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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an 26. 2020

노무현과 4.13총선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라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결국 낙선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노사모를 조직하였고, 이후 노무현은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고, 노사모는 노무현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위키백과 '노무현'에서 발췌-




 노무현이 2000년도 강서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건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였다. 정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건만 극우세력은 역사의 중요 국면마다 영남과 호남의 대립을 조장했다. 정권을 잡기 위해, 국가범죄를 덮기 위해, 한자리 해먹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서 간에 악감정을 조성해왔다.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뿌리 뽑지 않고 한국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선이 확실시되는 종로구 공천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의 텃밭, 표밭, 싹쓸이 구역인 부산 강서구에 출마했다. 부산에 출마해서 당선됨으로써 견고한 지역 배타주의에 균열을 내려했다.




한나라당 하태열 후보의 선거전략은 뻔하지만 강력한 지역감정 조장이었다. 대통령과 집권당인 민주당이 전라도에 각종 특혜를 주고 부산을 발전에서 배제시키고 있다고 했다. 강서구 선거는 하태열과 노무현의 대결이 아닌, 국민이 민주당을 심판해야 하는 선거라고 했다. 부산 시민들 다수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호감을 가졌지만 전라도 정당, 김대중 정당으로 인식되는 민주당을 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수 언론과 정치세력이 오랜 시간 구축해온 지역감정이라는 벽은 까마득히 높고 두터웠다.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은 단순했다. 구체적인 지역정책이나 후보의 정치의식은 필요치 않았다. 현 정부가 부산을 말아먹고 있다, 전라도 사람이죠? 운운하며 혐오를 만들어내면 됐다. 노무현 캠프는 동서화합, 정치개혁이라는 건전한 가치를 내걸었음에도 선거운동을 자유롭게 하는데 제약을 받았다. 발언 하나, 기사에 대한 반응 하나가 혹시라도 지역감정을 건드리지 않을까 마음 졸여야 했다. 이곳이 부산이었기 때문이고, 지역감정이 이성이 아닌 정서의 영역에서 작동해서였다. 노무현을 지지하고 도왔던 참모진은 모순된 관념, 보이지 않는 괴물 같은 지역감정과 싸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선거전략을 세웠다. 노후보의 선거유세장은 즐거웠다. 가수 공연과 댄스팀의 유세가 있었고 아이들 얼굴에 페인팅 한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국회의원 선거기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간 사람은 노무현만이 아니었다. 참모진은 가끔 술을 마시며 노무현과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토로했다. 노무현과 함께하는 정치는 고난의 길이었다.




하태열 후보는 선거에서 이겼지만 노무현과 함께 유세장에 선 그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누군가는 동서화합과 정치의 발전을 이야기하는데 누군가는 해묵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하태열에게는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기존의 폐단을 되풀이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정부 주요 요직을 거친 사람이라고 하지만 마음속에 정치에 대한 비전이 없는 것이다. 그저 금배지를 달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노무현이 강서구 지역에서 떨어진 걸 두고두고 기억했다. 상대 후보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민들과 어울리는 그의 태도에는 꾸밈이 없다. 공터의 할머니들과도, 길가는 아주머니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어울린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치는, 정치로 인해 나아지는 시민의 삶은 논리 정연하면서도 어렵지 않아서 노인정 어르신들도 다 알아듣는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까닭은 마치 지역감정처럼 비이성적이다. 사람들은 그를 소신 있는 정치인일뿐만 아니라 한 명의 참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를 만나본 적 조차 없는 사람들도  그를 잃은 뒤 그를 그리워한다.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참 좋을 텐데.




사람들이 노무현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건, 그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다. 그의 연설이 사람이라면 정서의 밑바닥에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선한 의지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대접받고,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 혐오와 분열이 아닌 화합과 평화의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펴서이다. 민중은 정치권력의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다. 정치판은 분열을 부추겨왔음에도 민중들은 평화, 평등, 연대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마음 깊은 곳에서 꿈꿔왔다. 그리고 그 열망을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으로 분출시켜왔다. 정치가 국민을 속이는 세상에서 새 시대에 대한 염원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피어나고 있었다. 노무현은 시민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접혀 있던 이상을 그들의 눈앞에 펼쳐 보였을 뿐이다.  




2000년 16대 총선 강서구 지역 선거에서 노무현은 떨어졌다. 이 선거는 진 싸움이었을까? 사람들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편한 길 대신 자갈길을 택한 노무현의 행보에 주목했다. 권력 싸움터인 정치판에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정치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밥그릇이 아닌 가치에 목숨을 거는 이해하기 힘든 정치인의 행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이한 궤적을 그린다. 그는 이년 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곱씹고 있다. 그가 남긴 정신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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