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기를 넘긴 어느 날부터 눈앞이 조금씩 흐려졌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어딘가 미세하게 떠다니는 점과 선들이 계속해서 시야에 맺혔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면 날파리 같은 형상이 유영했다.
비문증.
노화로 인해 생기는 눈 속 유리체의 변형.
치료가 쉽지 않은 증상이고, 특히 임신 중이라면 더더욱 손쓸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호르몬의 변화, 순환의 저하, 다양한 생리적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기.
이 모든 것에 눈도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마냥 속수무책으로 있기엔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결국 다시 손을 움직였다.
한의사로서 내게 익숙한 지점들, 정명혈과 관골상혈을 손끝으로 느껴보았다.
눈과 연관된 혈자리를 부드럽게 누르며 따뜻하게 감싸듯 마사지를 시작했다.
임신 이후 원래 뜨겁던 손은 더 뜨거워졌다.
체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니 말초로 몰리는 열감도 커졌다.
처음엔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이 뜨거움이, 오히려 눈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몇 번씩 눈가를 감싸고 조용히 호흡을 고르며 마사지를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눈앞을 맴돌던 그 점과 선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처럼 맑고 투명한 시야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상에서 눈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정도가 되었다.
신체의 변화는 때로 당혹스럽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감각은 혼란스럽고 반응은 더디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내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나를 돌보는 일.
정확히 치료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지금의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쪽으로 마음을 옮겼다.
임신은 내게 수많은 제약을 안겨주었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무언가를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조율해가는 시간.
어쩌면 이 과정은 출산 이전에 찾아온 연습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마주할 더 많은 돌봄의 시간들을 준비하는 나만의 방식.
눈앞이 조금 흐려졌던 날들 덕분에 오히려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날파리가 사라지면서 나는 조금 더 선명하게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숨진료실]
- 정명혈: 눈의 피로, 충혈에 활용되는 경혈
- 관골상혈: 눈의 열을 내리고 안정감 유도
- 마사지 시 강한 압력보다 부드러운 온열 압박이 효과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