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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Aug 02. 2024

1. '제대로 살기'와 객혈(2)

비결핵항산균 치료

기침과 객혈로 고생하면서도 약 복용을 미룬 건 내 신체증상이 단순한 몸의 문제만은 아니며 정신적인 부분과도 연관이 깊다고 여겨서였다. 


나는 십수 년간 요통, 관절통, 소화불량에 시달려왔다.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몸은 자꾸 아팠다. 병원치료나 민간요법으로 효과를 못 보던 차에 우연한 계기로 신체증상과 마음 상태를 연관 지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동안 겪은 각종 통증은 마음의 아픔과 혼란이 신체증상의 형태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특정 신체증상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파악하고 나서 불편한 증상이 사라지거나 경감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으며 마음의 아픔과 신체증상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몸이 아플 때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게 됐다. 


비결핵항산균폐질환은 대게 면역력이 약한 노년층에게서 나타난다. 30대 중반인 내가 비결핵항산균에 감염된 건 면역력이 형편없이 떨어져서이고, 이것은 내 마음 상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못하며, 매일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지도 못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란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니 그 혼란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난 '제대로 못 살고 있어서' 신체증상이 나타났다고 여겼으므로, 내 삶을 의미 있게, 충실하게, '제대로' 살아낸다면 몸 상태가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진료 때마다 간곡한 어조로 이제는 약 복용을 시작해야 한다고, 약을 안 먹고는 나아질 방법이 없다고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약 복용을 계속 미루었다. 나는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폐상태가 좋아지길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서도 그 '제대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납득할 만큼 명확한 생각이 없었다. 나의 '제대로'는 뚜렷하게 현실에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당위에 가까웠다.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은 하지만 하려 해도 잘 안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고, 자책하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출근 전에 한 컵 분량의 피를 토해내고, 출근해서도 화장실의 세면대를 온통 붉게 물들일 정도로 객혈을 했다. 물을 틀어 세면대를 씻어내며 더 이상 병원치료를 미룰 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결핵약 먹는 게 정말 싫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로 몸상태가 안 좋아진다는 건 비결핵항산균이 폐에 점점 퍼져 상태가 악화되고 있단 걸 뜻할 것이다. 심리적인 이유로 면역력이 약화돼 비결핵항산균에 감염됐다 해도, 이것이 심리적인 방식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이제는 결핵약을 복용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피를 하도 토하다 보니 겁도 났다.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가방에 세면도구와 속옷, 노트북을 챙겼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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