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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Jul 06. 2017

소셜미디어와 익명성- 자유에 대한 은근한 열망

익명성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익명성은 처음 인터넷이 등장하던 시기부터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인터넷이 시스템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익명성은 자유와 표현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악플 등의 각종 사회 문제가 벌어지면서, 국내에서는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2007년부터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포털에 댓글 일종의 실명제가 시행되었죠. 그러나 이는 2012년 헌법재판관 만장일치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거기에 맞물려 인터넷실명제나 익명성에 대한 담론 자체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합니다.



1996년 6월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익명성 보장 문제를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네요.


인터넷과 익명성에 대한 사건들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복합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기도 하고요, 온라인 활동은 로깅(Logging)과 추적이 수월하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보다는 익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과 열망, 좀 더 심리적인 포인트에 맞춰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소셜미디어, 즉 SNS와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익명성에 대한 욕구에 대해서 말이지요. 소셜미디어 상의 익명 표현은 오프라인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온라인 세계의 특성과 욕구를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겁니다.  


한번 아래와 같은 순서로 얘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첫째, 익명성이란 단차원적인 개념이 아니다

둘째,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성은 특정한 효과를 갖는다

셋째, 그럼에도 서비스에서 익명성의 영향력은 다루기 어렵다

넷째, 사람들에게는 관계와 단절 사이의 '은근한 열망'이 있다


먼저 필자가 익명성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 때문입니다. 아래와 같은 연구를 해서 한국HCI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었죠.



익명성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라면 역시나 글쟁이로서의 경험 때문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필명으로 혹은 아주 익명으로 온라인 상에 항상 글을 써왔거든요. 대단히 매니아적인 활동을 한 것은 아닌데(때로는 약간은 오타쿠적인 취미도 있었겠습니다만), 익명성 덕분에 정말이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별, 학벌, 직업 이런 것들과 모두 관계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지인들과 오프라인에서 친해지기도 하고, 나이와 성별에 관계 없이 지금도 여러 사람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제가 쓴 모든 글에 신상이 드러났다면 불편한 일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게다가 저는 이름도 특이해서 (유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검색 한 번으로 제 신상을 아주 쉽게 알게 되실 수 있거든요. 



구글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브런치가 첫 페이지에 뜰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검색엔진 최적화 참 어려워요.


지금도 제 이력이나 배경을 모두 덜어내고서, 순전히 하얀 바탕에 까만 글씨로, 제가 쓴 텍스트로만 읽히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글쟁이의 열망이지요. 


이렇게 온라인에서의 익명 소통이 주는 편안함을 개인적 체험으로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 중에 수업에서 익명성에 관한 실험도 해보게 된 것입니다. 


위에 소개한 2014년 한국HCI학회 논문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사이버심리학 수업에서 도영임 교수님과 이원재 교수님의 공동 지도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당시의 논문에는 여러 사정으로 한정적인 내용만 담았는데, 아래에 훨씬 풍부한 그 이후의 얘기가 있습니다. 



그럼 소셜미디어와 익명성에 대해 우리가 공유하면 의미 있을만한 얘기들을 이어가보도록 하지요.


먼저 시작할 얘기는 첫째로 '익명성이란 단차원적인 개념이 아니다' 입니다.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이란 문자 그대로 단지 '실명을 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은 여러 정보 제시 그리고 서비스가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됩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저명한 저널 JCMC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익명성은 단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노출되는 프로필 사진이나 실명) 뿐만 아니라, 글쓴이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게 되는 전반적인 조건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Qian, H., & Scott, C. R. (2007). Anonymity and Self‐Disclosure on Weblogs. Journal of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12(4), 1428-1451 (좀 옛날 연구이긴 하지만요)


즉, 시스템에서 자의적으로 정의하는 익명과 실명 수준을 떠나서, '사용자가 느끼는 익명성 정도'는 상당히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정보를 비공개로 설정해둔다고 해도 자신의 소속이나 주소를 입력하는 절차 자체가 '언젠가 이것이 추적당할 수 있다'라는 기분을 줄 수도 있지요. 


복수의 문헌에서 이렇게 회원 가입 절차나 게시물 작성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터페이스 자체가 사용자들의 '사용자가 느끼는 익명성 정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앱에서 위치 정보나 로그인 정보 같은 여타 개인 정보에 대한 동의를 얻는 과정 등, 그런 절차들이 사용자들의 심리 상태를 바꿀 수 있겠네요.


