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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Jul 23. 2019

몸을 던지다

어쩌다, 수영

 생즉사 사즉생


  이 무슨 임진왜란 거북선 위에 서있는 듯한 소리인가 하겠지만 요즘 내 평영과 접영이 딱 그 모양이다. '평포자'들의 세계에서 자랑스럽게 외치자면 이제 평영으로 앞으로 부지런히 나가긴 나가는데(25미터를 몇 번의 킥에 나가는지는 여전히 비밀이다. 접영은 부지런히 '못' 나간다.) 내 평영을 본 록 쌤은 '세상에(맙소사).. 정말 여유 있는 수영이에요'라고 말했다. 언제는 물 위에서 버둥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하시더니 여유 있게 수영한다는 말이 욕인지 칭찬인지 해석하기 위해 한참 두뇌를 가동하는 와중에 록 쌤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수영 경기를 '경영'이라고 하잖아요. 지금 하시는 건 '경영'이 아니고 그냥 수영이에요. 남들보다 1초라도 빨리 가려는 의지가 하나도 없어요"


   아주 초급때 부터 내 고질적인 문제는 '호흡'이었다. 아가미가 없는 인류에게 수영의 호흡은 유선형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결함인데  물 속에서는 유독 깊이에 대한 공포와 살고자하는 생명 연장의 의지가 나를 덮쳐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숨을 쉴 틈이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빳빳이 쳐들거나 정지화면 처럼 숨을 아주아주 여유롭고 길게 쉬고 있었다.


  한산도 앞바다에 한심하게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병같은 내 몰골을 바라보며 록 쌤은 레인 저 끝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결연히 소리쳤다.


 "상체를 앞으로 던지세요옷!!!!”


  남들보다 빠른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무게 중심을 재빠르게 앞으로 옮겨 물 속으로 몸을 던져야했다. 개구리처럼 킥을 하기 전에 상체를 일으켜 재빨리 숨을 쉰 뒤 몸을 앞으로 던.져.라.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순간 수면 위로 언제 올라왔냐는 듯 몸을 물 속으로 던.져.라.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우리에게 물 속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공간이다. 조금이라도 숨을 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는 내 의지와 달리 한껏 공기 중으로 솟구쳐 올라 뻐끔뻐끔 마음껏 숨을 쉰다. 평영이나 접영이나 마찬가지다. 숨을 쉬겠다는 의지로 불필요하게 체공 시간을 오래 유지하는 그 순간 다리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숨을 쉬려는 욕심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버리고 역설적으로 다시 가라앉기 위해 물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질식할지도 모르는 물 속으로 일부러 뛰어들어야 한다. 록 쌤이 무호흡 접영과 킥 두 번+풀 한번의 평영 연습을 강조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적어도 하나는 버려야 한다. 수영도 그렇고 우리 사는 세상은 더더욱 그렇다. 아가미도 없는 열등한 인류 주제에 직장과 공부, 육아, 운동, 취미 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저글링하는 건 불가능이다. 숨 한 번 못 쉰다고, 뭐 하나 빠뜨린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왜 모든 걸 다 하면서, 어느 것 하나 잃지 않으려 하면서, 제 몸 하나 물 속으로 던질 줄 모르면서 빨리 빨리 앞으로만 나가려고 하는지. 욕심 부리며 버둥댈수록 서서히 가라앉는다.


록쌤은 제발 연습 좀 하라는 당부와 함께 이번 광주 대회에서 선수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음'을 좀 얻으라고 했다.


김서영 선수는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6위에 그쳤다. 나같은 수린이는 땅을 치며 또 메달을 아쉬워하지만 이미 연습량으로 따지면 평생 지구를 한바퀴쯤은 돌았을 법한 김 선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회는 없지만 기록은 아쉽다”



그는 분명 평영 구간부터 뒤쳐졌다. 하지만 나에겐 매 스트록 마다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온 몸을 물 속으로 던지는 모습만 보였다. 레인은 출발점과 결승점을 잇는 승부의 세계. 외롭고 푸른 직선의 세계.감히 기록과 메달을 아쉬워 할 자격은 후회 없이 몸을 앞으로 던지는 사람에게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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