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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Sep 13. 2019

4.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하려면

고통만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고통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궁지에 빠진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은 결정적으로 고통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대로> 중에서




 병원에서 보름간 머물다 퇴원했다. 의사들은 검사결과상 별 이상이 없다는 맥빠지는 얘기만 했다. 감염됐던 등이 나은 것 말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는 병원생활이었다. 병은 지독하고 끈질겼다. 아픈 지 1년이 넘었지만 증상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넘어진 나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하루하루는 고됐지만 이따금 정신을 차려보면 한주가, 한달이 훌쩍 지나있곤 했다.  간간히 하던 토익공부에서 손을 뗐다. 아픈 몸으로는 공부효과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취업준비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였다. 얼른 회복해서 졸업하고 취업하자는 기존의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투병생활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지도 몰랐다. 내 인생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아픈기간 또한 인생의 소중한 일부였 다.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건강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보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틈만 나면 건강서적을 빌려봤다. 인터넷의 환자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검색했다. 식단을 조절하고 척추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했다. 매일 한시간 넘게 동네를 산책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아무리 열심히 자가치료를 한다해도 치료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4-5시간 남짓이다. 이 몸으로 공부를 할 순 없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 수도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내겐 오랫동안 미뤄온 인생의 과제가 있었다. 그건 뒤틀린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었다. 몸이 아프기 훨씬 전부터 마음은 부패하고 곪아 있었다. 몸보다 마음의 병세가 더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을 떠올려보면 늘 외톨이마냥 교정을 걸어다니던 생각이 난다. 혼자 수업을 듣고 밥을 먹었다. 자발적인 아웃사이더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집단에 자연스레 섞이질 못했다. 사람을 대하는 일엔 습관적인 불안이 동반됐다. 외딴 폐가같은 마음에 늘 사나운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려 해도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건 참 갑갑한 일이다. 언젠부턴가 나는 사람들과 친근한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떤 집단이든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까워졌다. 친해지기 위해 특별히 애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겐 숨쉬듯 자연스러운 관계맺기가 내게는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는 것처럼 어려웠다.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존재하는 어색함이 있다. 나는 그 어색함을 시간이 지나도 지워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얼음처럼 굳어있는 나를 사람들은 불편해했고, 견디다못해 뒤돌아서곤 했다. 



 호감과 애정에 목말랐던 나는 원만한 사람이 되려 애썼다.부당한 짓을 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았다.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터져나오는 화를 억지로 눌러담았다. 분노한 기색을 보였다가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미약한 관계마저 끊어질까봐 겁이 났다. 갈등과 싸움을 회피하는 것,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것, 그건 내가 삶을 살아온 방식이었다. 


 
 착한 모습만 보이려 했음에도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인 갈등을 겪었다. 학창시절에는 질나쁜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군대 선임 한명은 나를 찍어서 집요하게 괴롭혔다. 힘세고 야만적인 이들이 나를 노리개로 삼으려 할 때 나는 겁에 질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악행을 끊임없이 정당화했다. 누군가를 짓밟는 이들은 그 행위에서 자신이 우월한 존재란 걸 확인하는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즐겁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그렇게 지속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았을 거다. 아이이건 어른이건 마찬가지였다. 짖궃은 쾌감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고통을 유발하는 이들은 세상 곳곳에 있었다. 이런 일을 겪거나 목격할 때마다 인간 존재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



무엇보다 괴로웠던건 폐수처럼 혼탁한 마음이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으로 마음은 엉망진창이었다. 과거에 겪었던 폭력의 경험과 수치가 수시로 떠올랐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힐때면 심장이 증오심으로 불타는 듯 했다. 내 안에는 과거의 원수들이 살았고 난 그들과 끊임없는 전투를 치렀다. 난 과거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했다. 내 자신이 싫었다. 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만 상황이 긴박해져도 겁먹은 짐승마냥 얼어붙는 내가 싫었다.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내가 싫었다.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말 못한 채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썰렁한 내가, 못생긴 내가, 인기없는 내가, 만만하게 보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학의 말들이 내안에서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반사됐다. 난 스스로에게 병신이며 최악의 인간이었다.



