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투어 가이드인 남편이 코로나로 백수가 된 지 6개월째가 되었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올해 유럽 여행은 힘들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아는 기정 사실화가 되면서 지금까지의 기간보다 앞으로 더 긴 시간을 백수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겠죠. 3월에 우리가 장기전이라고 생각했던 기간은 그래도 가을쯤이면 다시 조금씩 일은 할 수 있겠지 였는데, 이제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는데, 마치 희극 같은 우리의 여행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3월 26일, 이제 외출 금지 며칠째인지 세는 것도 의미가 없다. 예고되었던 4월 3일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장기전을 준비한다. 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인 것이다.
코로나 봉쇄 기간 중 3월 26일에 쓴 일기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https://brunch.co.kr/@italybubu/34
코로나가 장기전이 될 것을 받아들이면서 가장 먼저 우리는 그동안 묶어 두었던 (그리 크진 않지만 우리 기준에서는) 목돈인 적금과 주택 청약, 주식 대금을 모두 깼습니다. 당장 다음 달 월세 낼 현금이 없으면 너무 불안할 것 같기도 했고, 요즘 아무리 주식 시장이 좋다고 해도 위험 자산에 쉽게 투자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제발 이 힘든 시기를 부모님이나 금융권에 손 벌리지 않고 끝까지 잘 이겨내는 것! 이것은 정말 누구에게도 요청할 수도 털어놓을 수도 없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나이 30이 넘어 결혼까지 했는데 부모님에게 손벌리는 자식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끼리 헤쳐나가자 남편과 약속 했습니다. 그리고 장기전을 구체적으로 계획 했죠.
몫돈을 깨고 나니 앞으로 최소 몇 달은 여행하고 먹고살 자금이 마련되면서 우리는 더 열심히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한창 세계여행이 붐이었을 때 집 팔아 여행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우리가 지금 전재산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는 딱 그 생각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여행할 돈을 아껴서 몇 달을 더 버티는것 보다도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배팅 하기로 한것 입니다 )
집도 없고 딸린 자식도 없기 때문에(물론 돈도 없지만)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는 계획이 완성되면 바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유튜브 영상으로 함께 여행해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에 여행 비용이 일부 충당되고 있어서 점점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네요. 영상이나 글을 통해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여행 다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사실 저는 조금 두렵습니다.
앞으로 고정적인 수입 없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여행업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여행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2차 3차 파동이 또 오지 않을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언제쯤 마음 놓고 만나러 갈 수 있을지, 우리 집주인도 경제적으로 힘들어 집을 팔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이 시국에 또 새로운 집을 구하러 다녀야 할지, 언제까지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앞으로 우리가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구독자분들이 우리를 좋아해 줄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은 온전히 우리를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답사의 성격이 강합니다. 요즘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구독자분들과 여행을 같이 준비하고, 여행 중에는 사진과 영상으로 찍고, 여행이 끝나면 가공하여 우리 컨텐츠로 공유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으니까요. 여행보다는 일에 가깝겠네요. 그렇게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다 보면 정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우리가 여행을 공유하는 컨텐츠가 주로 글이었다면 요즘은 영상에 더 집중하는 편인데 글보다 영상으로 업로드했을 때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수입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매일 글쓰기를 결심하면서 글을 쓰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흘러 보냈던 그때 그 순간들 그리고 감정들을 글로 기록을 해두었으면 참 좋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글쓰기는 지금 당장 좋은 반응을 얻을 수는 없지만 그 행위 자체가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면서 반짝이는 영감과 새로운 호기심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리고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할 것 같은 영상과는 달리 글에는 나의 조금 못난 모습까지 몰래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솔직해지기도 합니다.
영상과 글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든 기록들이 훗날 우리에게 어떻게 기회로 다가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더 명확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꾸준히 기록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평소에는 무엇이 나에게 울림을 주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글을 쓰고 남기면 익숙한 것도 새롭게 해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과정에서 재미와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더 큰 만족감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한다. 한마디로 전보다 더 유능해지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살면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아름다운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기록은 순간의 감동을 영원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지금 함께 있는 이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어제와 달라진 나를 발견하는 것은 글을 쓰지 않는 일상에서는 얻기 힘든 짜릿한 경험이다. 이 경험이 나를 또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일단 오늘 한 줄 써봅시다 <김민태>
여행도 일상도 컨텐츠가 된 지금,
나는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온 촉각을 곤두세워 살아야겠다.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이 시기를 잘 이겨내기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