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간은 강철이 아니기에

by 쓰는 사람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리고, 쉽게 상처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원래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화력이 떨어졌다. 식사후 명치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일이 늘었다. 살이 빠졌다. 아프기 전 173센치의 키에 57키로였던 체중은 54키로로, 다시 51키로로 줄었다. 입던 바지는 허수아비가 걸친 것처럼 헐렁해졌다. 건강은 미세한 균열사이로 물이 새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나빠졌다. 끼니마다 양배추와 브로컬리를 쪄먹었다. 청국장과 된장국도 자주 먹었다. 원활한 소화를 위해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시간 반씩 강변로를 걸었다. 하지만 한번 약해진 위장기능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건강카페에서 배지압에 관한 글을 읽었다. 자연요법으로 중증 간경화를 극복한 사람이 게시한 글이었다. 글의 요지는 이랬다.


'아기들의 배는 눌러보면 말랑말랑하다. 누워서 배를 눌렀을 때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진다면 건강이 나쁜 사람이다. 이를 냉적이라고 하는데 해로운 생활습관탓에 장기가 딱딱하게 굳어 기혈순환에 지장을 주는 것이다. 마사지와 자극으로 굳은 장기를 풀어주면 오장육부가 활성화된다.'


글쓴이는 농구공 위에 복부를 대고 엎드려서 굳어진 장기를 지압했다. 매일 한시간씩 6개월 넘게 이 요법을 실천하면서 간경화 회복에 큰 도움을 받았다 했다. 농구공으로 딱딱한 냉적을 풀어내려하면 통증이 만만치 않지만 아무리 아파도 병원갈 일은 없으니 걱정 말라고 적혀 있었다. 내겐 이 건강법이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배를 눌러보면 차돌처럼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졌기 때문이다.


지압을 하고 있으면 이따금 하체쪽으로 뜨거운 열기가 내려가는 느낌이 났다. 막힌 기열이 뚤리면서 경험하는 현상이라 했다.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군대 후임들에게 지나치게 열심인 나는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당연히 배지압도 열심히 했다. 농구공위에 엎드려 있으면 고통이 상당했다.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 냉적이 풀어지면서 발생하는 당연한 통증이라 여겼다. 배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농구공으로 지압하는 건강법에 문제가 발생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배지압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난 즈음부터 소화기능이 더 떨어졌단 걸 자각했다. 처음엔 음식때문이라 생각하고 음식을 가려먹었다. 하지만 음식은 문제가아니란 걸 곧 알게 됐다. 무얼 먹어도 체했기 때문이다.


배지압 관련 글에 달린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을 전직 부사관출신으로 소개했다. 완전군장을 한 채로 100키로미터를 행군할만큼 끈기가 강한 사람이라 했다. 건강회복을 위해 무지막지한 고통을 억지로 견디며 2개월가량 농구공배지압을 했고, 죽음에 가까워질만큼 몸상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배지압을 그만뒀다 했다. 몸상태가 건강한 사람은 강한 자극이 막힌 냉적을 뚫어내는데 쓰이지만 배지압을 견딜 수 없을만큼 허약해진 사람은 가한 자극이 그대로 냉적으로 쌓인다했다. 댓글을 읽고서는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먹을 때마다 체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목숨을 이어가려면 무언가를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체할때면 타는듯한 압박감이 명치를 죄어온다. 온 몸의 피가 흐르지않고 멈추는 것 같다. 숨쉬기가 어려워 숨을 거푸 몰아쉰다. 몸안에는 고통이 가득한데 피하거나 도망칠 곳은 없다. 한번 체하면 두시간정도는 어떠한 생산적인 활동도 할 수 없다. 안절부절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른다. 고통이 몸에서 빠져나갈때까지 그저 기다린다. 책상을 붙잡고, 때로는 벽에 기대어 버틴다. 아플 때의 시간은 고무줄처럼 길게 길게 늘어난다. 끼니때가 다시 찾아온다. 불안한 마음으로 절망을 씹어 꾸역꾸역 삼킨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내일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삶은 고통이다. 살아가는 일은 고통을 견디는 일이다.


식사량을 조절해야 했다. 조금만 많이 먹어도 곧장 체해버렸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작은 유아용 밥그릇을 샀다. 그릇 내부 2/3 지점에 귀여운 꼬마애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먹으면 체했다. 꼬마애 얼굴까지만 밥을 담으면 체하지 않았다. 어린이용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백오십번넘게 씹고서야 삼켰다. 취사병처럼 끼니때마다 식사일지를 적었다.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어떤 반찬을 먹었는지 체크해 안전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소,돼지고기를 먹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통닭도 라면도 이미 오래전부터 먹지 않고 있었다. 콩자반을 먹고 체했을때는 이해할 수 있었다. 콩자반은 딱딱한 음식이니까. 잘게 썬 당근을 볶아먹고 체했을 때는 더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매번 체했고 살이 빠졌지만 식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먹지 못하는 만큼 더욱 음식을 갈망하게 되었다. 식사때마다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났다. 적은 영양분이라도 더 확보해두려는 굶주린 식욕과 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싸웠다. 스스로를 절제해 가까스로 체하지 않을 때도 있지었만 밥 한숫갈, 반찬 한젓가락의 유혹에 무너질때면 보란 듯이 체했다.


