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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Nov 06. 2019

거북이 수영클럽

어쩌다,수영

내 또래 친구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인류 8번째 불가사의.

 

'도대체 그 시절 우리네 엄마들은 왜 그렇게 '피아노'에 집착했던 것일까.'  


엄마는 나와 동생을 집에서 초등학교 여자 아이 걸음으로 오분 남짓 거리에 있는 상가 2층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방마다 자리 잡은 검은색 피아노. 학원 가방을 빼곡히 채운 체르니와 하농, 부르크뮐러 등 발음도 어려운 책들과 그 안에 그려진 음표들은 마치 나를 동화책 속에 나오는 피아노 치는 공주님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으나.....


사실 피아노 학원보다 미술학원에 더 끌렸던 나는 몇 달쯤 지나 나는 슬슬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 6개월이면 노란색 을지악보에 담긴 '마법의 성' 정도는 칠 줄 알았는데 하농이니 체르니니 사람 이름인지 도시 이름인지도 알 수 없는 이름이 붙은 책으로 한 시간 내내 손가락 연습만 하다 집에 돌아가는 날이 늘어났다. 피아노 앞 공주님은커녕 한 시간 수업 중 선생님을 대면하는 시간은 십분 남짓, 그나마 나머지 시간에는 선생님이 오기 전 '바를 정(正)' 자를 책에 표시해가며 같은 곡을 몇 번 연습했는지를 기록해야했다.


점점 대담해진 나는 급기야 피아노 가방에 만화책을 넣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오는 기색이 보이면 재빨리 가방에 만화책을 숨기고 피아노를 치는 척했다. 물론 악보 위에는 내 맘대로 갈겨쓴 바를 정자 대여섯 개가 공범인 양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그로부터 6년 간 피아노 학원에 꼬박꼬박 레슨비를 냈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을까 봐 만화책 얘기는 그 이후로도 비밀이었다.




나의 몇 안 되는 수영 친구 '광화문 돌고래' S를 만나면 우리는 신나게 수영 수다를 떨며 진도를 공유하곤 한다. 이제 수영 2년 차, 하늘을 나는 스타트는커녕 나는 여전히 자유형 물 잡기에서 헤매는 거북이 신세다. (평영과 접영은 록 쌤이 반쯤 포기한 상태. 눈물 없이는 설명이 어려우니 이쯤에서 생략하기로 하자) 나같이 느리디 느리게 배우는 사람들을 모아 '거북이 수영클럽'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S는 오늘도 혀를 차며 말한다. "아니 록쌤 수린이에게 너무 엘리트 수영교육 아니니. 진도가 너무 느린데?"


너무 느리다니... S야, 너무 느린 것보다 사실 더 많이 느리단다. 어떤 날은 자유 수영을 하는 한 시간 내내 킥판을 붙잡고 팔을 꺾어 돌리고 내리는 동작만 반복할 때도 있다. 호흡 때 들리는 머리를 교정하기 위해 사이드킥만 해보는 날도, 한 팔 접영으로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타이밍만 연습하는 날도 있다. 접영의 입출수 킥을 찰 때 여지없이 구부러지는 무릎을 교정하기 위해 풀부이를 끼고 씨름하는 날도 있다. 그렇게 한 시간 내내 '이상한' 수영만 하고 제대로 된 영법은 집에 가기 전에 단 한 바퀴만 돌아보고 가는 날도 있다. 다 록쌤의 숙제며 가이드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영에는 선생님의 눈을 속이고 나 자신을 속이는 '바를 정(正)' 자가 없기 때문이다. 록쌤은 오늘도 단호하게 말한다.


"근육이 잘못된 동작을 기억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가끔 내가 다닌 대학교의 수영장을 찾을 때면 교문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한껏 들뜬다. 통유리창을 자랑하는 수영장은 건물 전체가 20대의 싱그러움 인양 늘 반짝거린다. 물도 반짝거린다. 그 안에서 수영을 하는 후배들은 더 빛난다. 어떤 날은 쟁반보다도 더 큰 시계를 레인 앞에 두고 학생들이 숨이 턱에 차도록 훈련하는 모습을 운 좋게 지켜볼 수 있다. 나는 맨 끝 레인에 서서 그 친구들의 수영을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내가 정말로 부러웠던 건 그들의 청춘도, 빠른 속도도, 수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름방학도 아닌 그들의 근육이었다.


몸에 새겨진 '바를 정(正)'은 정직하다. 거기에는 어떤 타협도 없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보는 만화책 같은 기만도 없다. 메트로놈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는 그 친구들의 수영은 수백, 수천번 근육에 새긴 '바를 정(正)'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확인했다. 근육에 새긴 연습의 흔적이 인간의 몸을 오히려 더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그 친구들이 물속에서 마치 돌고래가 떼를 지어 질주하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기계처럼 반복한 고된 연습의 대가라는 것을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피아노 학원의 연습에 다 이유가 있었듯 록쌤의 숙제에는 다 이유가 있다.


초등학생이 고등 수학을 방학 단기 속성반에서 배운다는, 다른 언어권의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외국어까지 2개월 특강으로 마스터할 수 있다는 바야흐로 대 속성과 선행의 시대. 나는 오늘도 그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유유히 거슬러 '거북이 수영클럽'으로 향한다. 그 안에서 매일 분명 수영이 아닌 이상한 훈련을 반복하는 중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요령 없이 몸에 각인하는 일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모교 수영장에서 본 그 돌고래들의 접.배.평.자를 부디 예순에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커버이미지: mandypor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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