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주를 마신 것처럼

by 쓰는 사람

나의 아픔이 세상의 수많은 아픔의 한 조각임을 깨닫고 나의 기쁨이 누군가의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 중에서




해가 바뀌고 새 학기가 되었다. 다니던 학교의 최대 휴학기간은 1년이었다. 휴학한 지 두 학기가 지나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졸업이라도 해두자는 생각으로 복학을 했다. 망가진 몸으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교실 제일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견딜 수 있을 만큼 통증을 견디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수업시간을 버텼다. 낙제를 면할 정도로 출석하고 시험 치는 날에는 이름만 적고 나왔다. 공들여 관리해왔던 학점이 곤두박질쳤다. 다른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칼라 영화에서 혼자만 흑백의 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에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도서관에 앉아 지루한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개학한 지 한 달쯤 지난 시점이었다. 구르는 운동을 하는데 등 쪽 감각이 이상했다. 거울로 보니 척추선을 따라 등허리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일시적인 증상으로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붓기가 심해졌다. 똑바로 누울 수 없어 모로 누웠다 엎드렸다 하며 잠을 설쳤다. 일주일쯤 지나자 아픈 부위는 철봉이라도 넣은 듯 팽팽하게 부풀었다. 등이 뜨겁고 이마에는 열이 나는데 오한 들린 듯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통증에는 임계치가 있는 것 같다. 간신히 견뎌내고 있던 고통에 새로운 통증이 얹어지자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는 일 자체가 힘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집 앞의 내과를 찾았다. 저녁 시간이었다. 아파서 조치를 받을 수 없겠냐고 묻자 간호사는 냉담하게 진료시간이 끝났다고 말했다.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호소하자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마음이 서늘했졌던 건 간호사의 차가운 태도 때문이었다. 분명히 문을 닫을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삼각김밥을 사거나 교통카드를 충전하러 그곳을 찾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내 아픔에 아주 조금만이라도 주의를 기울여줬다면 병원 건물을 나오는 마음이 그렇게 쓸쓸하진 않았을 거다. 내가 얼마나 아프든 그녀에겐 딴 사람 일이었다. 몸 안에서는 통증이 격렬하게 불타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픈 동안 만났던 의사와 간호사와 약사 중에는 내 고통에 무관심한 이들이 많았다. 분명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냉정함은 신경질적인 환자를 대하는 감정노동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태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선긋기는 언제나 나를 조금 서글프게 했다. 그래서인지 고통을 줄여주려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써주는 의료종사자를 만날 때면 눈물이 핑 돌만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곧장 지하철을 타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병원 특유의 오래된 약 냄새가 공기에 섞여있다. 어두운 복도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진료받을 차례를 기다린다. 병원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곳이다. 사람들은 기다리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의사를 기다리고, 문병을 기다리고, 처방전을 기다린다. 내시경 검사 결과를, 수술시간을, 끼니때마다 병실로 가져다주는 식사를 기다린다.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될 언젠가를 기다린다.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입원 예약환자가 워낙 많아 두세 달은 기다려야 입원할 수 있다. 내 등을 살펴본 여의사는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곧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은 병실에 자리가 없어 일단 응급실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야간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가 본 일이 있는가? 그곳은 다급하고 부산하고 서러운 곳이다. 검은 망토를 걸친 죽음의 신이 긴 낫을 쥐고 병실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린다. 부산에서 심하게 아픈 사람들은 죄다 이곳으로 온다. 붕대로 머리와 얼굴을 칭칭 싸맨 청년, 금방 사고를 당한 듯 옷이 피로 젖어있는 아저씨, 바짝 말라 쪼그라든 노인네들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아이들, 아픈 아이들이 있다. 제 몸피보다 훨씬 큰 고통에 휩싸여 무엇이 저를 괴롭게 하는지도 모른 체 엉엉 우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의 아픔 앞에선 내 아픔이 얼마간 부끄러워진다. 구석진 곳의 창가 쪽 침대가 내 자리였다. 상처가 감염되어 등이 부은 것 같다고 한다. 팔에 꽂은 링거 바늘로 간호사가 약물을 주사한다. 부글부글 끓던 몸속 고통이 어느 정도 진정된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코너에서 내내 얻어맞다가 라운드를 끝내는 헛소리를 들은 권투선수 같은 심정이다. 맞은편의 할머니는 황소고집이다. 의사들이 받을 수 있는 치료가 없어 퇴원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줄곶 신세한탄을 하며 응급실에 남기를 고집한다. 난 침대 주위로 커튼을 치고 자리에 눕는다. 흰색 시트의 매끄럽고 선득한 감촉이 낯설다.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는 조금 길었던 것 같다.


다음날 점심시간쯤 간호사가 대기자 병실로 데려다주었다. 응급상태를 벗어난 환자들이 병실에 자리가 생길 동안 지내는 곳이다. 넓은 공간 좌우로 환자 침대가 배치돼 있고 미닫이 문이 앞뒤로 나있어서 의료진들이 병실 중앙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닌다. 이곳은 입원병동이 아니라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 끼니때마다 병원 주차장 입구 건너편의 일본식 우동집에서 후리가케 주먹밥을 사다 먹었다. 밤 9시쯤 링거를 잔뜩 매단 이동침대에 한 아저씨가 실려왔다. 초라한 행색의 삼십 대 중반 청년과 육십 대 중반 아주머니가 함께 왔다. 아들과 부인인 듯하다. 아저씨는 황달(黃疸) 증세가 무척 심했다. 누렇게 변한 안색과 흰자, 복수가 차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 복부에 연결된 튜브, 얇은 나뭇가지 같은 팔뚝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 했다. 병실에 있으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의 사정을 알게 된다. 침상에 기대앉아 있으니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 들린다. 아줌마가 어쩌자고 의사 말 안 듣고 그렇게 술을 마셔댔느냐고 아저씨를 채근한다. 원래 간이 안 좋았던 아저씨는 의사의 만류에도 술을 끊기가 어려웠나 보다. 끼니마다 밥 대신 소주를 마시는 날들이 이어지자 간경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모양이었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체념과 회한이 섞인 얼굴로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난 어찌할 바를 모른 체 먹먹한 심정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난 그곳에 3일 동안 더 머무르다 8인 병실로 옮겨갔다.


