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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Mar 21. 2020

'디스거스트'의 재발견 in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



'인사이드아웃'은 2015년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으로, 2016년에는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작품이다. 주인공이 사춘기를 거치며 겪는 감정과 사건들 속에서, 정말로 그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동화적으로 잘 표현한 멋진 작품이다.


특히 감정의 작동 기제와 기억, 성격 형성 등에 대하여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모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인지심리학이라고 하면 내 경우는 대학원에서 한 학기 수업을 들어본 것 뿐이지만, 극장에서 인사이드아웃을 보면서 복잡한 인지 과정을 판타지적이면서도 개연성 있게 표현한 것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2020년인데 갑자기 왜 2015년 애니메이션에 대한 리뷰를 쓰느냐,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 '디스거스트'에 대해 얘기하기 위함이다. 한국 더빙판 명칭은 '까칠이'인 것 같으나, 본래 의미는 물론 역겹다는 뜻에 가깝다. 디스거스트는 내가 모든 가상의 캐릭터 중에서 손에 꼽게 좋아하는 캐릭터이다(디스거스트 외에 개인저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어피치, 호빵맨, 이상해씨 등 어쩐지 얼굴이 동글넙적한 것들을 좋아하는 듯한데). 하지만 디스거스트는 인사이드아웃에서 아무래도 조이(기쁨이)나 새드니스(슬픔이)에 비해 마이너 캐릭터였던데다가, 디스거스트를 좋아한다고 하면 독특한 취향인 것처럼 취급받기 일쑤였다.



조이와 새드니스없이 감정 제어판을 맡아버리게 된 피어, 앵거, 디스거스트


나는 어려서부터 아마도 디스거스트가 내 안의 '감정 제어판'을 주로 조종했던 것 같다. 인사이드아웃을 보면 사람마다 상황마다 지배적으로 특정 감정이 '감정 제어판'을 통해 표현과 행동을 결정한다. 디스거스트는 주인공 라일리가 더러운 것들을 피하도록 하고, 라일리가 먹는 것들의 호불호를 결정하며,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가장 섬세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후각과 미각이 예민했던데다가, 물리적인 사회적인 특정 상황에 잘 '역겨움'을 잘 느끼고, 심지어 그것을 표현하는 일에 꺼리낌이 없는 편이었다. 바로 그렇게 '표현하는 일에 꺼리낌이 없는 것'까지 디스거스트의 속성은 소위 디스거스트가 강한 사람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 중이다. 나는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사이드아웃의 디스거스트처럼 굴지는 않게 되었지만, 이런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며 디스거스트를 보았을 때에 느꼈던 반가움은 각별한 것이었다.



토할 것 같은 디스거스트, 라일리가 싫어하는 브로콜리 때문이다.


성인이 된 나는 지금도 부정적인 감정을 통칭하여 '토할 것 같아'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어릴 때에는 정말 잘 토하는 아이였다. 지금도 상한 음식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물리적인 사회적인 양쪽의 부정적 자극 때문에 잘 타지 못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이런 까다로운 성향을 좀 더 강건하고 소위 비위가 강하게 해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결국 내가 찾은 결론은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자'였고, 그렇기에 형상화된 디스거스트가 사랑스러워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 안의 디스거스트 덕분에, 더욱 싱싱한 재료의 음식에서 더욱 큰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쾌적한 공기와 넓은 공간,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의 소중함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금 이런 자기 고백과 더불어 2020년에 수년 전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얘기를 왜 하고있느냐 하면, 바로 우리가 전례 없는 전세계적이고 강력한 전염병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내 경우 딱히 결벽증이 있거나 깔끔을 떠는 성향은 아니다. 다만 종종 나타났던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거부감과 회피기제가 나 자신을 이롭게한다는 것을, 한참 자란 성인이 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눈병이나 호흡기 질환을 포함해서 큰 전염병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살아온 편인데, 돌이켜보면 모두 내 안의 디스거스트 덕분이었던 것 같다. 불편해보이는 진화적 속성도 긴 시간축에서 보면 인간의 생존에 다 도움이 된다는 교훈이다.


이런 전염병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 자신 안의 디스거스트에 솔직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후로, 평소에 불쾌했던 '사회적 관습'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아주 마음이 후련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테면, 말을 할 때에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신체 접촉을 피하며,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건 우리가 평소에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손가락질하던 어떤 까칠한 애'처럼 살아가는 방법 그 자체이다.



우리는 산업화된 도시 환경에서 너무 많이 무감각하게 서로 부딪히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리는 도시적 삶을 다시 돌아봐야할 정도로 전세계적 전염병 사태에 봉착하고 말았다.


 번쯤 삶의 방식과 소통 방식에 있어   근원적인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함은 분명하다사람들의 바뀐 생활 습관 덕분에 흔히 독감이라 불리는 인플루엔자 감염이 대폭 이미 감소했다는 보도나, 혹은 성병의 전파가 대단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깨워주었지만 애초에 우리는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가 기쁨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픔과 공포와 분노와 역겨움을 포함하며,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잘 살아가게 하는 자아의 일부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어서 진정되길 바라며, 여러분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간 이후에도, 솔직하고 귀여운 까칠이, 디스거스트를 종종 떠올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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