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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un 08. 2021

닭과 산양과 나


양산으로 이사 온 3월, 처음 한 일은 가축을 돌보는 일이었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러 모모의 농장에 들렀다. 차양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농장의 나무계단으로 내려가면 좌측에 닭이 스무 마리 남짓 사는 닭장이 있고 그 옆으로 산양 두 마리가 사는 우리가 붙어있다. 닭장은 가로 3m, 세로 3m , 산양 우리는 세로 5m, 가로 20m 크기다. 닭장 외벽에 세워둔 장독대에 닭모이와 산양이 먹을 비육사료를 채워둔다. 나무선반에 넣어둔 알파파(산양이 먹는 마른풀)는 비에 젖지 않게 갑바천으로 잘 덮어둬야 한다. 까탈스러운 산양은 비에 젖은 알파파는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축들은 항상 굶주린 듯 보였다. 보통 오전 8시, 오후 4시쯤 농장에 들렀는데 조금만 늦어도 산양이 구슬프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르는 사람이 그 절박한 울음을 들었다면 내가 산양을 때리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로서는 하루 두 번의 식사가 일상의 가장 큰 낙일 것이다. 내가 주는 먹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전부이기도 하다. 배고픔을 해결하려면 소리쳐서 나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움매웨애애켁켁~!!, 움매웨애액켁켁~!!(야, 신참! 내 진짜 배고프다고! 내가 이렇게 소리까지 질러야겠나!(경상도 버전))”     


닭들은 먹이를 주러 가면 내가 우리 바깥에 있는데도 철망 안쪽에서 나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럴 때면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된 기분이다. 내가 모이를 들고 닭장 안으로 들어서면 흥분이 더욱 고조된다. 대형교회의 유명 목사가 설교의 클라이맥스에서 ‘믿씹니까!!??’를 외치고 수천 명이 ‘믿씹니다!!’를 연호할 때와 비슷한 열광이 네 평 닭장을 가득 채운다. 닭장에는 천장에 줄을 연결해 바닥에서 약간 띄워지게 설치한 납작한 원형 먹이통 3개가 달려있다. 양 쪽 두 개에는 모이를 붓고 중간 통에는 물을 채운다. 모이를 붓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들의 목사가 아니다. 그저 먹이통 가는 길을 막는 성가신 녀석일 뿐이다. 수십 마리의 닭이 동그란 먹이통을 삥 둘러싸고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 먹는다. 닭들은 매 끼니를 인생의 마지막 식사처럼 경건하게 먹는다. 늘 노트북으로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며 심드렁하게 밥을 먹는 나와는 딴판이다.


모이가 평소의 식사라면 상병씨 집의 음식물 찌꺼기는 특식이다. 소금기 있는 음식을 가축에게 먹이면 안 되다고 한다. 설거짓물에 고춧가루와 소금기가 말갛게 씻겨나간 개수대의 음식물은 모았다 닭에게 준다. 배추이파리, 수박껍질, 밥알, 양파껍질... 닭들은 뭐든 잘 먹는다. 다싯물 내고 남은 멸치에 환장하고 라면 면발앞에 이성을 잃는다. 주는대로 잘 먹는 논산훈련소 훈련병과 비슷하다. 언젠가 생크림 케이크가 섞여 있던 음식물을 던져주었을 때 닭들은 희번덕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다. 0.5초가 채 지나기 전에 케이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닭장 안쪽에 암탉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합판으로 네모난 부화장을 만들고 짚을 깔았다. 암탉 세네 마리가 앉을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닭들은 대게 그곳에 알을 낳는다. 암탉은 자기가 낳은 알을 품기도 하고, 다른 닭이 낳은 알을 대신 품기도 한다. 보통 두세 마리 정도가 알을 품고 있는데 알을 꺼내려하면 눈을 부릅뜨고 손을 쫀다. 작은 기척만 느껴도 도망갈 만큼 겁 많은 녀석들이 이때는 엄청 사납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며칠 지나자 요령이 생겼다.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의 목 뒤로 몰래 손을 뻗어 뒷덜미를 잡는다. 놀란 암탉이 날갯죽지를 퍼덕이며 꽥꽥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을 부화장에서 끄집어낸다. 알은 딸기 담을 때 쓰는 갈색 트레이에 담는다.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달걀이라 따뜻하다. 막 낳은 따뜻한 달걀을 만질 때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오전에는 8개에서 10개, 저녁에는 4개에서 5개 정도의 알이 나온다. 산란닭이 아닌 토종닭이 낳아서 알 크기는 다소 작지만 항생제와 살충제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달걀이다.     


