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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Jun 23. 2017

멘탈모델의 세대효과 - 할머니는 왜...

할머니는 왜 구글 검색창에 'Please, thank you'를 썼을까


2016년 여름, 영국의 한 할머니 일화가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손자가 할머니의 구글 검색 내용을 사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면서였죠. 


@Push10Ben



할머니가 아주 공손하게 Please로 시작해서 Thank you로 끝나는 검색문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로 쓰자면 "실례지만 이 로마자 숫자를 번역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도 될 것 같네요. 


사진을 올린 Ben의 트윗이 수만번 리트윗되고 화제가 되면서 '구글 영국'도 트위터를 통해 친절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덕분에 이 85세 할머니는 유명 인사가 되었고, 인터뷰도 했던 모양입니다. 허핑턴포스트가 인용한 인터뷰에 따르면, 할머니는 화면 반대편의 구글 본사에 검색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공손하게 썼다고 하네요. 


*Ben과 할머니 May


이 이야기는 나이든 할머니의 귀여운 행동에서 나온 해프닝, 훈훈한 이야기 정도로 인터넷에 회자 되었습죠하지만 제가 이 일화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은 '아, 멘탈모델!'이었습니다. 


85세 할머니가 생각한 구글 검색의 작동 방식은 이랬던 것입니다. '검색창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면 화면 건너편의 사람이 결과를 알려주는 것'. 왜 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전화 교환원'에 대한 경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1967년 전화국의 전화교환원


과거 최초의 전화 시스템은 지금처럼 유니크 넘버인 전화번호로 걸면 상대가 바로 받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전화국에 통화 요청을 하면 교환원이 해당 회선에 직접 접속시켜주는 수동 교환 방식이었죠.


이 교환원의 역할은 자동 교환 방식으로 전환된 후에도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114입니다. 114에 걸어서 '누구누구씨'를 얘기하거나, 가게 상호를 얘기하면 교환원이 검색해서 연결시켜 주는 것이죠. 요즘은 직접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전화를 걸기 때문에 사용하는 이가 적지만, 8-90년대를 사회생활하며 살아 본 분들은 다들 한 번쯤 114에 전화를 걸어보았을 것입니다.


이런 과거를 생각하자면, 할머니가 '검색창 너머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주 이상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사람이 검색해서 알려주는 서울시 '다산 콜센터'도 아직 있지 않은가요. 저도 대학을 다니며 피처폰을 쓰던 시절에 버스 막차 시간 같은 것을 물어보기 위해 '다산 콜센터'에 종종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위의 일화에서 메이 할머니가 구글 검색이 작동 방식에 대해 생각한 것을 두고 '멘탈 모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UX연구나 실무를 보는 분이면 이미 익숙한 개념일텐데, '멘탈 모델'이란 '어떤 대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 과정'을 뜻합니다. 


꼭 기술에 한정된 개념은 아니지만 흔히 쓰이기로는, 특정 기술 혹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할 것이라 믿는 사고 과정을 지칭하지요. 할머니의 '멘탈 모델'에서 구글 검색창은 화면 너머에서 사람이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멘탈 모델'과 실제 기기 작동의 차이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 종종 에어컨을 예시로 듭니다. 이를테면, 에어컨에서 조작하는 '희망 온도 설정'의 의미는 '그 온도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에어컨을 가동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즉, 희망 온도 24도 설정은 물론 실내 온도가 24도가 될 때까지 에어컨을 가동하라는 의미이죠. 그런데 에어컨이 처음 보급되던 시기에는 희망 온도 숫자를 마치 '에어컨 냉풍 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실은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현재 온도가 29도일 때에 희망 온도를 최저인 18도로 설정하면 에어컨이 초초강력 냉풍을 뿜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요즘은 '현재 온도'와 '희망 온도'의 차이가 많이 나면 '바람 세기'도 함께 조절되는 에어컨들이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 온도를 1도 내릴 때마다 1도 만큼씩 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소형 에어컨은 풍량이나 터보 기능을 따로 조작하지 않는 한, 실내 온도 29도에서 희망 온도를 24도로 설정하든 20도로 설정하든 바람의 차갑기는 동일합니다. 


이렇게 실제 기기의 작동이 있고, 사람들의 '멘탈 모델'이 있는데, 이 둘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멘탈 모델'의 이해와 그에 관한 사용자 조사는, 기존 제품의 개선이나 신제품의 기획과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멘탈 모델'이 세대 효과에 따라서, 즉 어떤 시대적 경험을 지녔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본 것입니다. 아마도 전화 교환원 때문에 구글 검색창 너머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할머니처럼 말이죠.





