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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ul 25. 2024

1.'제대로 살기'와 객혈(1)

비결핵항산균 치료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명치 부분이 불편했다. 누워서 캑캑 기침을 하는데 목구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가래인 줄 알고 머리맡의 휴지를 뜯어 뱉어냈는데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보다 많은 양이 울컥 올라와 서둘러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뱉어냈다. 변기물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든다. 기침할 때마다 목구멍에서 피가 울컥울컥 솥아 올라온다. 한참이 지나서야 기침이 멎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되뇌며 세면대와 변기 여기저기 튄 피를 씻어냈다. 방으로 돌아가보니 피에 젖은 휴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2023년 1월 1일. 피를 토하면서 새해를 맞았다.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진단을 받은 건 1년 반 전이었다. 간염 약을 타러 동네 병원에 들렀는데 의사가 체온이 정상보다 높다고 했다. 최근 몸상태에 대해 몇 가지를 묻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얼떨결에 병원에 입원해 피검사, CT검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결핵이 의심됐는데 검사를 해보니 비결핵항산균폐질환으로 판명됐다. 비결핵항산균은 수돗물, 흙 등 일상적인 환경에서 발견되는 균이다. 결핵과 유사한 증상(발열, 기침, 체중감소, 객혈)을 보이긴 하나 결핵과 달리 전염성은 없다. 


결핵균은 생명력이 하도 끈질겨서 항생제를 6개월에서 1년 반까지 장기간 복용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독한 항생제를 몸에 들이부어 결핵균을 박멸하는 것이다. 결핵치료에 쓰이는 항생제는 하도 독해서 간, 신장, 위장, 안구 등 신체장기에 부담을 준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 피로를 달고 살아야 하고 설사, 피부가려움, 시력악화 등 온갖 부작용이 따라온다. 약 먹는 걸 자주 빼먹거나 복용을 중단해서 내성이 생기면 훨씬 독한 약을 먹어야 해서 힘들더라도 약을 빼먹지 않고 먹는 게 치료의 핵심이다.


비결핵항산균은 전용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서인지 결핵과 거의 똑같은 약으로 치료한다. 결핵치료에 쓰이는 항생제에 비결핵항산균도 반응하기 때문인 듯했다. 결핵은 치료기간 동안 약을 잘 복용하면 재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비결핵항산균은 완치율이 30-60% 남짓인 데다, 재발률이 30%나 된다. 괴로움을 참으며 장시간 약을 복용해도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 환자들을 낙담시킨다.


비결핵항산균이 발견되었다고 무조건 약을 먹는 건 아니다. 병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주기적으로 경과를 지켜보며 약 복용여부를 결정한다. 내 병세를 지켜보던 의사는 6개월, 1년이 지나며 검사결과가 점점 안 좋게 나오자 약 복용을 권했다. 


예전에 일주일 정도였지만 결핵약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몇 끼 굶은 것처럼 몸에 힘이 없었다. 여덟 시간 넘게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회사에선 모니터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독한 약 때문인지 장에 난리가 나서 하루에 예닐곱 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이런 약을 2년 정도 먹으면 비결핵항산균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허약해서 간염, 요통,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결핵약 부작용까지 더해지면 인생이 너무 암울해질 것 같았다. 내심 스스로가 병세가 악화되지 않는 축복(?) 받은 집단에 속하기를 바라며 계속 약복용을 미루었다.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진단을 받은 지 1년 6개월, 몸상태는 이전보다 나빠졌다. 수시로 잔기침이 나왔다. 아침마다 기침하고 가래를 뱉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따금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쓴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가시질 않았고 자꾸 눈이 감겼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살이 더 빠져서 체중이 오십 킬로 초반대까지 내려갔다. 몸의 기력도 시원찮았지만 뭔가를 해낼 마음의 기력도 없었다. 업무든, 글쓰기든, 책 읽기든 뭔가를 진득하게 붙잡고 있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살아선 안된다고 자책하면서도 정작 뭔가를 붙잡고 늘어질 힘은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 채로 답답해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 번은 오한이 들린 상태로 출근을 했다. 기온은 영하인데 몸은 으슬으슬하고 허리까지 아프니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무릎담요를 덮고 전기난로를 쬐도 한기가 가시질 않았다. 그날은 저녁때 내가 진행해야 하는 모임이 있어 아픈 내색을 안 하고 자리를 지켰다. 모임을 마치고 덜덜 떨며 간신히 집에 도착했을 때 왠지 서러운 마음에 혼자서 훌쩍훌쩍 울었다.


이 무렵에는 사는 게 참 고되게 느껴졌다. 내게 삶은 견디는 것, 참는 것, 자꾸 일어나는 나쁜 일을 간신히 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가며 상황을 개선해보려 해도 아픈 몸의 굴레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한다. 이전에는 서너 달에 한 번씩 피 한 모금 정도 뱉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연초에 많은 피를 토한 이후로 객혈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객혈양도 늘었다. 한 번은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객혈을 했다. 참으려 해도 자꾸 기침이 터져 나와서 입에 대고 있던 휴지가 피로 축축해졌다. 내 상황이 꿈을 꾸는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어떻게 헤쳐나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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