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초로기 치매에 걸린 줄 알았다

제발 더 늦지 않게 엄마를 만나게 해 주세요

by 이태리부부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청도는 '신천지' 때문에 그리고 이탈리아는 코로나 확진자가 세계 2위로 치솟아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 모두가 시끌벅적하던 시기 불효녀 딸이지만 그래도 청도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자주 전화를 드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횡설수설하면서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집 전화번호도 심지어 다음 주에 당신의 아들이 집에 오기로 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는 듯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당장 아빠에게 전화를 바꾸라고 하고 엄마가 치매인 것 같으니 병원에 가보셔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니 며칠 전부터 엄마의 이상증세를 느끼고 계시던 아빠도 월요일이 되면 바로 시내 병원에 가보겠노라고 하셨다.

내 엄마가 벌써 치매라니.. 아직 60세도 안된 젊은 나이에 치매라니... 지난주까진 멀쩡했는데 한국식품점에서 택배를 받고 너무 기뻐하는 딸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라면이라도 사 먹으라고 아빠 몰래 용돈도 보내주신 엄마였는데...


그날부터 계속 치매만 검색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치매를 검색하다 보니 요즘은 60세 미만, 아니 3-40대의 젊은 나이에도 치매환자가 많이 발생하는데 60세 미만 치매환자는 '초로기 치매' 라고 불린다고 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치매가 우리 엄마에게 왔다니! 이제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살만해졌다 싶었는데... 엄마가 치매라니.. 엄마가 불쌍해서 그리고 옆에서 더 고생하실 아빠 생각에,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16년 이탈리아 여행중 엄마, 남동생과 함께


우리 집은 청도 시골이라 동네 의원에서 시의 종합병원으로 그리고 대학병원까지 옮겨 다니며 엄마의 병명을 밝히는데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뇌종양이었다.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두(開頭) 후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전이성 뇌종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엄마는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하셨는데 이번엔 전이성 뇌종양 즉 뇌암이었다)


대구경북의 코로나 비상사태로 당장 수술 날짜를 잡기도 어려워 보였다. 이미 한 번의 암수술을 하신지 2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터라 면역력이 좋지 않은 엄마는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증상이 있어도 오랫동안 참아오신 것 같았다. 집 근처에 있는 큰 병원 '청도 대남병원'은 '신천지' 교주 이만희 형의 장례식이 있어 떠들썩했고, 당신께서 횡설수설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는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그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엄마의 종양이 이미 뇌의 4분의 1을 덮을 만큼 심각한 상태라고까지 했다. 그때까지 왜 참았냐고 엄마를 나무랄 수도 없었다. 이기적인 나는 아픈 엄마를 뒤로하고 나만 행복하자고 남의 나라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기에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수술을 하던 날 의사는 최악의 상황까지 꼼꼼히도 일러주었다고 했다.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동생도 힘들겠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한국에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고, 진짜 귀국을 하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최근 귀국자에게 정보도 묻고 대한항공에까지도 문의를 해두었지만 한국에 가도 2주간의 자가격리, 코로나로 인한 가족면회 불가 상황에 일단은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지켜보자 라고 비겁한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추스르며 엄마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4월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5월엔 엄마의 뇌수술까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참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결국 생사를 넘나드는 15시간의 수술을 하셨고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엄마와 겨우 영상통화를 했는데 울지 말아야지 하면서 엄마의 '나는 괜찮다, 오지 마라' 하는 말에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뭐가 자꾸 괜찮다는 건지. '뇌암'이 아니라 '괜찮다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마는 지금도 자꾸 괜찮다고만 하시는데 당신의 아픔보다도 자식 걱정이 더 앞선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이렇게 담담하게 엄마의 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지금 엄마는 수술 후 많이 회복하시고 매일 우리는 카카오톡이나 영상통화를 하면서 상을 나누고 있. 엄마와 평소에도 친구처럼 살갑게 지낼걸..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부모님은 자식이 어떻게 지내는지 영상으로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보실 수 있다게 되었다는 건데 유튜브를 통해 영상의 매력을 알게되면서 한국에 가면 부모님과의 추억도 꼭 영상으로 많이 담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모습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님의 목소리 그 생생한 모습들을 기록해서 나도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볼거다.



그나저나 늦가을에는 꼭 엄마를 만나러 가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망할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까 봐 두렵다. 이번 상황을 겪으면서 해외에 사는 자식은 이유를 불문하고 불효녀, 불효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생에 나는 절대 해외에 사는 딸로는 태어나지 않을 거다.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시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