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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Feb 20. 2021

오백 원밖에 없는데...

5월이 되자 저녁6시가 넘어도 날이 환했다. 일을 마치고 시장통을 지나 걸어오는데 보행기를 밀고오던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총각, 혹시 돈 있으면 천원만 줄 수 있나?     


할머니는 미안한 듯 웃는 얼굴이었다. 입고있는 옷은 낡았지만 매무새가 단정했다.     


카드지갑을 뒤져봤지만 천원짜리는 없고 오백원짜리 하나만 있다.     


제가 천원짜리가 없네요...     

총각, 괜찮아요. 좋은 일 생기길 기원합니다...     


할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서 나도 따라 인사했다. 절에 다니는 분 같았다. 차에 올라탄 후 생각했다. 오백원이라도 드릴걸 그랬나, 오백 원은 드리기에 너무 애매한 액수 아닌가...    


  

기름을 채울 때가 돼서 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이전보다 기름값이 내렸다. 나는 경유값이 리터당 1100원대라고 좋아하며 주유기에 신용카드를 넣고 4만원을 입력했다. 바닥 저장고에서 뽑아올려진 기름이 주유기 호스를 거쳐 차로 콸콸콸콸 쏟아져 들어간다. 뷔페에서 배가 부른데도 돼지갈비며 피자를 억지로 우겨넣을 때처럼 꾸역꾸역 기름을 채운다. 미세먼지가 다량 배출되는 2003년산 5등급 경유차에 기름값이 싸다고 신나하며 34리터 기름을 채운다. 살아가는게 죄를 짓는 것 같다. 매일 죄지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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