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로봇과 미래 산업
얼마 전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의 합동 장례식이 열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일본 소니사에서 제작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 장례식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언론에 공개된 아이보 장례식은 2015년이 처음인데, 최근 들어 또 합동 장례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소니에서는 2014년 부품 부족과 유지 관리 비용을 이유로 들어서 아이보에 대한 기술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아이보는 1999년 처음으로 등장한 애완견 로봇입니다. 200만원 상당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4세대 제품까지 수십만 대가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가격 대비 기능으로는 아쉬움이 있었고 고장이 잦다는 문제 등으로 판매 추세가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성공을 거두지 못한 셈이죠. 그래서 아이보는 2006을 끝으로 단종되었습니다. 이후 소니는 더 이상 새로운 로봇 강아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일본 사회의 고령화에 맞물려 일종의 문화적 족적을 남긴 셈이 되었습니다.
아이보는 사물 인식과 음성 인식 기술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 나간 제품이라고 할 수 있죠. 아직 지금과 같이 딥러닝과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이니 소니의 도전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학습 알고리즘을 포함하고 있어서 주인의 칭찬에 따라 특정 행동을 더 하도록 훈련시킬 수도 있었다고 하네요. 오류나 오작동이 많았다고 하지만 많은 주인들이 아이보에 애착을 가질만 합니다.
하지만 소니에서 기술지원을 중단하면서 아이보의 주인들은 더 이상 A/S센터에서 아이보를 치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단종된 제품이었기 때문에 A/S센터 소니의 관리 유지 비용도 상당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되자 기존의 소니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수리를 해주기도 하고, 또 이후에 사설 아이보 수리업체를 세웠다고 합니다.
아이보 장례식은 아이보 수리업체들이 함께한 것이기도 합니다. 장례식을 치른 아이보들은 무덤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수리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보들에게 이식되어 가기 때문이지요. 수리를 위해선 부품이 필요한데,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부품의 유일한 출처는 바로 장례를 치른 아이보들의 '신체 기증'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아이보 장례식'에 얽힌 일화에서 크게 세 가지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 째는 로봇의 단명과 물리적 한계성에 대한 것입니다.
둘 째는 펫케어처럼 로봇케어 산업이 발달할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셋 째는 죽음과 이별, 의례에 대한 인간의 마음과 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소설과 영화에서 로봇은 '영생'의 상징이었습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었던 로봇이 나옵니다. 결국 '죽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인간으로 인정 받고자 하기도 하지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 역시 기계 인간이 되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요(결말에 반전은 있습니다만). 만화 '총몽', '공각기동대' 등 사이보그화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극복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현실의 로봇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급속도로 발전하며, 이전 세대의 부품을 구하지 못해 수리를 못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로봇은 전자 제품 중에서도 특히나 동작이 많고, 여러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기기에 비해 훨씬 내구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실제로 지금까지 출시된 가정용, 개인용 로봇들의 생애 주기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개인이 살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생애 주기가 긴 것들인 자동차나 TV인데, 현재의 로봇들은 그보다 훨씬 짧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쓰고 버릴 로봇을 친구로 만들길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순한 장난감용이라면 몰라도 우리가 가정용 로봇, 혹은 소셜 로봇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교감을 나누며 애착을 갖게 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로봇과 이별하고 싶지 않아질 겁니다.
소프트뱅크의 '페퍼' 같은 로봇 역시 일본 사회의 고령화 현상을 염두에 주고 시작된 사업일 겁니다. 노인들의 경우 친근하던 로봇이 고장나거나 폐기될 경우 더욱 상심이 클 것이므로, 유지 보수 이슈도 중요해지겠지요.
로봇이 오래 살도록 돕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들이 하위호환성을 지닌다고 하지만, 우리가 지닌 대부분의 물건들은 10년 정도만 지나도 전혀 호환이 될 수 없는 존재로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10여년 전만해도 대부분 사람들이 피쳐폰을 썼던 것을 생각해보세요.
제 생각에 사회적 로봇의 이러한 내구성(단명)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방법은 로봇이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화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방법은 아니지만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러 외부 기술의 동반 참여가 가능한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결합적 운영체제가 된다는 뜻입니다.
소니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은 이익 논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며 자사의 제품을 유지보수 해줄 수 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로봇 제작사가 로봇의 제작과 유지보수에 대한 부분을 플랫폼으로 오픈소스화 시키고, 생태계 조성을 통해 여러 민간 참여를 활성화시킨다면, 자발적인 참여자들이 롱테일(소수자에 해당하는 여러 다양한 케이스) 분포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3D 프린터를 통한 개별 부품 생산을 통한 혁신 등이 합쳐진다면, 10년 20년을 건강하게 사는 로봇도 가능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비즈니스적으로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로봇 제조사 입장에서는 로봇을 플랫폼화 시키는 것보다 당장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성공할 경우 독점적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조사 측에서는 오픈소스로 기술이나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로봇이 제품이 아닌 플랫폼으로 거듭날 경우, 제조업 모델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해지겠지요. 특정 표준을 점유하고 특허를 통해 라이센스 수익을 얻는다던가, 여러 생산이나 거래에 수수료를 매기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시나 제조사 입장에서는 쉬운 도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로봇 사업 자체를 플랫폼화시킬 수는 없어도, 부분적으로 민간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제조사와 관련 업종이 윈윈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그럼 자연스럽게 '두 번째'인 로봇케어 산업에 대한 얘기로 넘어갑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로봇케어 산업의 등장에 대한 것인데요, 가정용 로봇 혹은 소셜 로봇이 보급되면 당연하게 그에 맞는 특정 비율로 로봇케어 산업이 발달하게 될 것입니다.