  난 내향적인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소심한 성격을 몇차례고 지적받은 적이 있었고 스스로도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활달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날 좋아해줄 것만 같았다.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담대한 사람이 되면 관심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스피치 학원에 등록해서 연단에 서는 연습을 했다. 담을 키우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타 사람들 앞에서 말해보려는 시도도 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같은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실천하려 애썼다. 타인과 원만하게 지내는 기법을 익히려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둔다거나 경청한다거나 하는 방법론들이었다. 성격을 개조하고 사교술을 익히려는 노력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풍선처럼 부풀려진 자신감을 얻을 때가 있었고, 전진하는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었지만 일시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방법론들을 실천하다보면 온몸에서 진이 빠졌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하는데서 오는 자괴감때문이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혼돈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난 방법을 찾아 헤맸다. 인터넷의 심리치료 카페를 뒤졌다. 대인공포증, 인지치료, 심리학, 불교, 천주교등 여러 분야의 책을 읽었다. 우연히 '깨어나십시오'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공지영 작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책을 세 번이나 거푸 읽었다 했다. 이 책은 내가 가졌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엎었다. 



"아무도 여러분을 도울 수 없고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것 한가지는 ... 자기관찰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법을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바꿔 놓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살피십시오. 자기 내면이나 주위에서 되도록 모든 걸 살펴보되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처럼 살펴보는 걸 말합니다."

"그 상태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하면 그것들은 힘들이지 않고, 올바르게 변할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여러분이 변화시켜야 하는 게 아닙니다."



 난 변화가 노력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믿어왔다. 인간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다가서려고 노력할 때 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논리는 모든 것을 사람의 이성과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 류의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기업의 매출상승이나 생산량 증가 등의 목표는 그런 방식으로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루려는 건 '마음의 성장'이었다. 마음은 자동차 엔진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한 이치로 작동했다. 자기관찰은 스님들의 수행과도 유사했다. 애초부터 '외향적인 사람이 되는 것' 처럼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수행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처럼 세상과 자신을 인식하는 렌즈가 왜곡되어 있는 사람이 올바른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리 없었다.


 
 "변화는 오직 자기관찰을 통한 이해에서만 일어난다." 간단하지만 엄청난 통찰을 담고 있는 문장이었다. 한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는 경향성과 결이 있다. 오랫동안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해온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틀 자체를 의식하기는 무척 어렵다. 평생 동굴에 갇혀 지내온 사람은 동굴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변화에 대한 이 책의 조언은 평생 동굴에 갇혀 살아온 내게 동굴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는 동료죄수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얼마나 난 사람이길래 이 정도의 진리를 깨닫고 전할 수 있었을까. 아마 저자 혼자서 만들어낸 깨달음은 아닐 것이다. 이 진리에 도달하기까지 수천명 수행자들의 고행이 있었을 것이다. 저 수행법은 축의 시대부터 자신과 타인을 자유케하고자했던 구도자들에 의해 전승되온 진언같은 것이었으리라. 수많은 속박된 영혼에게 빛을 선사해준 지혜였을 것이다.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내 경우에는 완벽하게 진실이었다. 이 책을 대여섯번은 되풀이 해 읽었던 것 같다.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하려면 그 이전에 충분히 고통 받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왠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살아온 대로 사는 편을 택한다. 변화란 어려운 것이고, 살아온 삶의 관성은 끈질긴 법이니까. 스스로에 물었다. 난 진정으로 변화를 원하나? 그랬다. 변하지 못할바엔 죽는게 낫겠다고 말할 정도로 바뀌고 싶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고통이라면 진저리 쳐질만큼 겪었다. 변화를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각오가 있었다.
 


이전에도 변화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었다. 이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던 이유는 바꾸려 했던 게 외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바꾸려 했다. 겉으로 보이는 성격을 교정하고 말솜씨를 갈고닦고 유머를 익히고 겉모습을 치장하려 했다. 효과가 없었던 건 그것이 내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메스로 갈라 수술해야 할 부위에 연고를 덧칠하고 있는 사람과 같았다. 어떤 방식으로 상황을 헤쳐나갈지 아직도 모호했지만 취해선 안될 행동은 비교적 명확해졌다. 표면적인 것에 천착하는 행동을 그만둬야 했다. 타인의 화려함을 선망하던 시선을 내부로 돌려 초췌한 자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나무를 심으려는 시도와 같았다. 오래도록 돌보지 않고 방치해둔 땅이었다. 잡초와 폐기물로 뒤덮인 체념의 땅이었다. 되돌아오고 싶지 않아 외면해온 곳이었다. 하지만 이 땅은 내가 가진 유일한 가능성이며 희망이다.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생명을 키워내지 못한다면, 내게 미래는 없다. 괭이 하나와 몇 개의 시들한 묘목을 챙겨들고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그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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