저도 익명성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팀원들과 직접 실험용 SNS를 만드는 과정에서, 익명성에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익명성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요. 그럼 자연스럽게 두 번째 얘기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둘째로 할 얘기는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성은 특정한 효과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 조건에 따라서 사용자들이 느끼는 익명성 정도가 달라지면, 그 정도에 따라서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너무 뻔한 얘기인가요. 특히 상담이나 의료 서비스 등 특정 분야에서는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카톨릭의 '고해성사'는 오랜 인류 역사에서 '익명으로 고백하기'의 욕구를 잘 충족 시켜 준 의례입니다. 위의 사진 속 메시지는 유머사이트에서 본 것입니다만, "오늘의 고해성사는 사제가 한 명 밖에 없습니다. 고해성사 요점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죄와 위반에 대해서만 얘기하세요, 왜 그랬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도의 메시지네요. 신도들의 죄와 고백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사제의 임무도 괴로운 것이겠지요. 



그렇게 소셜미디어가 아니라도, 익명성과 정보 보안은 기존의 상담이나 의료 분야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지요. 여기서 '인지된 익명성'과 '인지된 보안성'은 각각 구분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물론 서로가 강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지요. 익명성 수준이 높을수록 보안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안성에 대한 인식은 기존의 정보 유출 사고 등에 의해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고 기술 요소 등 조금 더 실질적인 문제를 포함한다면, 익명성은 조금 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 익명성이 갖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수월한 '자기 고백(Self-disclosure)'입니다. 자기 노출, 자기 표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요, 이러한 자기 고백은 자체로 사람의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거나 심리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있도록 해줍니다. 여기에 대해선 문헌이 워낙 많이 따로 참고 문헌을 붙이지 않을게요. 답답한 마음을 대나무숲에 그냥 털어 놓기만 해도 마음이 후련해진다거나, 본인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조금 정리가 되는 기분,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공감해볼 수도 있는 얘기니까요. 


'그걸 누가 몰라?'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서비스디자인 관점에서 보자면 개인정보를 다루면서도 어떻게 하면 '익명성의 느낌을 더 줄 수 있을까'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중년 남성'은 다른 계층에 비해 건강 관련 상담에서 자신의 증상을 축소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특히 심리적인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어찌보면 그것도 사회 가치에 의한 억압일 수도 있는데 아버지 세대는 나약한 모습을 꺼내 보이지 싶지 않은 것이겠지요. 이런 때에 온라인을 통한 익명 상담은 오히려 오프라인의 상담보다 효과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 설계자는 도움을 주기 위해 적절한 개인 정보는 수집해야겠지만, 심리적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정도의 익명성 수준을 유지해야겠지요. 


블라인드는 위와 같이 '익명활동을 철저히 보장'한다고 설명해두었습니다. 저런 설명 한 줄도 UX의 중요한 일부분이죠.


익명성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앞서 말했듯 '자기 고백'이지만, 그 외에 정치적 표현이나, 기업에서의 의견 제시, 아이디어 제안 등 여러 맥락에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블라인드' 같은 서비스의 일부 사례를 보면 단순히 뒷담화뿐 만 아니라 익명이기에 얘기할 수 있는 '고급 정보'가 공유되기도 합니다.


또 예를 들어, 신입사원이 엄격한 부장님 앞이라면 경직되어서 좋은 의견이 있어도 잘 꺼내지 못할텐데, 사내 게시판에 익명으로 아이디어 공모를 한다고 하면 회사 발전에 대한 도움 될만한 얘기를 더 조리있게 꺼낼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은 오프라인의 현실 맥락이 갖고 있는 위계를 극복하게 하기도 하고, 개인의 심리적 장벽을 극복하게 하기도 하고 여러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익명은 아니지만 소통 상대와의 거리감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사적인 얘기를 털어 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심리를 잘 설명하는 상황을 개인적으로는 '게스트하우스 파티 효과'라고 부릅니다. 


요즘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이렇게 다같이 모여서 노는 테이블을 갖춘 곳이 많다고 합니다.


젊은 분들이 여행을 가면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손님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놀게 되는 경우가 있죠.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노는 겁니다. 


이 때에 시간이 무르익으면 '어차피 나와는 먼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솔직하게 얘기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어차피 같이 아는 사람도 없고 다시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가까운 친한 친구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사적인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도 얘기하고 신상도 얘기하지만 '이후의 내 삶이 포착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쿨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심리는 위에서 얘기했듯, 단지 이름이 노출되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얼마나 '연결'이나 '추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복합적 익명성 개념 속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뿐 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것이지요. 


