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탈리아 가이드 (였)지만, 코로나로 여행업의 불황이 장기화된 상황에 지금은 유튜브가 전업이 되었습니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고 구독자 숫자를 늘리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우리는 흔히 말하는 핵인싸도 재미있는 스타일도 아니고, 외모가 출중하지도 편집 기술이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구독자가 만 명이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핸드폰으로만 영상을 찍고 있는 투자 대비 가성비 최고의 유튜버인 셈입니다.
유튜브를 운영한 지 1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구독자가 겨우 천 명을 넘었는데, 유명 연예인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만 하면 별것 없는 일상만 찍어도 조회수와 구독자 숫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하기도 했지만 금방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우리가 유명한 연예인도 아닌데 누가 우리의 일상을 궁금해하겠어? 그렇다면 우리는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생각을 했지만 누가 봐주지 않는 일을 꾸준히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 치고 구독자나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채널 운영을 안 할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우리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노"라고 대답할 것 입니다. 요즘처럼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희소성이 있는 우리에게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활용하기만 하면 개인 브랜딩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개체가 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매개채가 반드시 유튜브여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브런치도 개인 브랜딩과 글쓰기, 출판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플랫폼이지만 꾸준한 글쓰기는 우리에게 영상을 찍는 것보다는 더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상보다도 글이 가지는 힘을 믿기 때문에 글쓰기도 놓지 않고 꾸준히 시도하여 각자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큰 욕심 없이 자극적인 영상도 하나 없이 꾸준히 활동한 덕분에 유튜브 구독자는 어느새 1만에 가까워졌고, 점차 우리의 일상을 궁금해해 주시는 진정한 팬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친김에 이탈리아 봉쇄 기간 동안 실시간 스트리밍도 매일 하루 한 시간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남편이 실시간 스트리밍을 매일 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반대 입장이었는데, 웬걸 요즘은 내가 더 즐기고 있습니다. 구독자 분들은 이탈리아에 친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좋고, 나는 60일에 가까운 봉쇄 기간 동안 남편 말고 다른 사람들과 매일 수다 떠는 느낌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유튜버가 일방적으로 올리는 영상만으로는 채워주지 못했던 "소통"이라는 연결고리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실시간 방송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매일 할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생기고 부부가 같은 채널을 운영하면서 성장 방향을 이야기하고 목표 설정을 하는 일은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최소한 멈춰있지는 않게 해 주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장보기 컨텐츠q스
어느 날에는 우리의 유튜브를 봐주신 밀라노의 한국 식품점 사장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 선물도 받았습니다.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응원해 주시고, 도움을 주실까? 사실 전혀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유튜브 수익이나 식료품 협찬은 지금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받고만은 못 사는 성격인지라 은혜를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는 희소성과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여행 정보와 더불어 현지의 상황들을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공유해 왔던 그 시간들이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빛을 발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그 위기가 그리고 그 위기를 통한 기회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연예인처럼 유명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인지도가 쌓이면 내가 원하는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하게 될 수도 있고 본업 이외의 분야로도 얼마든지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확신에 가깝게 듭니다.
밀라노 한국 식품점 사장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월 4일을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봉쇄 완화(완화인 듯 완화 아닌)를 결정하였고, 이제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대중교통도 타고 마음껏 외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봉쇄 완화 첫날에는 거의 두 달만에 30분 이상을 걸었더니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고,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바(BAR)에서 아침에 남이 내려준 카푸치노를 마시고 오랜만에 가슴속 깊숙이서 뿜어져 나오는 탄성을 내질렀는데 카푸치노와 브리오쉐가 평범한 일상이었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습니다. "고작 두 달 못 먹은 것가지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커피와 브리오쉐는 아침 식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지금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듯합니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뎌지겠지만 지금의 감정과 상황들을 최대한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해두어야겠습니다.
3월 10일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오고 3월 12일에 봉쇄가 시작되었으니 동네 구경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집에서 3분만 걸으면 예쁜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책로가 있는데 조금만 더 늦었으면 꽃구경도 못하고 봄을 통째로 삭제당할 뻔했지만 끝자락에라도 흐드러지게 핀 꽃을 맘껏 볼 수 있는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사실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 가족을 잃은 슬픔 등 전염병 이후의 상황들이 더 걱정되어 봉쇄 완화 정책이 아시아인인 나로서 좋으면서도 두려운 맘도 있었지만 밖으로 한 발짝 나와보니 원망은 길었지만 감사로 바뀌는 건 한순간일 수 있겠구나 싶은 희망도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