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는 중입니다, 딸로서

by 이숨



태어날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든 감정은 기쁨이나 신기함보다는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막연히 아들이라 생각했다.

태몽에 나온 남자아이, 친정아버지가 보고 온 자녀 운세.

되돌아보면 나름의 징후는 여러 가지였다.

껍질 깎기 귀찮아서 과일은 귤만 겨우 손대던 과거와는 딴판으로 제철 과일을 골라담고,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는 있으면 먹는 수준으로 변했다.

푸른 뱀의 해라 배냇가운은 청록색으로 준비했지만 정작 눈에 밟히는 건 레이스 보넷과 딸기 무늬 모자였다.

막연히 ‘사춘기 아들과 대화하는 법‘같은 유튜브를 검색하곤 했다. 이제 읽는 책은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로 바뀌었다.


요즘은 한 명의 딸로서, 딸을 낳았던 엄마를 더 자주 생각한다.

두어 번 출혈은 있었으나 다행히 크게 병원 찾을 일 없이 임신 기간을 넘겨가는 나와 달리

엄마는 첫 아이를 품고서 요추 디스크에 걸리고, 막달까지 입덧을 하고, 출산하기도 전부터 손발목이 너덜거릴 정도로 관절이 나빠졌다. 그러고도 엄마는 동생 둘을 더 낳았다.

서로에게 첫 사람이었던 나와 엄마. 엄마에게 나라는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출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가진통조차 안 겪어 보고서 막연히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만 높은 자식에게

엄마는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을 잘 살피라‘고 에둘러 말하곤 한다.


흔히들 재미로 말하는 딸맘과 아들맘의 차이란 뭘까?

딸맘으로서 드는 생각이란 ‘딸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가 나’라는 것이다. 그 사실이 고스란히 부담이자 책임으로 다가온다.

자녀로서,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보아 오며 느꼈던 여러 감정의 층위를 내 딸도 나에게 느끼겠지.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같은 부모가 될 생각은 없다.

자녀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하는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목표 또한 자립하는 인간임은 물론이고.


좋은 엄마가 되려면 정보의 파도 속에서 눈을 뜨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심지가 굳지 못한 것을 나름의 단점으로 생각해 왔기에 정보가 정말 옳은지 판별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든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금방 휩쓸려 떠밀리겠다는 경각심이 임신 기간 내내 나를 지배했다. 앞으로는 더욱 심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흔든다고 신나서 앞서 뛰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요즘은 ‘어떤 딸이 태어날까’보다 ‘어떤 엄마가 될까’를 더 자주 생각한다.


임신은 단지 아이를 맞이하는 준비 기간이 아니다.

삶의 방향, 타고난 나의 기질, 오래 묵은 생각의 습관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이제까지 외면하거나 미뤄두었던 마음의 여러 조각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아직 딸을 만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매일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한 생명을 품는 시간이 엄마에게 주는 가장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