물론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성이 좋은 효과만 갖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거짓말을 하거나 폭언, 욕을 일삼기도 합니다. 뉴스 댓글 등 특정 서비스 영역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럼 자연스럽게 세 번째 얘기로 넘어갑니다. 



셋 째 이야기는, 이렇게 익명성에는 여러 효과가 있지만, 그럼에도 서비스에서 익명성의 영향력은 다루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폭언 욕설 뿐 아니라, 명예 훼손, 개인 정보 유출, 허위사실 유포, 불법 자료 유통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들은 대부분 익명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익명으로 자작 음란물 등을 공유하던 성인 커뮤니티 사이트 소라넷. 현재 폐쇄됨.


물론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실명 걸어두고 온갖 패드립(부모 욕을 포함한 막말)을 남발하는 용감한 분들도 계십니다만, 훨씬 많은 온라인 범죄 비중은 익명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이 때에도 사람들이 느끼는 '인지된 익명성' 수준은 다분히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네이버 댓글의 경우 네이버 자체에 휴대폰으로 실명 인증을 하고 가입하기 때문에, 악플을 달았다가 신고 당하면 바로 본인이 식별 당하게 되어있지요. 하지만 당장 화면에는 아이디나 닉네임만 노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막말을 쉽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실명, 소속, 거주지가 표시되고 있으면 과연 그런 막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7년 4월 서비스를 종료한 익명 기반 소셜미디어 Yik Yak. 


익명 커뮤니티의 원활한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소셜미디어 익약(Yik Yak)의 사례일 것입니다. 익약은 2013년 시작한 '위치기반+익명성'을 특화한 소셜미디어였습니다. 특정 반경(1.5마일) 내의 사용자하고만 사용할 수 있는 트위터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모이는 장소에서 포스팅이 활발하기 때문에, 주로는 미국의 대학들을 거점으로 하여 확산되었습니다. 


익명 소통에 대한 욕구 덕분인지 2014년말 전성기 익약의 '월간 활성 사용자(MAU)' 숫자는 미국내 200만 초과, 글로벌 300만 초과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총 한화 80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전성기에는 기업가치 4000억 이상으로 평가 받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런 익약이 서비스 시작 불과 4년 후 2017년에 서비스 종료를 하고 만 것입니다. 익약을 통한 집단 괴롭힘, 인신공격, 성희롱 등이 꾸준히 발생하여, 몇몇 대학들은 익약 금지 캠페인까지 벌이고, 사용자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지요. 어느 시점 이후로는 익약을 자주 하는 사용자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빠지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자유와 방종을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익명 소셜미디어의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여전히 유효한 사용자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블라인드'의 경우, 회사 메일로 일단 인증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래도 동업자 정신이 있어서인지, 약간의 논란은 있어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고소고발이나 현피에 대한 염려로 자제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적절한 처벌이야말로 현실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한 익명 소셜미디어 '어라운드'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익명 소셜미디어 중 '어라운드'를 높게 평가합니다. 닉네임이나 프로필 등 사용자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서비스 초반부터 제법 엄격한 경고 등을 통해 부작용을 관리해왔다고 합니다. 그 결과 나름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된 듯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계속 좋은 얘기를 해주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고, 속된 말고 '물 관리'가 잘 된 것이지요. 덕분에 '어라운드'는 위로와 힐링을 얻는 소셜미디어가 되어서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된 듯합니다. 앱스토어에 나오는 압도적으로 높은 별점과 리뷰 메시지를 보면, 상당수 '어라운드' 사용자들이 익명의 편안함을 어떻게 느끼고 있나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면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서비스로서의 확장성과 지속성에는 약간의 염려도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정 욕구'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거의 드러내지 못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장기적 관점의 '인정 욕구'가 달성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많은 소셜미디어는 '인정 욕구'를 포함한 몇몇 강한 동기부여를 가진 소수에 의해 생산되는 다량의 컨텐츠와, 그 컨텐츠를 소비하는 다수의 팔로워의 역동으로 지속성을 유지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익명성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인정 욕구'를 성취시켜 줄 대안적 시스템이 필요하기도 하겠죠. 




