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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ul 13. 2021

응급실에서 보낸 16시간(1)

 

금요일 오후, 단체에서 퇴근한 나는 B형 간염약을 처방받으러 내과에 들렀다. 내 몸을 봐주는 의사선생님은 30대 중반의 인상좋은 사내다. 늘 웃는 낯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조곤조곤 말해준다. 체온을 재 본 선생님이 말했다.     


“37.9도...체온이 너무 높은데요?”

“아, 제가 햇볕에 달궈진 차를 타고 와서 그래요”

“최근에 몸상태는 어떤가요?”

“한 달 전쯤 피를 한 모금 토한 적이 있는데, 이후에는 가래에 피가 조금씩 섞여나오는 정도예요. 일상생활 할 때 좀 무기력하고 피곤해요.”   

“최근에 체중도 빠졌다고 했죠?”

“네, 3-4키로는 빠진 것 같아요.”     


15분후에 다시 재 본 체온은 여전히 높았다. 선생님은 내 증상이 결핵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소견서를 써주며 가능하다면 곧장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보길 권했다. 결핵이라면 영양상태가 나쁜 북한사람들이 많이 걸린다는 병 아닌가? 갑작스럽게 결핵이란 얘기를 들으니 당황스럽고 막막했다. 내과에서 나와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빨리 다녀와 쉬고싶은 마음에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양산대병원으로 향했다.     


위아래로 흰색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병원 직원이 체온을 쟀다. 당일 방문이라 응급실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응급실 입구는 외부로 개방돼 있었고 조명이 어두침침했다.맞은 편 배전설비에서는 거슬리는 소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외부도로로 간간이 구급차가 환자를 실어날랐다. 대기실도 지하주차장도 아닌 애매한 공간은 매연으로 공기가 탁했다. 간간이 간호사가 와서 증상을 묻고, 팔에 수액을 연결하고, 주사기로 피를 뽑았다. 얇고 길쭉한 통을 주며 가래를 받으라고 했다. 휴대전화 메모장에 글을 쓰며 상황을 정리했다.     


최근 몇 달간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안그래도 깡마른 몸이 몇 달새 4키로가 빠졌다속이 더부룩한게 소화가 잘 안됐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얼굴 여기저기에 여드름이 났다매일 아침 가래를 뱉으면 피가 섞여 나왔다아침에 깨어보면 식은땀으로 이불이 축축했고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도 오한이 느껴져 5월이 되었는데도 내복을 입고 다녔다몸에 기력이 없어 이전보다 일상이 힘겹게 느껴졌다결핵에 걸려서 몸이 안좋았던 걸까?     

아니다나는 대학 졸업후 7년 동안 몸이 아팠다긴 시간 고생하며 알게 된 건 내 병이 단순히 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스스로의 성향을 부정하고 자학하면서사회적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려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몸은 서서히 망가져갔다나는 심리적인 문제가 있으면 꼭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내가 느끼는 괴로운 증상들어쩌면 간염과 결핵까지도 부수적인 증상일 뿐 핵심적인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방치하고 있는 마음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통유리 자동문으로 격리된 응급실 제일 안쪽의 침상을 혼자 쓰게 됐다. 방 안에만 있어야 한다며 소변통을 건넸다. 결핵의심환자라 감염을 막기 위해 그런 듯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조악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촬영실로 갔다. CT촬영을 위해 조영제를 주사하자 혈관으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빴다. 응급실로 돌아오자 간호사가 말했다.     


“내일 오전에 기관지 내시경 검사 하려면 오늘밤은 여기서 주무셔야 해요, 검사 받으려면 지금부터 아무것도 먹으면 안돼요. 그리고 보호자가 계셔야 해요.” 

“저 혼자 검사 받을 수 있는데요? 혼자서 받으면 안돼요?”

간호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보호자 없으면 검사 못받으세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 했는데 일이 커져버렸다. 할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별건 아니고 나 응급실에 있는데, 아파서 온 거 아니고 그냥 검사만 받으러 온 거야. 내일 오전에 검사 받으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된다는데 와줄 수 있어?”


엄마는 당황한 기색으로 알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낯선 잠자리, 환한 조명, 팔에 연결한 링겔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설핏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수십차례 반복했다. 간호사들이 밤 내내 수차례 병실로 들어와 체온을 쟀다. 새벽녘에는 간호사가 다가오기도 전에 미리 정신을 차리고 팔을 내밀기까지 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자 머리칼은 기름기로 떡져있고 볼이 움푹 패어 초췌해보이는 삼십대 중반의 사내가 있었다. 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버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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