실에서 구체적 실천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상태에서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재 내가 보이는 '난 아직 마음 읽기가 덜 됐으니 구체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에는 분명 도피적인 면이 있다. 나는 마음 읽기를 하려고 애쓰니까 자기 발전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마음 읽기가 덜 됐어, 나는 부족하니 마음 읽기를 더 해야 해'라는 태도로 현실세계에서 구체적 실천을 해가는 것을 도피하는 것일 수 있다. '열심히 마음 읽기를 하는 태도'는 내가 도피하고 있다는 현실을 교묘하게 가려준다.
나는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고,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다. 나는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났다'는 이유를 들어 현실에서 달아나 나의 좁고 어두운 방으로 숨으려 한다. 어쩌면 나는 '부족하고 못나야만'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족하고 못난'자기 이미지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내가 현실에서 실패의 가능성과 어려움과 고생과 머리 아픔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프리패스 이용권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생은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진짜 두려운 것은 실패하는 것이고 못하는 나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불편하고 아픈 신체증상'또한 내가 현실에서 무엇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할 때 내밀 수 있는 유용한 패가 된다.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란 믿음과 '몸이 아픈 증상'은 내가 현실에서 도피해 자꾸 내 안으로 숨어들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는 이것에 더해 '마음 읽기가 덜됐다'는 카드까지 활용해 내가 마주한 현실에서 도망가려 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