오전에는 수액을 새로 연결한다. 하루에 맞아야 할 수액은 세 개 정도다. 거치대에 수액을 걸고 끌고 다니면 덜덜 소리가 난다. 견학 온 사람처럼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엠알아이를 찍는다. 염증 검사를 받고 초음파 검사를 받고 심전도 검사도 받았다. 얇고 길쭉한 혈액 채취병에 담긴 내 피가 상당히 과학적(?)으로 보인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500원짜리 동전 넣고 사용하는 컴퓨터로 건강정보를 검색한다. 병원 주변을 돌며 걷기 운동을 한다.


8인 병실 내 왼편 침대의 아저씨는 덩치가 컸다. 180 중반의 키에 백 킬로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그는 가끔 원내에서 담배를 피워 간호사들의 원성을 샀다. 사고로 눈을 다친 아저씨는 왼쪽 눈에 플라스틱으로 된 둥근 보호대를 붙이고 있었다. 환자복을 갈아입을 때 보이는 화려한 문신으로 짐작하건대 최전선에 있는 건달 같았다.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내가 광어회를 사들고 문병을 왔다.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몸매는 사시미칼을 잘 다룰 듯한 인상을 주었다. 건달 아저씨가 먹어보길 권한 회를 내가 사양하자 '동생'의 표정이 굳었다. "뭐? 안 먹어? 억지로 쑤셔 넣어, 하하하하하." 분명 웃으라고 한 농담이었겠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건달 아저씨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얌전하고 조신하게 병실생활을 했는지 여러분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남는 병실이 얼마 없어 안질환자들의 병실에 배정된 것 같았다. 우측 창가의 침대에는 시력이 심하게 떨어진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있었다. 돌볼 가족이 없는 듯했다. 형처럼 늙은 그의 남동생이 형의 수발을 들었다. 앞을 잘 볼 수 없게 된 형은 동생의 팔을 붙들고 발을 끌다시피 하며 걸었다. 들리는 말로는 다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했다. 동생 아저씨는 나를 친근하게 여겼는지 이따금씩 말을 붙이곤 했다. 순박한 사람이었다. 공사판에서 다친 뒤 골반에 핀을 박았다 했다. 아픈 몸 때문에 일할수 없게 된 후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간다 했다. 동생분은 알코올 중독인 듯했다. 병실에서 술 마시는 걸 간호사에게 들키면 안되니까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두는 것 같았다. 창가 쪽 사물함에는 언제나 500ml 생수병 두 개가 시치미를 뚝 떼고 서 있었다. 어느 오후 소주 두병을 검은 봉지에 담아온 그가 생수병에 소주를 옮겨 붓는 모습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아저씨가 웃는 모습을 보자 소주를 마신 것처럼 심장이 찌르르 아파왔다.


건달 아저씨와 동생 아저씨는 서로 죽이 잘 맞았다. 둘은 일층 야외 휴게실로 담배 피우러 함께 나가곤 했다.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친 뒤 건달 아저씨가 담배 피는 데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으면서 보스의 지시를 받은 조직원처럼 그들 뒤를 따랐다. 4월 중순이었다. 휴게실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에 벚꽃이 한창이었다. 나무 잎사귀를 통과한 햇볕이 회색 시멘 바닥에 동글동글한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보스가 뽑아준 코코아를 들고 담배 피우는 그들 곁에 쑥스럽게 서 있었다. 조폭과 알코올 중독자와 척추가 굽은 20대라니... 삼류 야쿠자 영화에 나올법한 조합 같았다. 그 순간 모든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한 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아픈 이들을 보면서 삶의 본래 모습은 슬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문화는 긍정적인 것만 선별한다. 티브이는 유행하는 옷과 잘생긴 사람들과 화려한 풍경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부서지고 뒤틀리고 초라한 것을 사람들은 멀리한다. 나 또한 그랬다. 타인에게 깔끔하고 유쾌한 모습만 보여주려 했다. 내 삶이 포르셰 승용차처럼 폼나고 매끈해 보이길 바랐다. 불행은 허위를 깨고 삶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내가 바랐던 건 환상일 뿐 진짜와 거리가 멀었다.


손수레에 폐지를 싣고 다니는 할아버지, 정류장 주변에 쪼그려 앉아 마늘과 고구마순을 까는 할머니들, 몸 어딘가가 불편한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던 건 그쯤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전에도 그들은 늘 내 주위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은연중에 나를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나의 허위의식일 뿐이었다. 궁핍한 이들의 초라함은 원래 내게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건 태고적부터 어떤 인간이나 지니고 있는 한이며 슬픔이었다. 그제야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 까닭은 무엇이었일까. 그건 내가 불행으로 인해 옹색한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스러운 삶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해서였을 것이다. 인간 존재의 정직한 모습은 한편으론 얼마간 궁색하고 슬픈 것임을, 그 슬픔 안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숨어있음을 삶이 내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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