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면서 자기가 운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종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성남은 남쪽도시 부산보다 훨씬 추웠다. 11월 초순이었는데도 찬기운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흠집투성이의 촌스런 회색캐리어를 끌고 버스터미널에서 나왔다. 수도권의 전철은 엉킨 전선줄처럼 복잡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노인마냥 수차례나 노선도를 확인하며 야탑역에 도착했다. 고시원은 지하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적한 골목가에 있는 4층 높이의 건물이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곳에서 지내게 될 터였다.
고시원에 오기 1주일 전쯤 다른 정형외과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X-ray와 MRI 결과를 본 의사는 이전의 의사와 비슷한 말을 했다. 디스크 증상이 조금 보이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였다. 막막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온 뒤 한참동안 근처 거리를 걸으며 고민했다. 아프기 시작한지 반년이 지났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절박하게 재활에 매달렸지만 불편한 증상과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겐 보다 나은 대안이 필요했다.
기존에 하던 재활운동을 더 철저하게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사들에게 직접 배우고 교정도 받는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다. 이 재활운동을 가르쳐주는 곳은 수도권에만 있었다. 며칠을 고민한 뒤 성남에 올라가 직접 운동을 배우기로 했다. 집에서 혼자서만 끙끙대기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나을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몸만 낫는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넘길만큼 절박했다. 곧장 운동센터 근처의 고시원을 알아두고 버스표를 예매했다.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가방에 넣고 '누워서 보는 독서대'를 캐리어 외부에 테이프로 묶었다. 짐을 싸고 있을 때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왔다.
이렇게 급하게 가지 말고 일단 집에 있어봐. 병원도 더 다녀보구.
병원에선 매번 별 이상 없다고만 하던걸. 병원치료 몇 개월 받았는데 효과도 없구...
성남 가서 운동한다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너무 서둘러 가는 것 같아서 그러지.
계속 이러고 있다간 인생 망칠것 같아서... 나 더 지체되면 안될 것 같아서...
말하는 도중 왈칵 눈물이 났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그동안의 서러움이 뒤섞인 울음이었다. 난 겁이 났던 것 같다.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을 아무리 해도 낫지 않는 고장난 몸이 당혹스러웠다. 주변 친구들은 졸업하고 취업하며 한 발자국씩 내딛고 있을때 병이라는 덫에 걸려 중요한 시기가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는 게 조바심이 났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울었다. 엄마는 내가 고생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어깨를 문지르며 격려했다. 살다보면 힘든 일을 겪을 수 있는 거고, 난 잘 극복해낼 거라고 했다. 엄마는 어쩌면 나보다 더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 말은 엄마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을 것이다.
창문은 있지만 화장실이 없는 1.5평짜리 방을 계약했다. 월세는 33만원이었고 공용주방에 구비돼 있는 김치와 밥과 라면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공책 크기의 창문으로는 옆건물의 우중충한 콘크리트 외벽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 우측의 미니냉장고와 책상, 좌측의 1인용 침대를 놓은 공간을 제하니 바닥에는 스케치북 세 개 정도 놓을 공간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험생들은 '합격'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시원을 찾는다. 나는 질병 극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생활은 단순했다. 운동하고 밥먹고 휴식하고 잤다. 크게 다를 것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주중에는 근처에 있는 운동센터에서 운동을 했다. 원장은 눈매가 선한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몸이 아파서 타지까지 온 젊은애가 안쓰러웠는지 수강료를 할인해주었고 운동법과 치료법을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센터에서 운동하지 않을 때는 고시원 방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재활운동을 했다. 주말에는 젖은 빨래를 가득 널어놓은 눅눅한 방에 누워 만화책을 봤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칙이다.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인간의 주거에 적용되면 다소 서글픈 일이 생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방세를 받기 위해 한정된 공간을 한계치까지 쪼갠다. 이곳은 '살아남기' 위한 공간은 될 수 있지만 '살아가기'위한 공간으로는 부족하다. 이곳의 협소한 공간은 감옥의 독방처럼 마음을 갑갑하게 한다. 외부 창문이 있는 내 방은 고시원의 방들 중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다. 중심부에 위치한 방에는 복도쪽으로 낸 손바닥만한 창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벽에 창문을 그려놓은 것처럼 형식적인 조치로 보였다. 고시원 한 층에는 여러명이 함께 살았지만 그들은 각자의 방에서 오직 자신과만 대화했다. 