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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이 속한 프랑스 바스크 문화에 대해서

생장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by 몽키거
생장에 있다 보면 자주 보고 듣는 단어 “바스크”가 뭘까?

순례길을 떠날 때 잠시 하루 들렸던 생장에서 이번에는 봉사활동을 하며 일주일 넘게 있다 보니 마을을 돌아다닐 기회가 많았다. 기념품 샵과 레스토랑에서 유난히 많이 보고 들은 단어가 바스크인데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꼭 먹여야 할 디저트로 많이 추천받은 케이크도 이름이 바스크 케이크가 아니겠어? 도대체 바스크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져서 함께 일하는 프랑스 봉사자분들께 물어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나름 조사해서 알게 된 이곳 생장도 속해있는 바스크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일단 지리적 위치로 보는 프랑스령 바스크는 스페인과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산맥과 대서양에 둘러싸인 프랑스 남서부 지역(프랑스어로는 Pays basque français)이다. 당연히 우리 모두의 프랑스 길 순례길이 시작되는 생장 드 피에드 포르를 포함한다. 이곳은 강한 지역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하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스페인과 프랑스 양쪽에 걸쳐 있어 행정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나 하나의 민족문화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약간 제주랑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제주가 방언, 돌하르방, 해녀 문화처럼 독자적인 정체성 문화가 유지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곳 프랑스의 바스크 사람들은 자신들을 단순히 프랑스인이라기보다 바스크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전통과 언어, 풍습에 대해 자부심이 아주 강하다고 한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은 독립운동을 할 정도로 거칠지 다지만 프랑스의 바스크인들의 자신들의 문화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조용하고 꾸준한 활동들을 한다고 한다. 마을과 가족 중심으로 유대가 강하고 주로 어업과 목축, 와인 생산의 전통적일 삶을 중시한다고.


국기와 문양도 따로 있는 바스크
바스크 국기 이쿠리냐(Ikurrina)와 바스크 심볼 라우부루(Lauburu)

생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기념품 샵이나 거리에서 신기한 국기와 문양을 계속 마주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바스크의 상징인 이쿠리냐 국기와 라우부루 심볼이다.

먼저 바스크의 국기는 이쿠리냐(Ikurrina)라고 하고, 바스크어로 '깃발'을 뜻한다. 원래는 비스카야 지방의 상징으로 제정되었으나, 현재는 바스크 전체를 대표하는 깃발로 사용되고 있다. 깃발의 색과 형태에는 다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빨간색 바탕은 바스크 민족, 전통적으로 비스카야 지방을 상징하며 초록색 대각선 십자(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는 바스크 민족의 단결과 자치 전통을 상징하는 동시에 성 안드레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얀색 정십자는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며, 바스크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 기초를 표현한다고 한다. 종합하면 이쿠리냐는 민족(빨강), 단결과 자치(초록), 신앙(흰색)의 조화를 통해 바스크인의 정체성과 자유, 그리고 신념을 담고 있는 깃발이다.


라우부루 심볼로 만들어진 주얼리 기념품과 후드 셔츠

그럼 소용돌이 같이 보이기도 하고, 날개같이 보이기도 하는 바스크의 심볼 라우부루(Lauburu)는 뭘까? 라우부루는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전통 문양으로 네 개의 곡선이 회전하는 십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스크어에서 lau는 네, buru는 머리를 뜻한다. 따라서 라우부루는 ‘네 개의 머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문양은 태양과 생명의 순환, 에너지의 흐름을 상징하는데 바스크 민족의 정체성과 단결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라우부루는 주택, 교회, 무덤 등에 새겨져 악령을 물리치고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믿음이 있았다던데 더 나아가 네 방향(동·서·남·북)이나 네 가지 원소(불·공기·물·흙)를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므로 라우부루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바스크인의 뿌리와 생명력을 담고 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알고 보니 기념품이나 주얼리 샵에서 보아왔던 물건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바스크의 특산품들
생장 시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다양한 바스크 베레모와 바스크 직물

생장을 돌아다니며 기념품들을 보다 보면 베레모를 많이 팔고, 섬유와 직물 관련된 수건이나 테이블 보를 파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게 다 이곳의 특산물과 관련이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베레모는 본래 피레네 산맥 지역 목동들이 추위와 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던 모자로, 전통적으로 양모를 압축해 만든 펠트 소재가 사용되어 보온성과 방수성이 뛰어난데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는 바스크인의 정체성과 프랑스 문화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장인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고급 베레모는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이곳 생장에서도 다양한 색상의 실용성과 장식성을 모두 갖춘 기념품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스크 직물은 원래 농가에서 가축 덮개나 담요로 사용되던 전통 리넨 직물로, 선명한 줄무늬와 강렬한 색채 대비가 바스크 지역의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질은 면과 리넨으로 발전해 내구성과 실용성이 강화되었고, 반복 세탁에도 색상이 잘 유지되는 견고한 특성이 특징이다. 생장에서 테이블보, 주방 타월, 앞치마, 가방 등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재해석된 무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전통과 현대성 모두를 잡을 수 있게 잘 발전한 전통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빨아도 색이 잘 안 변하고 질이 유지된다는 특성이 살림하는 주부들에게 딱이라 중년의 주부 관광객들이 정말 많이 쇼핑해 가시는 걸 볼 수 있었다. 특히 타월은 가볍고 가격 부담이 적으면서도 바스크 특유의 디자인을 간직하고 있어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대표 기념품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나는 양털로 만든 인형이 가장 귀여웠다.