체중은 뚝뚝 떨어졌다. 50키로대에서 무너진 체중은 48키로, 45키로를 거쳐 40키로가 되었다. 예전에 어느 여자 아이돌 가수의 체중이 48kg이란 걸 보고 비정상적인 몸매를 강요하는 천박한 문화를 못마땅해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연예기획사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 여자 가수보다 더 가벼운 성인 남성이 되었다. 체중계에 올라서는 일이 두려웠다. 나치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작은 빵조각과 묽은 수프가 전부였다. 영하 20도의 추위에서 10시간 넘게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수감자들은 막대기처럼 말라갔다. 빅터 프랭클은 자신과 동료 수감자들의 신체변화, 심리작용을 기억해두었다 수용소에서 나온 후 이 책을 썼다. 나는 이 책에 쓰여진 비참한 이야기들이 사실이었단 걸 내 육체를 통해 재확인했다.


체중이 일정치 이하로 내려간 후 움직이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다. 몸의 근육이 모조리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일어서거나 걸음을 내딛는 일이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처럼 힘들었다. 씻거나 외출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남포동역에서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남들은 반팔을 입고도 땀을 흘리는 더운 날씨에 나는 잠바를 입고도 으슬으슬 한기를 느꼈다. 깡마른 내모습을 염려하는 그들에게 '사람 목숨은 의외로 끈질겨서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몸이 약해져서 그들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없었다. 저 앞으로 멀어져가는 그들이 뒤돌아볼때마다 나는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지하도에서 지상으로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난간을 두손으로 붙들고 몸을 끌어올리다시피 하며 한칸씩 조심조심 계단을 올랐다. 고작 두 칸 남짓한 계단이 왜 그토록 수감자들을 괴롭게 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됐다. 근육이 모두 사라져버린 뒤 내장기관이 스스로의 몸을 소화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트에 내 나이와 연도를 쭉 적어보았다. 2012년 - 28세, 2013년 - 29세 ... 2018 - 34세... 만약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대로라면,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몸이 낫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이대로 낙오자가 되고 마는걸까.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3년을 보냈다.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나는 나만의 수용소에서 나갈수 있을까?


주말이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는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괜스레 죄책감이 느껴져 청소를 해보기로 했다. 몸에 힘이 없어 걸래질조차 쉽지 않았다. 기어다니며 바닥을 훔치는데 숨이 차고 몸이 기우뚱거렸다. 순간 팔에 힘이 풀려 미끄러졌다. 냉장고에 머리를 심하게 찧었다. 통증이 느껴지자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웠다. 내겐 왜 평범한 삶이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미라같은 몸으로 연명하는 삶이 지긋지긋했다. 통증과 무기력과 끝없는 인내로 점철된 생활에 환멸이 났다.


고개를 젖혀 옆머리로 냉장고를 힘껏 박았다. 꿍! 소리가 났다. 눈을 부릅뜬 채 머리로 냉장고를 받고 또 받았다. 희망이고, 끈기고, 노력이고, 의지고 모두 개소리 같았다. 내게는 그저 비참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모든게 끝장나버렸으면 했다. 꾹꾹 눌러담아두었던 한탄이 목구멍에서 터져나오려 했다. 방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설움이 폭발하듯 울음이 터져나왔다. 바닥에 퍼질러앉아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펑펑 울었다. 나는 그저 힘들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버텨보려 애썼지만 삶은 내게 지나치게 버거웠다. 옆방에서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비명같은 울음소리. 엄마의 울음에는 왜 나의 그것보다 훨씬 무겁고 짙은 비애가 담겨있는걸까. 나는 그날이후로 엄마가 있을 때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픈동안 자주 울었다. 몸상태가 나빠진체로 긴 시간을 견디다보면 가슴속에 응어리가 조금씩 쌓여간다. 한이 쌓이고 쌓여 목까지 가득 차오르면 어느 순간 울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가족들이 모두 일하러 나간 쓸쓸한 아파트나 인적이 드문 외각도로 산책로는 울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불행의 특징은 오래오래 이어진다는 것이다. 긴 불행을 견디는 데에는 의지, 끈기, 인내 같은 단어들이 필요하다.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갈때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하는 노력이 상황을 개선시키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주저앉으려는 자신을 설득해야 하고 힘내라고 격려해야 한다. 때로는 이를 악물고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고통과 오랫동안 싸우다보면 의지는 바닥을 드러낸다. 팔다리에선 힘이 빠진다. 한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주저앉아 울어야 한다. 고통과 싸우기를 멈추고 분노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때의 절망은 포기를 위한 절망이 아닌 다시 일어서기 위한 절망이다. 인간은 강철이 아니기에 힘든 삶을 인내하고 살아내는 과정에서 내부의 힘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 나는 다시 힘을 내고 희망을 가지기 위해 좌절할 필요가 있었다. 무한긍정으로만 무장한 사람은 쉽게 지쳐버린다.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 현실여건과 정직하게 대면하길 두려워한다. 기나긴 터널을 끝까지 걸어가려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엉엉 울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희망은 절망을 감싸고 있다. 바닥을 찍지 않으면 다시 올라가기 어려운 법이다. 눈물을 닦으며 펑펑 울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졌다. 정돈된 법당처럼 내면이 단순해졌다. 신기하게도 다시 살아갈 힘이 났다.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에서 난 다시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그 설득에 정교한 논리와 수준높은 사상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아주 단순하지만 이 말에 난 항상 설득당하곤 했다. 그래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어떻게든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도 죽는 쪽보단 사는 쪽이 더 이득이지 않느냐고.


아픈동안 수백번 울면서 생명을 이어가는데는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또한 필수적인 감정이란 걸 알게 되었다. 좌절은 어둡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꽤 기특한 녀석인 것이다. 슬픔은 인간이 생명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다. 슬픔은 배제하며 모른척 해야 할 감정이 아닌 삶의 내부로 끌어안아야 할 감정이다. 슬픔을 거치지 않고선 참된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절망해보지 않고선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막장까지 내려가 절망속에 오랫동안 있어본 자만이 진정한 희망의 의미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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