혹은 오히려 로봇 제조업보다도 로봇케어 산업이 훨씬 큰 규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로봇 제조업은 '구매' 모델로 비즈니스를 하겠지만, 로봇케어는 '구독' 모델이 될 테니까요. 시간이라는 변수가 들어갔을 때에, 로봇의 구매에 들이는 비용보다 유지 관리 및 업그레이드에 들이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로봇 제조사가 이후의 관리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사람은 자신이 애착하는 대상에 돈을 쓰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실제 동물을 키우는 데에 돈을 쓰는 팻케어 산업의 성장은 글로벌 트렌드입니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고, 또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여러 사회문화적 현상이 펫케어 산업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로봇 강아지나 반려 로봇이 동물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로봇 산업은 바로 이런 심리적 니즈와 교집합이 있을 겁니다. 이것이 반려 로봇에 관련된 산업이 기존의 전자 제품과 완전히 다른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대상에 심리적 애착을 갖게 된다는 것 말이지요.
이미 자동차는 전국 방방곡곡의 카센터에 의해 유지 관리되고 있지요. 그리고 과거 TV가 잘 고장나던 시절에도 그랬고 각종 '사설 수리점'이 있습니다.
애플 제품의 리퍼 정책 때문에 자신이 쓰던 아이폰을 다른 것으로 교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폰 전문 사설 수리점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이런 식의 스마트폰 사설 수리점은 큰 산업 규모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이 될 정도로 이미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면을 보면 로봇케어가 하나의 산업이 되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수리나 유지보수에서 넘어가서 각종 외관 꾸밈, 업그레이드, 튜닝 등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애착을 주는 대상에게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은 것도 사람의 욕망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로봇케어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포함하기 때문에, 더 여러 영역을 포괄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통신 기능이 포함되면 보안 문제가 생길 것이고, 로봇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습니다. 통신 취약점으로 침투해서 로봇의 소중한 기억을 잠그는 랜섬웨어가 창궐하여, 악성 해커들이 로봇의 정신을 담보로 주인에게 비트코인을 요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될 소셜 로봇은 심리적 보상을 주면서도 편의성을 갖춘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도 일정 정도는 실용성이나 편의성을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모 펫푸드 기업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해봤더니 '먹어도 강아지 대변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 사료'처럼, 주인으로서의 편의를 생각하는 제품이 인기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보의 경우도, 현실적으로 강아지를 키울 수는 없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구매했다고 알려져있지요. 이는 단지 불편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하는 주인의 이기심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현실적인 조건들은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이렇게 로봇케어 산업은 사람들의 애착에 대한 니즈와, 그러면서도 충분한 편의를 추구하는 니즈 사이에서 성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다시 아이보의 장례식으로 돌아와서, 죽음과 이별, 그리고 의례에 대한 인간의 마음과 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아이보이 장례식이 열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경우 남다른 장례 문화에 대해선, 그 생사관에 관한 더욱 복잡한 철학적 이야기가 필요할 겁니다. 다만 일본의 특수성을 제외하고서라도 '장례식'을 치를 정도로 주인들의 아쉬운 마음은 진심이었겠지요.
장례식은 이별의 마음을 씻어내고 정화하는 의례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우리가 구입한 전자제품, 장난감과 이렇게 이별하는 일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심리적 관여도가 그 만큼 높지 않았기 대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심리적 관여가 커질수록 이에 관한 서비스 디자인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대화형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은 영화 'Her'도 있었지요. 언젠가는 인공지능의 죽음과 그 이별에 관한 영화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로봇 제품의 디자이너, 로봇 서비스와 로봇 플랫폼의 디자이너는 이러한 '함께하는 삶 이후의' 일까지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역시나 로봇의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로봇과의 관계가 친밀해지고, 로봇과 이별해야 하는 사람의 아픔 역시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보 장례식의 일화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연구는 좀 더 넓은 문화적 외연을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인공지능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거나, 사람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떠나서, 인간 문화와 삶 전체를 둘러보고 그 안에서 인공지능의 자리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연구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업데이트)
이 글을 작성한 것이 2017년 6월인데요, 이후 소니는 신형 아이보의 출시를 발표하고 2017년 11월 1일 예약 판매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1시간 만에 완판 매진입니다.
신형 아이보는 훨씬 향상된 인식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심리적인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네요.
만약 제가 소니의 서비스 디자이너였다면, 혹시라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구형 아이보의 칩셋을 신형 아이보로 업데이트하는 기능을 포함시켰을 것 같습니다. 위의 글에 담겨 있듯이 기술 세대의 격차가 크면 하위호환조차 어렵기 때문에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만, 퍼포먼스로라도 그런 경우를 보여준다면 일종의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리적인 문제로 동물보다도 단명할 수 있는 반려 로봇이, 형태를 바꿔 더 오랫 동안 주인과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