자 이제 그럼,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사람들에게는 관계와 단절 사이의 '은근한 열망'이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맨 앞에 얘기했던 저의 연구 얘기로 돌아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2013년 저는 두 명의 외국인 친구와 함께 프로토타입 SNS를 개설하고 실험에 돌입하였습니다. SNS 상에서 익명성과 감정 표현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서였죠. 아래 내용은 온라인 상에 공개된 논문에는 없는 부분이고, 당시 HCI학회 현장에서만 발표를 했던 내용입니다. 


실제로 카이스트에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 소통할 수 있는 SNS를 만들었고, 연구에 참여하면 추첨으로 영화 관람권을 준다고 하고 미션을 부여해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총 70명이 가입했고, 59명이 데이터를 생성했습니다. 미션으로는 실험 기간 동안 '하루하루의 일과나 감정적인 상태, 유학 생활의 어려운 점 등 개인 적인 이야기를 올려주세요' 라는 안내를 주었습니다. 




개발자 친구인 Patrick이 오픈소스를 활용해서, 이렇게 페이스북 페이지와 커뮤니티가 결합한 것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카이스트의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 생활의 어려운 점이나, 재미있는 일상 등을 공유했죠. 위의 캡쳐에 보시다시피 특정 음식(Lobster라니... 카이스트 근처에 그런 것이 있을리가요)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나, 한국에서 발견한 우스운(?) 간판 사진 등, 여러 얘기가 올라왔습니다. 


참가자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사실 실험은 세 개의 조건으로 나눠서 진행을 했습니다. 참가자를 모집해서 서로 다른 URL을 알려주고, 각각의 SNS에 접속하게 한 것이지요.


실험 조건 A에서는 가입 시에 꼭 실명을 쓰게 하고, 또 본인의 프로필 사진 업로드를 권장했습니다. 소속 학과도 쓰게 하고, 이메일 등 개인 정보도 기입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비스 안에서 다른 사람 이름을 클릭하면 소속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실명 사용 조건 세팅이었죠. 


실험 조건 B에서는 가입 시에 개인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 닉네임만 쓰게 했습니다. 사용 안내에서 이것은 익명성 서비스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서비스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이름을 클릭해도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었고요. 익명 사용 조건 세팅이었죠.


실험 조건 C에서는 모든 사항이 조건 B와 동일한데, 한 가지 기능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특정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작성한 포스트를 서버에서까지 모두 삭제하는 'Off the Record' 기능이었죠. 이 기능에 대한 안내를 하고, 학교에 대한 뒷담화든, 본인의 프라이빗한 얘기든 자유롭게 나누라는 안내를 덧붙였죠. 나름으로는 2013년 당시에, 스냅챗과 같이 '대화 기록 삭제'가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선진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각 실험 조건마다, 위에 설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터페이스 구성 등인 완전히 동일했고요, 실험 기간 동안 저와 팀원들은 올라오는 포스팅의 속성을 면밀히 살폈습니다. 포스팅과 덧글수 등의 정량적인 지표도 비교했고, 약 2주 후의 실험 기간 마지막에는 설문지 응답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가자 숫자가 많지 않고, 샘플링에 편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결과를 놓고 보면 조건 B그룹의 익명성 참가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소통했습니다. 개인으로 쓰는 글, 그룹 전체에 쓰는 글, 사진 업로드 등 여러 면을 종합했을 때에 가장 많은 글을 올렸지요. 다른 조건과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용 면에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적인 이야기 등, 소통의 밀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연구에서 깨달은 점은 '적당한 익명성을 제공했을 때에 사람들이 가장 활발하게 소통한다' 라는 단순한 가설 검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관찰을 통해 '사람들은 적당한 익명성을 좋아하지만 그 안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고자 애쓴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지요. 


소셜미디어 상에서 계속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관심종자'를 관종이라고 부르지요.


