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X의 FaceID가 이끌 다음 장면들
안면, 지문, 홍체, 심지어는 혈관 스캔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생체정보 인증. 오늘은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생체정보 인증은 주로 '보안' 그리고 간혹 '편의'의 측면에서 논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심리'적인 관점에서 친밀감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생체정보 인증이야말로 인공지능 로봇과의 깊은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가는 첫 단계라는 얘기지요.
일단 저는 아이폰 4, 아이폰 5S, 그리고 아이폰 8을 차례대로 쓰고 있는 아이폰 유저인데요, 개인적으로 아이폰 5S로 넘어올 때에 지문 인식 때문에 큰 만족을 한 편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 새 폰을 팔던 매장 직원의 말이 생각납니다. 아직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는데요,
"아이폰5와 아이폰5S가 성능 차이도 많이 나지 않고, 지문 인식 정도의 차이 밖에 없는데, 가격 조건이 훨씬 좋은 아이폰5를 하는 것이 어떤가요?" 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말에 잠시 망설이긴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5'가 아닌 '5S'를 구매해서, 지문 인식에 아주 만족하며 폰을 사용하였죠.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문 인식은 무척 순식간이라서 '지문이 인식되고 있다'라는 정도의 느낌도 없는 정도입니다. 손가락을 대면 자동으로 잠금해제 된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그 이후부터 번호나 패턴으로 잠금 해제를 하는 사람들이 무척 불편해보이기 시작했죠.
보통 이런 기술은 한 번 적응하면, 이전 단계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이폰의 Face ID에 뉴스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몇몇 사람들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불편하리라는 반응을 내비쳤습니다. 폰을 잠금해제 할 때마다 폰을 들어서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야만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출시 후의 Face ID를 실제로 써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생각 외로 쉽고 빠르고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딱 다음과 같은 정도의 느낌이죠,
'내가 열면 열리고, 다른 사람이 열면 열리지 않는다'
특별히 따로 무언가 폰이 인식하고 있다는 절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열면 열리고, 다른 사람이 열면 열리지 않는다는 정도의 느낌이죠.(그 느낌이 괜찮아서 아이폰X에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어쩐지 아직은 홈버튼이 없는 아이폰을 받아들이긴 어려워서인지 아이폰8를 구매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아이폰의 Face ID를 체험해보고 느낀 중요한 점은 '폰이 나를 알아본다'는 감흥입니다. 아무런 구체적인 행동도 하지 않고 화면을 슬라이드하기만 해도, 내가 열면 열리고, 다른 사람이 열려고 하면 열리지 않으니까요.
그제서야 수많은 인공지능 인터페이스가 결국은 생체정보 인증 방식으로 가게 되리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면서 처음 긴밀한 관계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강아지가 자신을 주인이라고 알아볼 때이지요. 사람이 아닌 대상과 소통할 때에도 그 녀석이 나를 알아봐주면 반갑습니다. 즉, 기계적인 대상과 소통할 때에도, 문자로 된 아이디나 패스워드를 입력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알아본다는 느낌이 들 때에 더 긴밀한 관계를 느끼리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 강아지는 특히나 후각으로 주인을 알아본다고 하는데, 로봇 강아지도 후각 센서로 킁킁거리며 주인과 주인이 아닌 사람을 알아보는 날이 올까요?
생체정보 인식은 맨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문이나 얼굴 외에, 혈관, 홍채 등 다양합니다. 음성 인식을 생체정보 인식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다만 음성은 신체 일부를 스캔하는 것에 비해서 위변조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높은 보안성을 요구하는 영역보다는, 보안성에 관계 없이 편의를 제공하는 곳에서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할 때에, 그 목소리의 주인을 인식해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는 줄 수 있겠지지만, 목소리만으로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는 없겠지요.
음성 인식은 '보안'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지 못하지만, '편의'와 '심리'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다고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이나 공간의 보안 설정을 통과하는 느낌은, 미약하지만 심리적인 연결감을 주기도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오랜만에 방문한 카페나 친구네 사무실이라도 패스워드 있는 와이파이가 자동으로 연결되기만 해도 괜히 더 편한 기분을 느낍니다. 특히나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은, 출입증도 반납하고 지문도 지워지고, 더 이상 출입 보안 절차를 통과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지요.
시스템이나 공간이 '나' 자체를 알아보는 것이라면? 그 보안을 통과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심리적인 부분은 더 크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안'과 '편의' 외에 '심리'적인 부분이라는 축을 하나 더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특히나 인공지능이 점차 발전하고, 로봇과 같은 물리적인 실체를 지닌 에이전트와 소통해야할수록 심리적인 부분은 사용성이나 만족감에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되어갈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을 간략하게 표로 표현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음성 인식은 위에서 얘기했듯이 보안성은 약한 대신에, 물리적 거리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멀리서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편의성은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본인 거부율'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기술적으로 개선되어갈테니까요). 그리고 음성인식은 대화식이 된다면 심리적인 친밀도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 편 그에 비해서 지문 인식은 보안성이나 편의성은 좋더라도, 지문을 갖다대는 방식으로 사회적인 친밀감을 나누기는 어렵겠죠.
정맥 인식 같은 방식은, 현재 상용화된 UX를 보자면 'ID카드를 몸에 담고 다닌다'는 정도입니다. 출입증 카드를 갖고 '삑'하고 찍어야 했던 것에서, 손등을 신체 ID를 '삑'하고 찍는 것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지요. 보안성은 훨씬 증가하고, 편의성도 좋아지겠지만, 앞으로 그 이상 어떻게 되느냐는 UX 설계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어딘가에 손등을 '삑'하고 찍는 방식으로만 정맥 인식을 쓰면, 지문보다 조금 더 편해진 정도이고,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음성이나 얼굴 인식보다는 훨씬 불편한 방법인 셈이지요(1초 미만의 편의성 차이일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게 비즈니스를 가르는 차이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삑'하고 찍는 게 아니라, 문을 밀어서 여는 동안 자연스럽게 정맥 인식이 되거나, 운전대를 잡은 순간 자연스럽게 정맥 인식이 되는 등으로 UX 설계에 따라 편의성은 달라질 것입니다. 로봇과 악수를 해서 정맥 인식이 되는 방식이라면 심리적 친밀감 면에서도 더 낫지 않을까요. 이것이 UX 설계의 중요한 이유이고, 앞으로 어떤 어플리케이션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제가 위의 표를 물음표로 비워 둔 이유입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보안'과 '편의'뿐 아니라 '심리'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사람은 애착을 갖는 대상에 더욱 만족하고 심지어 더욱 돈을 쓰기도 하니까요.
로봇뿐 아니라 스마트홈이든, 스마트카이든 더 많은 플랫폼들이 생체정보 인증을 통해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시금, 우선은 '나를 알아볼 수 있어야' 관계라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에, 생체정보 인증은 역시나 인공지능 로봇과의 더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가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아이폰의 Face ID는 동양인 얼굴 인식에서 취약한 면도 보이는 등, 한계점은 갖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얼굴 인식에 대한 데이터와 정교화된 기술을 쌓아갈수록, 애플이 다른 영역에서 더욱 앞서 나가는 부분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는 구글이나 다른 회사라고 애플에 비해 부족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구글 포토를 통해 엄청난 사진을 학습하고 있는 구글의 인식 엔진은, 이미 저 'Suh, Kiseul'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인식 기술이 상향 평준화 되었을 때에 그 다음에 있는 것은 역시 UX 설계일 것이라 봅니다. 생체정보 인증을 보안의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그 심리적 작용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곳에서, 인공지능 로봇 분야나 스마트 플랫폼의 다음 승기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