최근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KTX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에 가는데, 건너 옆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스마트폰을 내밀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쓴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카카오톡 조작이 미숙하다며 저에게 '이것 좀 해봐바요'하고 도움을 청한 것이죠. 


스마트폰을 받아보니 화면은 카카오톡의 설정 메뉴 어딘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사진첩'을 띄워달라고 했고요. 저는 처음에 당연히 기본 사진첩이라고 생각하고 홈버튼을 누르고 카카오톡을 빠져 나와 사진첩 아이콘을 누르고 '이거 찾으시는 거 맞죠?'라고 되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도 사진첩이 맞는데, 카카오톡에 있는 사진첩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순간, 카카오톡 대화창 안에 있는 '앨범(주고 받은 사진 모아보기)' 기능을 생각하고, 자녀 분 대화창에서 앨범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것도 자기가 찾는 사진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답은 무엇이었냐면, 할머니가 찾는 사진첩은 바로 자녀 분의 '프로필 사진'이었습니다. 자녀 분이 프로필 사진에 항상 손주 사진을 띄워 놓는데, 그게 또 옆으로 넘기면 계속 예전 손주 사진이 있으니 사진첩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그제서야 아마도 60세는 족히 넘은 나이에 처음 스마트폰을 지닌 할머니에게 '프로필 사진'이라는 것이 얼마나 낯선 개념일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과거 히스토리도 계속 볼 수 있는 '프로필 사진' 기능이 전용 사진첩이 아니면 또 무엇일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할머니는 카카오스토리는 더욱 모를 것이지만, 자식 분은 손주 사진을 카스와 연동하여 프로필에 계속 업데이트 해온 것 같았습니다. 그게 자신의 사진앱이든, 대화창 안의 앨범이든, 프로필 사진이든, 할머니에겐 무슨 상관일까요. 저에게 도움을 청했던 할머니는 그렇게 프로필 사진에 담긴 손주 사진을 넘기며 옆의 할머니에게 자랑을 이어갔습니다.




이렇듯 '멘탈 모델'에는 세대 효과가 있고, 연령에 따라 특정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정 서비스나 기술에 대해 최초의 경험이 어땠는가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디지털 매체를 먼저 접한 아이들은 신문을 보면 반대로 '기능이 없는 아이패드'라고 여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태블릿 피씨로 접하는 뉴스를 '전자 신문'이라고 여기는 것과 반대이지요.


보편적 서비스를 설계하기 위해서라면, 혹은 특정 연령층에 맞는 서비스를 설계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멘탈 모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일테니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MS Word의 저장버튼은 플로피디스크 모양입니다만, 요즘 어린 아이들은 이게 뭔지 모르죠.


이러한 '멘탈 모델'에 대한 이해는 작게는 인터페이스 구성에서부터, 크게는 서비스 프로세스 디자인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MS Word의 '저장' 버튼은 플로피디스크, 즉 과거의 저장매체 모양입니다. 요즘 어린 아이들은 그것이 저장 버튼인 줄만 알고 플로피디스크의 실물은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저장'의 메타포를 때에 플로피디스크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장 기능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편적 공감을 갖고 있는 물건이나 경험은, 메타포로써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적용될 있습니다. 


한 편, 미래에는 저장 기능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클라우드 저장이 보편화되고 만약 로컬 HDD/SSD에 저장하는 것보다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것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온다면(저만 해도 이미 중요한 파일들을 모두 드랍박스 or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있으니까요), 저장 버튼 모양이 바뀔 뿐 아니라 저장 기능에 대한 서비스 플로우 자체가 바뀌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10대 20대 전용 서비스를 만들든, 50대 60대 전용 서비스를 만들든, 특정 세대를 타겟하는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면 세대 효과와 메타포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한 편, 구글 검색창에 Please, Thank you 라고 적었던 할머니의 모습은 어떤 의미로 '오래된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챗봇과 인공지능이 활성화된 미래에 살아갈 아이들은, 현재의 우리가 표제어나 검색식을 써서 무언가 검색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미래의 아이들은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사람처럼 대하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느끼는 '멘탈 모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아이들은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막 대하는 것이 교육 상 좋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에게 Please로 시작해서 Thank you로 말을 걸라고 배우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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