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일차, 성지순례의 시작점 루카(Lucca)로 향하다.
가방을 들쳐 메자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성지순례길 선배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배낭은 자기 몸의 10퍼센트 미만의 무게여야 걷기에 무리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열흘 남짓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겼는데도 왜 10kg에 육박하는 것인가. 발에 맞는 트레킹화는 준비할 새도 없어 족히 5년은 신은 나이키 운동화를 질질 끌고 집을 나섰다. 누가 봐도 도시를 벗어나면 초보 트레커의 티가 날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은 수도 없이 해보았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걷기만 하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참 어리숙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겁 없이 결단하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래 모르는 사람이 가장 용감하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는 무기력에 빠진 내 삶에 늘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만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여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름철 성지 순례길을 떠나면서 팔토시나 긴팔 티셔츠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포기해야 하나 싶을만큼 일광 화상을 입어 고생을 했는데 태닝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탈리아 태양의 무서움을 이번에 걸으면서 처음으로 느껴 보았다.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 오전 10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이었는데 벌써부터 햇볕은 정수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고 아스팔트의 열기는 반사판처럼 들들 끓어올랐다.
10kg 무게의 배낭을 메고, 이 열기를 감당하며 과연 200km를 걸을 수 있을까?
가방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걱정들이 나를 짓눌렀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성지순례길을 떠나겠노라고 이미 동네방네 큰소리는 뻥뻥 쳤고, 결단하자마자 기차와 첫째날의 숙소를 미리 결제 해두었으니 말이다. 급한 성격 탓에 일단 내지르고 보는 내 마음이 바뀔까봐 남편이 일사천리로 저지른 계략이었던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주말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가방의 무게에 못 이겨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대로 그 자리에 눌러 앉아 도저히 못 가겠다고 속으론 여섯 살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쓰고 있었으나 입 밖으론 차마 내뱉지 못했다. 한 번 가볼까? 툭하고 던진 남편의 말에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내가 달려들어 성급하게 떠나온 발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려운 마음 가득 기차에 올랐고 토스카나 구간의 출발지로 정한 루카(Lucca)에 도착했다.
루카(Lucca)는 우리에게 ‘라보엠’, ‘나비부인’,‘토스카’ 등으로 잘 알려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Pucini)의 고향이며, 16세기에 지어진 성벽 안으로 비밀스러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눈앞에 중세시대가 펼쳐지는 멋진 도시이다. 맛집이 특히 많고 크고 작은 음악회를 즐길 수 있으며, 북적북적한 관광지와는 다르게 소박한 멋이 있고 현지인들처럼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45개 구간 중 루카(Lucca)를 출발지로 정한 이유는 기차역이 있어 교통편이 좋았고, 루카 이후로 산지미냐노(San Gimignano), 시에나(Siena), 산미니아토(San Miniato) 같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소도시와 더불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발도르챠(Val D’orcia) 평원, 세계적인 와인 산지까지 아우르는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능선을 두 발로 직접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코스들이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얼마나 경이로울까! 한편으로는 풍성한 글감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루카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기차역 근처에 있는 여행자 센터에서 순례자 여권과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 토스카나 구간의 책자를 구매했고, 거리는 얼마인지, 앞으로 걸을 길은 어떤 컨디션인지, 어떤 마을들을 만나는지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와! 800m, 500m, 400m 목적지가 되는 마을들은 멋진 뷰를 자랑하는 만큼 역시나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었다. 만만치 않겠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남편은 우리가 설마 200km를 못 걷겠냐며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 의기양양하던 모습을 비디오로 생생하게 담아두었어야 했는데, 첫째날 부터 온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걷기 힘들어 울상이던 남편에게 보여주며 놀려먹었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이 얼마만에 가져보는 부부간의 건설적인 대화인가. 무엇보다 천천히 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말자 결의를 다졌다.
‘앞으로의 여정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건배 !’
어제 못잔 잠을 몰아서 자려고 맥주 두 잔을 연달아 들이켰다.
루카는 결혼 전에도 후에도 우리가 좋아해 몇 번이나 다녀간 도시였지만 이번엔 그저 긴 여정의 출발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멋진 성당들과 잘꾸며진 거리 보다도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 라는 간판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비아 프란치제나’는 중세시대에 교황청과 베드로의 무덤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순례길이었으며,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가 교황 요한 15세로부터 팔리움이라 불리는 견대를 받기 위해 오가는 길로 비아프란치제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비하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2017년 비아 프란치제나가 지나는 이탈리아 7개주(발레다 오스타, 리구리아, 피에몬테, 롬바르디아, 에밀리아 로마냐, 토스카나, 라치오) 를 지방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의정서에 서명을 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현재는 수많은 교구와 종교단체들이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소인 오스페달레(Ospedale)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7년을 살아도 이탈리아에 성지순례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 여행은 누구보다 많이 해봤다고 자부했지만 그저 잘 정비된 도시의 겉모습만 보고 그곳을 안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았을 뿐이었구나. 이번 순례길 여정을 통해 내가 몰랐던 실로 다양한 이탈리아를 경험할 수 있겠구나. 걱정에서 기대와 안도로 물든 첫째날 밤이었다.
무엇보다 옆에는 함께 걸어줄 남편이 있다.
‘-우리 잘 할 수 있겠지?’ 하고 묻자
‘-당연하지 오빠가 옆에 있잖아.’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남편 말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가 이번에도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기를 스스로가 순례자가 되어 삶을 돌아보고, 얽매고 있는 질문과 마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유튜브 이태리부부
https://www.youtube.com/watch?v=5h87rVd5j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