위의 실험에서 조건B와 C에서는, 익명성 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고 서로의 프라이빗한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지 말라거나, 익명성 속에서 소통하라고 하는 등 실험으로서의 메시지를 사전에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용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프로필 사진(실제 셀카가 아니라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이미지 등)을 업로드하고, 자기 소개를 작성하거나, 자기의 전공 관련 얘기 등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즉, 실제 자신의 소속 학과나 소속 연구실 정보, 연락처, 얼굴 사진 등이 낱낱이 공개 된 상태에서 소통하는 것은 별로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은 형성하고 싶은 것이지요. 실제 내가 추적 당하는 것은 마땅치 않더라도, 그렇다고해서 이름 없는 아무개A씨가 되는 것은 싫은 셈입니다. 그래서 특정 캐릭터나, 키워드, 사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계속 드러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글의 거의 끝에 와서야 밝혀졌지만, 그래서 제가 소셜미디어와 익명성에 대해서 '은근한 열망'이라고 쓴 것입니다. 관계와 단절 사이에 미묘하고도 구체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지요. 적당한 익명성 속에서 더욱 편안하게 소통하게 되는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거나, 인정받거나,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거나, 그러고 싶은 욕구도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 나니, 소셜미디어와 익명성, 그리고 몇 개의 커뮤니티가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트위터의 경우 많은 국내 사용자들이 갖고 있는 '어느 정도의 익명성과 거리감+정체성 표현'의 욕구를 잘 반영한 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농담처럼 '자기 트위터 아이디를 절대 현실 지인에게 알려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까 제가 '어라운드'를 선순환을 형성한 사례로 높게 평가한다고 했지만, 확장성과 지속성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요. 물론 사람은 다양하므로 개인차는 있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인정 욕구'가 깔려 있습니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그런데 '어라운드'는 특정 글쓴이의 정체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적 측면이 희박하기 때문에, 한계점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 것입니다.   


한 사람 안에서도 익명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정 욕구'와 '정체성에 대한 욕구'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정 욕구'는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동력이기도 하지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사이트라서 쓸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연구자적으로 담백하게 분석만 해보자면 사실 '일베'는 '익명성+인정 욕구'를 동시에 잘 충족시키고 있는 케이스입니다. 


'일베' 사이트의 공지 사항입니다. 


일베는 '닉네임 언급', '자짤 사용'을 금지하며 친목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친목 금지는 또 별개의 연구주제이긴 합니다만)사용자들 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인데요, 재미있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관계는 맺는 친목은 하지 않아도(익명성으로 상호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수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은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베는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추구하고, 사용자들이 과도하게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지만(자짤 사용 금지), 인정 욕구 충족을 위한 시스템은 잘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닉네임 옆에 숫자로 '레벨'를 표시하고, 또 '일베 게시판에 오르는 것 자체' 그리고 '추천수' 같은 것이 직접적인 인정의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베 사용자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언급하면서, 그 '인정 욕구' 때문에 동기부여되어 계속해서 컨텐츠를 생산해내게 되는 것이지요. 일베 게시판에 오르기 위해, 추천수를 더 받기 위해, 레벨을 올리기 위해 더 열심히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사실 '일베' 사이트는 연구자적으로 담백하게 분석만 해보자면, 서비스 디자인 자체는 고민 많은 사람에 의해 잘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특정 계층의 욕구에 부응하면서 상당한 트래픽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겠죠. 


다만 '일베' 사이트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보자면, 다양성이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는 소수가 거기 모여서 배설하는 것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인식이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있어서, 교육적으로 매우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가 정교하게 이를 규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페이스북의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자,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네 가지 이야기를 따라 '소셜미디어와 익명성'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해보았습니다. 


아마 익명 소통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실명 기반 서비스인 페이스북에서도 학교별로, 업종별로 익명 메시지를 전하는 '대나무숲'이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가 생겨나서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실명으로 나누기 어려운 얘기를 익명으로 나누고자 하는 자발적인 활동인 것이지요. 과거 싸이월드 클럽이나 프리첼 시절에도, 학교 커뮤니티나 대형 모임도 '익명 게시판' 하나씩은 갖추고 있었죠. 이렇듯 어느 수준의 익명성에 대한 욕구는 과거부터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단지 익명이냐 실명이냐뿐 만 아니라, 그 보안성에 대한 인식, 정체성과 인정에 대한 욕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고, 결과적으로 소셜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이 느끼는 적절한 '거리감'에 대한 설계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생각이 모아지는 듯합니다. 

그 '거리감'이란 서비스 플로우나 인터페이스 등의 사용자 경험을 통해서도 조절되고, 서비스 내의 규제 기준, 자체적인 룰을 통해서도 조절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이야기에서 밝혔듯, 이는 잘 설계하고 사용하기만 하면, 현실 세계 소통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효과를 추구할 수 있으니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겠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욕구는, 어쩌면 현실 세계만 봐서는 잘 알 수 없는 인간의 어떤 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처럼 IT서비스에 대해 분석하지만 결국은 인문학을 얘기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흥미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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