모이를 줄 때는 닭장 문을 열자마자 재빨리 들어가 문을 닫아야 한다. 닭이 닭장을 탈출하면 혼자서는 수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탈출한 닭은 닭장 바로 앞의 구민샘 텃밭의 채소를 훔쳐먹거나 닭장으로 돌아가려 닭장 주위를 맴도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닭을 쫓았다니며 짜증을 냈다. 닭은 워낙 재빨라서 혼자서는 잡을 수 없고, 누군가 한 명이 닭을 몰면 다른 한 명은 닭장 문을 열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닭이 탈출할 때마다 아이든 어른이든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나는 양이 착하고 순한 줄만 알았다. 내가 그림책과 만화영화에서 봤던 양은 얌전하게 풀을 뜯고 목자와 양치기 개가 이끄는 대로 유순하게 따라다녔다. 내가 알고 있던 가장 불량한 양은 기껏해야 ‘길 잃은 양’일 뿐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산양(엄동이와 꽃순이)들은 내가 가진 ‘양’에 대한 이미지를 산산조각으로 깨부셨다. “너는 너무 사람이 좋아서 탈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고민이라면,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에 심성이 너무 유약하다고 느껴진다면 산양을 키워보길 권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악덕 사채업자처럼 포악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산양에겐 알파파와 비육사료를 섞어서 준다. 비육사료는 소, 돼지 등 포유류 가축을 위한 사료인데 겉보기에는 콘푸레이크 초코맛처럼 생겼다. 산양들이 씹어먹으면 와삭와삭 소리가 난다.(씹는 소리가 왠지 맛있게 들려서 이따금씩 ‘한번 먹어볼까’하는 유혹에 시달렸다.) 알파파는 햇볕에 바싹 말린 건초다. 압력을 가해서 상자처럼 네모난 모양으로 압축해 놓았는데 뜯어낼 때마다 마른 먼지가 풀풀 날렸다. 산양들은 알파파보다 비육사료를 좋아했는데 바닥 아래쪽에 깔린 비육사료를 먼저 먹으려고 통에 고개를 처박고 흔들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면 이따금씩 통이 뒤집혀 먹이가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산양은 미식평론가만큼이나 먹이에 까탈스럽다. 바닥에 떨어진 먹이는 먹지 않는다. 아무 데나 똥오줌을 싸면서 자신의 분비물이 묻은 먹이는 먹지 않는다. 가끔씩 먹이통에 똥을 싸는데 그 안에 든 사료는 당연히 먹지 않는다. 먹이통에 오전에 줬던 깨끗한 사료가 반 넘게 남아있어도 오후가 되면 먹지 않는다. 자신이 로마 공화정의 귀족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걸까? 산양 두 마리를 키우려면 한 달에 15000원짜리 알파파 3단과 9000원짜리 비육사료 두 포대가 필요하다. 차 타고 농협까지 가서 사 온 비싼 먹이를 함부로 낭비하는 걸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한 번은 상병씨에 바싹 마른 알파파 여섯 단을 구해다 쌓아 놓았는데 꽃순이가 그곳에 얼쩡거리다가 오줌을 갈겼다. 꽃순이는 두 달간 그 알파파를 단 한 오라기도 먹지 않았다. 상병 씨는 생명평화운동을 하지만 가끔 버럭 화를 내거나 난폭운전을 할 때가 있는데 어쩌면 2년간 산양을 키우며 하도 맘고생을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상병 씨가 산양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김수환 추기경만큼이나 너그러운 심성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어 어둑해지면 먹이를 다 먹은 닭들이 닭장에 있는 횃대로 올라간다. 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닭은 밤눈이 어두워 밤이 되면 거의 보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꽃순이가 산양 우리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쳐다본다. 동물들은 늘 이렇게 밖에서 밤을 맞는다. 농장 위의 검푸른 하늘 위로 노란 별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나는 달걀이 든 트레이를 상병씨 집으로 옮겨둔 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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