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다단계의 여왕이던 나는 왜 이탈리아에 왔을까?

티코에서 벤츠까지

by 이태리부부
26살 다단계의 여왕이던 나는 왜 이탈리아에 왔을까?


2012년 7월, 24살의 나는 운명처럼 만난 '메리케이'라는 미국 화장품 다단계를 시작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의 일이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네트워크 마케팅이지만 다단계라고 칭하겠다. 메리케이는 2019년 대한민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다단계가 사람을 꼬시고 가둬두고 나쁜 다단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다단계는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 조직의 특성인 목표와 성취 욕구 그리고 인간의 욕심 을 자극시키는, 내가 나를 괴롭히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단계를 하면서 빚을 많이 지기는 했지만 20대 때 누구나 하지 못하는 경험이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큰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다단계 비즈니스를 했던 것에 대해 한점 부끄러움도 없지만 그것이 자랑스럽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24살에 다단계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취업난 때문이었다. 지방의 인문계 대학을 졸업한 내가 가장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직업군중 하나가 바로 영업조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다단계는 월급쟁이들보다는 돈을 훨씬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고, 우연히 알게 된 메리케이라는 제품이 가격에 비해 월등히 좋았기 때문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덜컥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제품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어보자 경험 삼아 쉽게 시작했던 일이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비지니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소나타 차량을 비롯한 각종 프로모션 달성과 시니어 세일즈 디렉터라는 높은 직급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평균 연령이 40대 이상인 아줌마들 뿐인 화장품 영업 조직에 20대의 시니어 세일즈 디렉터(메리케이 조직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직급이었다.) 라니 게다가 1년에 100명도 안 되는 인원에게만 주어지는 차량 프로모션의 달성은 그야말로 핫이슈였다. 내 비즈니스를 하면서 전국으로 강의를 하러 얼마나 많이 불려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땐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겉모습은 우아한 백조였지만 물밑으로는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치고 있는 초라한 꼴이었다.



전국 방방곡곡 세일즈 우먼들에게 강의를 하러 다녔다.


장롱면허 소유자인 나는 차도 없이 높은 구두를 신고 뜨거운 여름에도 메리케이 세일즈 디렉터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투피스 유니폼을 차려입고 2년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비즈니스를 했다. 무거운 짐가방에 판매할 제품, 케어 제품을 이고 지고 방방곡곡 안 가본 곳 없이 열심히도 누볐다. 나이도 어린 데다가 차가 없다고 무시당할까 봐 차가 있는 척, 하나도 안 힘들고 즐거운 척, 행복한 척, 돈을 억수같이 버는 척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실적이 좋은 달도 있었지만 다단계의 특성상 팀빌딩이라고 부르는 팀원 모집도 많이 해야 하고 팀원 전체의 판매실적도 좋아야 하는데, 실적이 좋지 않으면 내 돈으로 물건을 내리는 날도 많았다.




나는 뚜벅이였기 때문에 메리케이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로모션들 중에서 자동차 프로모션이 가장 간절했다. 메리케이의 차량 프로모션은 실적에 따라 소나타-그렌저-벤츠 세 단계가 있는데, 지나다가 핑크색 벤츠나 그렌저 차량을 보았다면 그것은 메리케이 프로모션 달성자들이 회사에서 받는 차였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핑크색 벤츠를 탈까 싶지만 핑크 벤츠는 대한민국에서 딱 10대, 메리케이의 최고 직급자인 NSD들만이 5년에 한 번씩 새 차로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심벌이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소나타 차량을 달성하고 속은 문드러졌지만 내 인생이 마치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구두굽을 갈아가며 대중교통으로 비즈니스를 했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책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제목은 '티코에서 벤츠까지'. 비록 쓰다가 말았지만 다행히 2012년부터 시작한 나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그때의 열정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있어서 나의 '다단계의 여왕' 시절을 곱씹으며 가끔은 글로도 시리즈의 형식으로 써 내려가 볼 생각이다. (남편은 다단계 이야기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지만 브런치는 내 공간이니까)



2014년 내가 바라던 목표를 모두 이루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IESSD라는 메리케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피의 목적으로 2015년 이탈리아에 왔다. 단기간에 빠른 성과를 이루며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냈지만 성공의 절반은 결국 내가 메꾼 돈이었다. 처음엔 그 누구도 나에게 등을 떠밀지 않았지만 작은 성공이 불러일으킨 성공의 맛은 점점 큰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결국엔 내가 나를 무너뜨렸다. 다단계는 그런 조직이다. 내가 그 속에 몸담고 있을 땐 모르지만 내려놓고 밖에서 보면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부르듯이 성공을 해본 사람만이 또 다른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케이 비즈니스를 시도해봤고, 20대 때 큰 성공을 이뤄본 나의 경험은 내 평생 가장 값진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