내가 살던 고시원 한층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 비슷한 불편함을 견디고 있는 수십명의 고독한 개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진 인간은 필사적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간단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곧장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을 겪는 사람은 칠흑같은 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처한 상황이 불에 대인 듯 괴롭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의식을 명료하게 유지하려 애쓰며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고안하고, 이를 실천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그 해가 끝나기 며칠전 고시원에서 나왔다. 센터에서 배워야 할 운동법을 다 배워서 더이상 있을 까닭이 없었다. 부산으로 돌아온 후에도 몇 달간 같은 치료법을 고수했다. 1년을 쏟아부은 후에야 나는 이 운동이 내 병에 적합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시원에서 보낸 시간은 병을 회복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만번의 구르기와 상처와 진물과 악다구니와 한숨과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엉킨 1년이 허망하게 흘러갔다. 이후에도 나는 이러한 실패를 반복해서 경험해야 했다. 특정 시점이 지난 뒤 판단해보면 내가 선택한 치료법은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어리석어서 그런걸까? 하지만 나는 선택의 기로마다 내게 최선이라 여겨지는 방안을 택했다. 누구도 일부러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성과없이 시간을 잃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풀이해 물었다. 내가 겪은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걸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난 그 질문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었다. 긴 고통의 시간동안 내 안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 때문이었다. 예전의 나는 운명이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삶을 손아귀에 쥐고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스스로가 선두에 서 있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으론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얕잡아봤다.고통과 수차례의 좌절은 내 생각을 바꿨다. 불행은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고 세상의 이치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복잡했다. 나는 작았고 한계가 뚜렷한 인간이었다. 때때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어두운 방에 주저앉아 혼자 눈물흘리는 것 뿐이었다. 어둠의 시간은 날 깍고 다듬었다. 자만심이, 오만함이 내게서 조금씩 떨어져나갔다. 난 예전보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타인의 인생에 대해 함부러 평가하고 충고하려는 이들을 종종 보게된다. 그들은 특별한 자선이라도 베푸는 양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려 든다. 난 그들의 섣부르게 행동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절절한 아픔과 대면해본적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절망해본 일 없는 사람, 큰 고비 없이 커다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위험하다. 그들의 단순한 세계관으로 볼 때 인생은 가전제품 설치만큼이나 단순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노력하면 극복못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겪어본 적 없는 불행에 자신의 경험에서 급조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타인이 겪어왔을지도 모를 고통의 시간을 짐작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게으른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들은 은연중에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불행에 짓눌려 괴로워해본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때의 막막함을 안다. 이들은 인생이 어렵고 만만치 않은 것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인생을 함부러 평가하지 않고 타인의 아픔을 멋대로 등급화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인생은 '어찌할 수 없음'의 누적이기에 타인의 불행을 말할 때엔 한없이 조심스러워져야 함을 그는 이해한다. 언젠가 이철환 작가가 아침마당에 출연해 지난한 투병기를 담담히 털어놓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을 짐작한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한 순간이었다.
속물적이고 영악한 사람이라면 투병기간의 수익과 손실을 통계내려 할 것이다. 똑똑이라면 짧은 기간에 마무리했을 투병기간을 하염없이 연장하며 오랜 기간 헤맸다. 앓는 동안 서른을 훌쩍 넘겨버려 취업할 시기도 놓쳤다. 그동안 경제적인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으니 금전적 으로 환산해보면 투병기간은 의미없는 지출의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내 고통의 시간을 타인의 잣대로 측정하지 않기로 했다. 고통의 시간은 행복했던 시간만큼이나 내게 소중하다. 내가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인생 앞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내가 겪은 고통의 시간 덕분이다. 내 인성에서 긍정적이라 할만한 속성의 대부분은 아픈 시간동안 만들어졌다. 아파 본 후에는 세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인식하게 된다. 고통을 통과해낸 경험은 반드시 힘이 된다. 당신이 겪었던 고통은 머리에서 잊혀질지라도 몸 속 깊은 곳 어딘가에 응축된 형태로 남아있다. 그 흔적은 살아가며 마주치는 힘든 국면마다 당신을 몇 번이고 일으켜세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