베레모와 생활 직물류 외에 바스크 지역의 양모도 언급하고 싶은데 이게 바로 우리가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 날 수도 없이 지나치는 양들에서 나오는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피레네에서 사육되는 전통 양 품종에서 얻어지며, 섬유가 두껍고 탄력이 좋아 내구성이 뛰어나다. 예로부터 담요, 망토, 외투 제작에 활용되었고 추운 산악 기후에 적합한 보온성을 제공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방적과 직조 기술의 발전으로 양모는 스웨터, 머플러, 코트, 담요 등 다양한 섬유 제품으로 가공되며 기능성과 미적 가치가 동시에 강조된다. 또한 천연 소재로서 통기성과 습도 조절 능력이 우수해 실용성이 높고, 바스크 장인들의 전통 기법이 더해져 지역적 정체성과 품질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내가 양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지라 어떤 제품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양털로 만든 양인형은 정말 귀여웠다. 사이즈가 조금 더 컸으면 한 마리 데려오고 싶었지 뭐야.



음식으로 넘어오자면 가장 유명한 바스크 케이크(Gâteau Basque)가 있겠다. 바스크 케이크는 19세기 바스크 가정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 디저트로, 버터가 풍부한 반죽 사이에 체리 잼이나 커스터드 크림을 채워 구운 형태가 특징이다. 풍부한 풍미와 질감 덕분에 바스크 문화를 대표하는 후식으로 자리 잡았고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후식 메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생장에 있는 대부분의 빵집에서도 팔기에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질감은 케이크와 타르트 중간처럼 부드러웠고 맛은 소박하다. 파리 같은 도시의 화려한 기교와 다양한 재료의 복잡함 없이 따뜻한 홍차와 어울릴 만한 맛 좋은 커스터드 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에서 많이 먹는 파스티초또와 비슷해서 나에게는 익숙한 맛이었다. 보통 오리지널 버전으로 크림 커스터드가 들어있는 것과 체리 콩포드가 추가된 버전이 있는데 둘 다 맛있으니 생장에 있을 때 한번쯤 시도해 보시길 추천한다.


바스크 케이크 말고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건 바로 이곳의 매콤한 맛을 책임지는 특산품 고추들. 너무 유명해서 기념품 자석들을 눈여겨보면 고추 모양의 바석들도 아주 많다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스크 지역은 매콤한 풍미를 즐기는 전통이 뚜렷해 두 가지 고추가 대표 특산품으로 있는데 먼저 피파라스(Piparras)는 스페인 바스크의 기푸스코아 지방, 특히 이바라에서 재배되는 길고 가느다란 풋고추로, 맵지 않고 부드러우며 보통 식초에 절여 타파스나 해산물과 곁들여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서 프랑스 바스크를 대표하는 에스펠레트 고추(Piment d’Espelette)는 붉게 익힌 뒤 건조하거나 분말로 만들어 사용하는 향신료로, 은은한 매운맛과 깊은 향을 더해 고기, 생선, 치즈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며 AOP 인증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이처럼 바스크 지역은 풋고추부터 향신료까지 매콤한 맛을 다양하게 즐기는 문화가 이어져 내려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추가 가미된 전통 음식들이 많은지라 한국인들에게 이곳 바스크 지역의 음식은 낯설지가 않다.


다양한 바스크 문양이 들어간 타월들


개인적으로 생장에서 무언가 바스크 문화권스러운 기념품을 사가야 한다면 음식으로는 작은 사이즈의 바스크 케이크, 그리고 피파라스 고추 한 병 사갈 것 같다. 먼저 바스크 케이크는 상온에서도 2-3일은 거뜬, 냉장고에 넣어두면 일주일도 간다고 하니 이동에도 큰 구애를 안 받아서 좋을뿐더러 아주 큰 마가레트 과자의 크림, 타르트 버전이라고 할까? 무언가 아주 팬시한 자리 말고 정말 조용한 오후에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 같은 디저트 느낌이다. 피파라스 고추는 유럽권에서 은근히 한국스러운 매콤한 맛을 찾기 힘든데 파테나 햄류등에 한두 개씩 곁들여 감칠맛 나는 맛있는 매운맛을 더할 수 있기에 한국인 입맛에 합격이랄까. 맑은 식초에 절여져 있는 거라 가끔 베어 물으면 고추 안에 스며든 식초가 튀니 먹을 때 살짝 주의해야 한다. 음식 외 기념품으로 살 것은 살림하는 친구들 선물용으로는 바스크 심볼이 들어간 주방타월을 추천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생장의 주얼리샵에서 바스크 무늬의 귀걸이나 팔찌 정도면 이곳 생장을 기억하기 충분할 기념품이 될 것 같다,


기념품도 한번 알고 보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생장을 걷다보면 바닥에도 전통 문양이 새겨져있는 걸 볼 수 있다

생장은 순례길을 시작하는 길이라 그저 설레기만 한 장소였는데 이번에 다채로운 역사들을 접해보며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나도 이번에 일주일 넘게 머물면서 조금 더 잘 알게 된 터라 다음이 있다면 기념품들을 조금 더 잘 사 올 것 같다. 물론 프랑스길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은 긴 여정을 앞두고 이런 것들을 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 바스크의 문화와 특산품 등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았다. 혹시 아나, 우리가 언젠가 생장을 여유 있게 여행할 날들이 온다면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이 정보들이 유용하지 않을까. 생장말이야… 생각보다 문화가 독특하고 재밌는 곳이다. 이곳만의 언어인 바스크어도 있고, 이곳만의 스포츠인 펠로타 바스크(Pelota Basque)도 있으며 전통 축제들과 의상, 춤 등 알려고 하면 그 정보와 양이 참 다양하고 방대하다. 그러니 우리가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려 생장을 방문했을 때 이곳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역사 깊은 도시라는 걸 한 번쯤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나도 앞으로 이곳 생장에 대해 더 알아가고 친해질 새로운 기회가 다시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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